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예방주사? 완전 노벨상감이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11.19 11: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 넘은 병원들 ‘주사 장사’…의료계 “소비자 기만 행위”

‘치매 예방주사’에 ‘인대 강화 주사’ ‘신데렐라 주사’ ‘아이언맨 주사’까지 별의별 주사가 다 등장했다. 이런 ‘주사 상품’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 일부 병·의원의 ‘주사 장사’는 도를 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까지 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을 정도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다이어트·피부 시술에 정체불명의 주사가 판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해 성분이 없어서 치명적인 부작용은 드물지만, 그렇다고 해서 효능과 안전성이 담보된 것은 아니다. 임상시험 연구가 부족해 공식 치료법으로 인정받지 못한 주사가 태반이다.

70대 초반인 김태혁씨(가명)는 최근 신경과에서 ‘치매 예방주사’를 권유받았다. 그는 “항산화 성분이 혈관을 깨끗하게 청소해줘서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데, 맞을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주사는 은행잎 추출물로 만든 혈액 순환 개선제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2~10회 주사에 10만~30만원을 받는다. 치매 백신이라면 노벨상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한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지금까지 치매 예방약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은행잎 추출물이 치매 증상을 완화할지는 몰라도 예방에는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중풍(뇌졸중) 예방주사도 있다. 이 주사는 혈전 용해제다. 피를 묽게 만들어 혈전(피떡)이 생기지 않게 하기 때문에 ‘예방 주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혈전 용해제는 혈전으로 막힌 혈관을 뚫을 때 효과적이지만 건강한 사람이 예방 목적으로 이 주사를 맞으면 자칫 위장 장애와 출혈 등 부작용으로 위급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직장인 김영희씨(가명·40)는 최근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 연예인이 피부를 환하게 만들기 위해 백옥 주사를 맞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피부과를 찾은 김씨는 피부색이 눈에 띄게 개선된다는 말을 믿고 이 주사를 10차례 맞았다. 그는 “70만원을 들여 주사를 맞았는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주사에는 글루타티온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 본래 파킨슨병의 손발 떨림 증상 완화와 간 기능 개선 등 치료 목적으로 사용해온 물질이다. 이 주사를 맞은 간 질환 환자의 피부가 뽀얗게 보이자 백옥 주사라는 이름으로 피부 미용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물질이 멜라닌 색소 형성을 억제해 피부 미백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나타났다. 미백 주사를 3년 이상 맞은 240명 가운데 백반증(멜라닌 세포 파괴로 인해 백색 반점이 피부에 나타나는 질환)과 체모가 탈색되는 부작용이 2009년 유럽 임상약리학회지에 보고된 바 있다. 또 이 성분만으로 미백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변지연 이대목동병원 피부과 교수는 “단독으로 뚜렷한 미백 효과를 얻기 어려우며 전문의와 상담한 후 기존 색소 치료에 보조적인 방법으로 병행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교수도 모르는 정체불명 주사들

주사 상품은 피부과·성형외과를 벗어나 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내과·정형외과·비뇨기과는 물론 심지어 치과에서도 판다. 주 아무개씨(38)는 발목을 다쳐 정형외과를 찾았다. 엑스선 진단 결과 뼈에 이상이 없었다. 그는 “인대가 약해서 자주 발목을 다칠 것이라고 해서 인대를 강화하는 프롤로 주사를 맞았다”고 말했다. 프롤로 주사는 손상이 생긴 부위에 고농도 포도당을 투여해 조직을 강화하고 통증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효능과 부작용이 정립되지 않은 치료법이다. 이동훈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그 주사는 세계적으로 연구 단계에 있어 아직 정식 치료법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라며 “대학병원급에서는 인대 강화 주사를 치료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사 하나로 수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병·의원의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미용 목적으로 사용하는 주사가 그렇다. 결혼을 앞둔 여성의 피부 관리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신데렐라 주사가 대표적이다. 이 주사의 성분(알파 리폰산)은 항산화 물질로 당뇨 환자의 신경병증 치료에 사용한다. 일반인에게 과다 투여하면 오심·구토·소화불량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 이 주사는 피부 미백, 탄력 개선, 다이어트·노화 방지는 물론 심지어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통한다. 이쯤 되면 만병통치약과 다르지 않다. 서대헌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미백 주사가 피부를 환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표준화된 임상시험 결과는 아직 세계적으로 없다”며 “일상생활에서 멜라닌 색소를 억제하는 생활습관(자외선 차단, 규칙적인 식사, 충분한 수면)이 주사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몸에 좋다는 여러 성분을 칵테일처럼 섞어 만든 주사가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신데렐라 주사에 아연을 추가한 아이언맨 주사는 비뇨기과에서 전립선 강화, 탈모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광고하는 상품이다. 아연은 단순히 신진대사 작용을 돕는 것 외에 다른 효능이 검증된 바 없어 학계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서울의 한 피부과에서 환자가 비타민 주사를 맞고 있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시사저널 박은숙
“충분한 잠이 주사보다 피부에 좋아”

칵테일 주사는 1970년대 미국 내과 의사 존 마이어스 박사가 수액에 마그네슘·칼슘·비타민B·비타민C를 섞어 혈관에 주입한 것이 시초다. 만성피로·알레르기·천식·두통·관절통·우울증과 같은 광범위한 증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사용했다. 2009년 예일 대학 의대 예방연구센터가 성인 34명을 대상으로 칵테일 주사의 근육통 치료 효과를 살펴본 결과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칵테일 주사를 투여한 환자 그룹과 가짜 약을 주입한 환자 그룹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지 않은 것이다. 서대헌 교수는 “항산화, 노화 방지, 피부 보습, 질병 예방 등의 효능을 들으면 솔깃해한다. 이런 효능을 가진 여러 성분을 모아 정맥이나 피부에 주사하는데, 한마디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또 “정맥이나 피부에 주사할 때 특정 성분이 다른 물질로 변하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비타민C는 다른 물질과 접촉하면 산화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어떤 성분이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모르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병원 교수들도 모르는 주사가 특정 질환에 좋은 것처럼 알려진 상태라는 것이다. 예컨대 셀레늄 주사는 갑상선염 예방과 중금속 해독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갑상선암 전문가인 이용식 건국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셀레늄은 갑상선염 치료와 관계가 없다”며 “하물며 갑상선염을 예방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비타민B1을 주성분으로 한 마늘 주사는 피로 회복, 체력 증진, 스태미나 증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고, 피로 회복과 숙취 해소를 위해 포도당 주사를 찾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태반 주사는 탈모 개선, 간 기능 개선, 항염 효과, 관절염 개선 등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반인에게는 이런 주사가 필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주사보다는 식사로 영양을 섭취하고 잠을 충분히 잔 얼굴이 더 윤택하다는 설명이다. 조애경 위클리닉 원장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영양을 공급하면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식사를 불규칙적으로 하고 잠도 충분히 자지 않은 채 주사에 의존하는 습관은 건강 유지에 바람직하지 않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고 지적했다.

주사는 한 번에 5만~10만원까지 다양하고 보통 10회 정도 맞아야 한다.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면 싸게 해준다.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미백 주사가 5만원인데, 10차례 맞으면 45만원에 가능하다”며 “수액에 비타민뿐만 아니라 손님의 영양 상태를 점검해 부족한 영양소를 추가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수액·아미노산·비타민C를 합쳐도 원가는 1만원을 넘지 않는 주사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이다. 낮은 진료비로 명맥을 유지할 수 없는 개원의에게 주사는 짭짤한 수입원이다.

약만 쫓는 습성과 병원 상술이 합작한 촌극

영양 주사는 특별한 약을 찾는 한국인의 습성과 병·의원의 상술이 만나 빚어진 촌극이다. 이런 상황에 최근에는 불법 시술까지 가세하기 시작했다. ‘주사 이모’로 통한 전직 간호조무사는 2년 동안 주택가에서 1100명에게 신데렐라 주사와 백옥 주사 등을 투여해 2억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 10월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유흥업소 종사자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도 주사를 맞았고 일부는 약물 중독, 불안·초조 등의 부작용을 호소했다.

도가 넘자 의료계 내부에서도 무분별한 주사 투여 행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놓고 말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주사 장사를 하는 의사도 동료여서 그들을 비난하는 말을 꺼내기가 거북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은 근거 중심의 의료를 강조하며 의료선진국으로 발돋움할 단계로 올라섰다.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의료는 그 발목을 잡는 행위다. 이용식 건국대병원 교수는 “근거 없는 주사 투여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비양심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병·의원에서 파는 주사 상품들 


치매 예방 주사

은행잎 추출물이 주성분. 은행잎 추출물은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짐.

 

뇌졸중 예방 주사

주성분은 혈전용해제. 혈액이 묽어져 위장 장애와 위장 출혈 등 부작용 우려.

 

인대 강화 주사

정형외과에서 허리·손목·발목 등이 삐끗한 환자에게 추천하는 주사. 고농도 포도당이 주성분. 

 

백옥 주사

활성산소를 억제해 피부에 미백 효과를 준다는 주사인데, 글루타티온에 비타민·무기질을 배합.

 

아이언맨 주사

알파 리폰산에 아연을 첨가함. 전립선 강화, 탈모 예방, 면역력 증강에 좋다고 알려짐.

 

마늘 주사

주성분인 비타민B1을 주사하면 입과 코에서 마늘냄새가 남. 피로회복, 체력증진, 스태미나 증강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짐. 

 

셀레늄 주사

셀레늄이 중금속 해독, 갑상선염 예방, 항암제 부작용 감소, 암치료 보조제로 알려짐.

 

신데렐라 주사

당뇨 신경병증 치료에 사용하는 알파 리폰산이 주성분. 항산화 작용으로 피부를 밝게 해준다고 알려짐.

 

태반 주사

탈모 개선, 간 기능 개선, 항염 효과, 관절염 개선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짐.

 

포도당 주사

과음한 다음 날 숙취 해소와 피로 회복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짐. 비타민을 섞어 주사하기도 함.

 

ABC칵테일 주사

알리네이트, 푸르설타민, 베마케스트, 핵산, 치옥토민, 알파 리포산 등을 혼합한 주사. 체력 향상, 체지방 감소, 면역력 향상, 피부 탄력 유지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