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를 디자인하라] 클릭 한 번으로 정치인 ‘돈줄’ 알게 한다
  • 미국 워싱턴=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11.12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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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들, 오바마 정부에 정보공개 압박

워싱턴 D.C.는 미국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그중에서도 여의도·세종로와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여의도·세종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철저한 계획 아래 건설된 워싱턴 D.C.는 정부의 각종 관공서와 박물관, 주거지가 바둑판처럼 나눠진 구역에 정리돼 있고, 시끌벅적한 여의도·세종로와 달리 고요한 편이다. 무엇보다 우리 풍경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은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미국 현지에서 만난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말이다.

“따분할 정도로 네모반듯한 건물 안에는 수많은 로비스트가 들어차 있다. 워싱턴 D.C.의 60만 인구 중 10만명가량이 로비스트들이라고 봐야 한다. 각종 정부청사가 워싱턴 D.C.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로비스트들이 몰려든 것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로비스트들 때문에 정치의 중심지라고 불릴 정도다. 매년 8월이면 의회가 휴회를 하는데, 할 일이 없어진 로비스트들도 휴가를 떠난다. 이때면 미국 수도가 마치 유령도시가 된 듯하다.”

ⓒ 시사저널 최준필
미국 정치사에서 로비스트들은 2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의회가 생기기 전에 로비스트들이 먼저 있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791년 제정된 수정헌법에서는 의회가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비롯해 ‘불만의 시정을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청원권)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로비는 국민의 권리로 인정될 만큼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로비스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로비스트는 곧 미국 정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자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을 추적하는 책임정치센터(CRP·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를 설립한 선라이트 재단의 총괄책임자 엘런 밀러는 “워싱턴의 황금률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12절)는 것이 아니라 ‘황금을 가진 자가 지배한다’다. 돈을 준 자가 모든 것을 얻는다는 것이 미국 정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CRP는 11월4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로비스트들이 뿌린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돈이 최소 10억 달러(약 1조67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본권력의 막강한 영향력에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전의 경우 돈다발을 움켜쥔 로비스트들이 정부의 민감한 정보들을 정·관계 인사들과 ‘그들만의 리그’에서 거래했다. 그러나 지금은 워싱턴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도시의 평범한 유권자도 ‘클릭’ 한 번으로 어떤 의원이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정치자금을 얻었는지 바로 알아낼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열린 정부’가 미국 정계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열린 정부 정책은 탄력을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는 국가자산”이라고 규정한 후 “모든 공문서와 정보는 공개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고 천명했다. 오바마 정부의 열린 정부는 일자리 창출, 보건정책, 국가안보 등 전 방위에 걸쳐 있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정치자금 모집을 규제하는 것보다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워싱턴 D.C.를 장악한 로비스트들의 사무실 옆 건물에는,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정부기관과 민간단체들의 사무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정보공개는 인터넷상의 공개가 원칙”

정치자금과 관련한 모든 정보는 미국 연방선거위원회(FEC)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재진이 지난 10월23일 워싱턴 D.C. 다운타운에 위치한 FEC를 방문했을 때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사무실 전체가 분주한 모습이었다. 1974년 설립된 FEC에는 후보자들이 어디에서 돈을 얼마나 모아 어디에 쓰는지에 관한 정보가 모두 올라와 있다. 정당과 후보자 선거 사무실은 FEC에 매년 분기별로 회계보고를 해야 하며, 선거가 치러지는 해에는 선거 전 20일까지, 그리고 선거 후 20일까지의 수입·지출 내역을 정해진 기일 내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또한 ‘48시간 통지(48Hour Notices)’라는 규제를 둬, 선거일 전 20일 이후 1000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받은 경우 기부액과 기부자 인적사항을 48시간 내에 연방선거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제도는 우리나라 선거관리위원회와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거 후 30일 이상이 지나야만 선거비용이 공개된다. 선거비용은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지만, 선거가 끝난 후 공개되기 때문에 해당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구조다.

특히 열린 정부의 관점에서 비교하자면, 인터넷 활용 면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FEC는 제출받은 모든 종류의 보고서를 48시간 이내, 심지어 전자파일로 받은 경우 24시간 이내에 인터넷에 공개해야 한다. 또한 200달러를 초과하는 기부 사항에 대해서는 기부자 등에 대한 검색, 분류 및 다운로드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즉, 개별 정치인과 정당은 물론 후원자 이름을 검색해도 정치자금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FEC 관계자는 “열린 정부에서의 정보 공개란 인터넷상에서의 공개를 말한다. 온라인에 올려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기계적으로 읽을 수 있는 형태(엑셀 파일 등)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보공개가 기본적으로 문서 열람의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일반 유권자가 정지차금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선 관할 선관위 사무소에 비치된 수입·지출 내역을 열람하거나 서면으로 신청해 사본을 교부받아야 한다. 2005년부터 선거비용에 한해 선거 자금의 수입·지출 명세서를 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으나, 이마저도 3개월로 기간이 제한돼 있다. 반면 FEC의 경우 상시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또한 국내 선관위는 선거 자금 외 일반 비용은 인터넷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정치권은 오랫동안 자본권력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 연합뉴스
열린 정부의 핵심은 인터넷 공개

열린 정부에서 인터넷 공개는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다. 인터넷 공개를 통해 일반 유권자와 민간단체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분석하고, 생성된 분석 결과를 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열린 정부에서 정부기관은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에 그치고, 실질적인 의미 도출은 민간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매시업(Mash up·인터넷에 공개된 여러 콘텐츠를 묶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라 하는데, 이 작업에 열린 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RP의 사라 브라이너 조사국장은 “정부가 정보를 제공하고, 또 이를 가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정한 의도로 정보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인이 이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탈(脫)정치적이고 중립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민간단체가 정보를 분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FEC의 자료를 바탕으로 정치자금을 추적하고 있는 민간단체가 여럿이다. CRP를 비롯해 ‘워싱턴 D.C.의 도덕과 책임을 바라는 시민의 모임’(CREW), ‘선거 행동 펀드’(PCAF), ‘선거자금연구소’(CFI) 등이 이런 민간단체다. 맵라이트(MAPLight.org) 그룹의 경우, FEC의 정치자금 정보를 가져와 의회 내 표결 결과에 연동시켜 정치자금이 어떻게 의정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3자에 의한 인터넷 게시 금지 규정, 즉 ‘공개된 정치자금 기부 내역을 인터넷에 게시하여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 때문에 선관위의 제한된 자료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열린 정부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모든(all) 정보공개가 실시간(real time)으로 한 번에(One-Stop) 처리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떤 의원이 누구를 만났고, 그를 통해 무엇을 얻어 재산상의 변동은 얼마나 있었으며, 제출한 법안, 표결 내용, 공개 발표 등 어떤 입법 활동을 펼쳤는지를 클릭 한 번에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사라 브라이너 CRP 조사국장은 “정보공개의 범위와 분석 방법에서는 과거에 비해 큰 발전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다양한 정보가 링크되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충분히 그려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보공개의 시점이 너무 늦다는 점이다. 몇 달, 몇 년이 지난 다음에

공개된 정보는 그만큼 생명력을 잃게 된다. 특히 정치인의 재산 변동이나 면담 일정 등은 실시간에 가까울 정도로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시업 통해 법안의 발의·입법·집행에 참여” 


열린 정부는 민간단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열린 정부의 역사는 정부를 향한 민간단체의 저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기업 재무제표, 보고서 등을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1990년대 초 퍼블릭 리소스(Public.Resource.org)의 창립자 칼 말라무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업 재정 정보를 온라인에 무료로 올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소수에게만 공개됐던 기업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여론은 SEC가 스스로 이 자료를 공개해야만 한다는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결국 SEC는 항복을 선언했고, 누구나 공짜로 기업 정보를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민간단체의 활동은 정부에 대한 정보 압박용으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원데이터의 순수성에 대한 감시도 민간단체의 몫이다. 선라이트 재단의 편집주간 빌 앨리슨은 정부가 제공하는 데이터가 처음부터 오염됐을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민간단체의 활동은 정부가 그동안 숨겨왔던 정보를 꺼내놓게 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정부가 공개한 자료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완전히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수백만 달러를 들여, 수십 명의 연구원을 고용해 정부가 제공하는 자료를 두 눈 부릅뜨고 검토하는 것 역시 민간단체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민간단체의 매시업 활동은 일반 유권자들이 단순한 감시자를 넘어 법안의 발의·입법·집행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오픈 콩그레스(Open Congress.org)’가 좋은 예다. 이 사이트를 통해 일반 유권자들은 법안 발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남길 수 있고, 자신의 지역구 의원이 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법안이 통과된 후에는 이 법안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실례를 제공한다.

과거의 경우 발의와 입법 과정에는 제한된 로비스트만이 참여할 수 있었고, 법안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사실상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었다. 그러나 열린 정부 시대에는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쌍방향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대의민주주의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고 있다. 열린 정부를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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