싱크탱크로 위장한 뒤 “저 전투기 어떠세요”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11.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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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군수업체들 로비와 압박…F-35 부실에도 ‘찍소리’ 못해

“우리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잘못된 권력이 재앙적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지금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961년 1월17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전역에 라디오로 생중계된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에 대해 경고를 날렸다. 53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여러 전쟁에서 철수했지만, 미국의 군수회사들은 엄청난 영향력과 호황기를 이어가고 있다.

왜 그럴까. ‘전쟁’이 발생해야만 이들이 먹고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테러’와 그에 따른 ‘공포’라는 명분은 군산복합체의 생명을 꾸준히 연장시켜준다. 9·11 테러가 발생한 다음 해인 2002년 미국은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DHS)를 창설했다. 브라운 대학 보고서에 따르면, DHS는 2011년까지 이미 650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지출했고 매년 7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테러 방지라는 목적으로 지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한국 도입이 결정된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차세대 전투기 F-35. ⓒAP 연합
국토안보부 창설 이후 군산복합체 전성기

초대 DHS 수장이었던 톰 리지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현재 ‘리지 글로벌(Ridge Global)’이라는 위기관리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DHS와 막대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2005년부터 4년간 DHS의 장관을 역임한 마이클 처토프(Michael Chertoff)는 ‘처토프 그룹(Chertoff Group)’이라는 컨설팅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사업 첫해에 사이버 보안 등 보안 업무 단 한 건으로 21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DHS로부터 따냈다. 이 전직 국토안보부 수장들은 늘 언론 인터뷰에 나와 테러 위협에 맞선 미국의 대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를 납세자인 미국 국민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나마 미국 하원 국토안보위원회가 최근 일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위원회는 DHS 창설 이후 처음 5년간 150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들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해안경비대 노후 함정 개량이나 국경 및 공항 보안시설 확장 등에 사용된 250억 달러의 계약도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DHS의 감사관인 존 로스 장군도 “통합된 단일 조직인 DHS가 많은 임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직원들이 계약 과정에서 쉽게 검토하고 넘어간 것이 사실”이라고 잘못을 시인했다.

소련이 몰락하고 냉전이 종식되었을 때만 해도 사양길에 들어설 것이라던 군산복합체는 예상을 깨고 더욱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은 물론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다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이들의 시장이다. 특히 미국을 주축으로 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아시아 지역 확대는 군산복합체에 블루오션이 되고 있다.

덩치가 커지면서 군산복합체는 미국 경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악이 돼버렸다. 미국 기술자와 과학자의 3분의 1 정도가 군산복합체 관련 기업에 근무하고 있고 미국 국방 관련 산업의 상위 9개 기업의 전체 고용 인원이 100만명에 달한다. 그 누구도 폐해를 지적하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도입하기로 결정한 록히드마틴의 F-35 개발 프로그램은 ‘돈 먹는 하마’로 유명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무기라는 이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미국에서도 얼마나 돈이 더 들어갈지 아무도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한다. 일단 개발비만 4000억 달러다. 향후 50년간의 운영·유지비용을 합한다면 1조5000억 달러라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미 시험 도입된 일부 기종들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결함이 발견됐지만 그 누구도 F-35에 관한 미국 국방부 예산을 삭감하라는 주장을 꺼낼 수 없다. 바로 먹이사슬을 이용한 록히드마틴의 치밀한 전략 때문이다. F-35 전투기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5만개다. 록히드마틴은 공장과 연구시설 및 부품 조달업체를 미국 내 47개 주에 분산 배치해 활용하고 있다. 록히드마틴 관계자는 이를 근거로 “F-35 하나가 13만명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으며 향후 26만개까지 늘어날 것”이라며 미국 경제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F-35 하나가 13만명 일자리 만들어”

정치자금 제공과 로비는 기본이다. 미국 정치자금 공개 웹 사이트인 ‘오픈시크릿(opensecrets)’에 따르면, 2014년 10월까지 민주·공화 양당의 정치인 299명에게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제공한 회사가 록히드마틴이다. 로비스트를 고용하는 데만 150억원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얼마의 정치자금이 비공식 경로로 의회에 전달됐는지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미국 주류 언론들이 F-35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해도 록히드마틴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록히드마틴을 포함한 군산복합체들은 F-35처럼 차세대 무기로의 업그레이드가 중요하다는 보고서를 연일 쏟아낸다. 

동아시아 지역, 특히 한국에 군수 장비를 팔아먹는 군수업체의 전략은 치밀하다. 예를 들어 ‘미사일 방어체제(MD)’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들은 싱크탱크를 내세워 컨퍼런스 등을 개최한다. 물론 후원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이 자리에는 군사 전문가뿐만 아니라 현역 미국 국방부 관계자도 참석해 북한의 위협 등을 명분으로 MD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동시에 관련 시스템을 곧 주한미군 등에 설치할 예정이라고 언론에 슬쩍 흘려 분위기를 장악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는 그 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이렇게 한국 정부에 MD 참여에 대한 명분과 압박을 동시에 들이대면서 군수업체는 이미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불거지고 있는 이른바 방위산업 비리를 ‘군(軍)피아’의 폐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일지도 모른다. 코끼리의 몸통이 미국을 중심으로 점점 다국화해가는 거대한 군산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움직이는 거대한 구조물에서 한국은 빠져나갈 수 없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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