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간이 있어야 우승한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11.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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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투어 2승 올린 ‘젊은 호랑이’ 배상문

미국 프로골프(PGA)에서 뛰고 있는 배상문(28·캘러웨이골프)이 잔뜩 물올랐다. 지난 10월13일 PGA 투어 개막전 프라이스닷컴에서 우승하더니 10월 말 귀국해 잠시 한국에서 휴식을 취하고 말레이시아로 출국해 PGA투어 CIMB클래식에서 공동 5위에 올랐다. 곧바로 귀국한 그는 11월9일 신한동해오픈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지금까지 열린 2014~15 PGA투어 대회는 모두 3개. 배상문은 이 3개 대회에서 페덱스포인트 605점으로 2위에 올랐으며, 상금도 136만6000달러를 획득해 2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신한동해를 포함해 단 2개 대회에 출전해 2억800만원을 벌어들여 상금랭킹 10위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큰 대회에 강하다는 세간의 평가를 확인시켜준 셈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12월 초까지 국내에서 짧은 휴식 기간을 갖고 있는 배상문을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올해 기세가 좋다”고 말문을 열자 그는 “올해 이렇다 할 성적이 없어 10월 전까지는 무척 괴로웠다”고 대답했다. 겉으로는 무심하고 농담도 잘하는 배상문인데 실제와는 다른 듯했다. “멘탈 상담(카운슬링)을 자주 받는다. 나도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이제 알았다. 단호한 면도 있지만 의외로 소심한 면도 많다. A냐, B냐를 선택해야 할 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단호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망설이고 있더라.”

그는 미국에서도 한국에 있는 담당 의사와 계속 상담하며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담당의를 바꾸는 편이었는데, 지금 상담을 받는 의사에 대해선 “그분이 접근 시각이 좀 달라서 두 달 정도 됐는데 잘 맞는 듯하다”고 했다.

배상문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PGA투어에 데뷔해 그해 2위까지 올라가며 초반에 좋은 성적을 냈고, 지난해 5월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첫 승 이후) 지난 1년 동안 계속 안 좋았다. 안 좋은 기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왜 이리 안 되느냐’라는 질문도 많이 받고. 2014~15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4주 정도 한국에서 지내면서 독하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이제 새 시즌이구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연습도 하고 스윙도 다듬었다. 연습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느낌이 좋았다. 지난 시즌보다 낫겠다 싶었다.”

 “마음 다스리기가 가장 힘들어”

지난해 바이런 넬슨 대회에서 우승할 때 3일째 되던 날 아침 대회장에 바람이 많이 불자 어머니(시옥희)에게 메신저로 ‘온 세상의 기운이 나한테 오고 있다. 우승한다’고 큰소리쳤던 배상문의 자신감이 1년 사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얘기를 꺼내자 배상문은 “보통 아침에 명상하고 오늘은 어떻게 칠 것인지 이미지 게임을 하고 나간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좋은 기운이 내 위주로 돌아간다’고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아마 그 얘기였을 것”이라며 웃었다. PGA 우승까지 한 그도 ‘심리적인 요철’만은 어쩌지 못하는 듯했다.

“골프가 잘될 때는 잘되는 요인만 있고 안 될 때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진다. 그때 좀 더 강한 마음으로 빨리 차고 나가야 한다. 운동이 그렇다. 골프는 리듬이 있다. 업앤다운이 있다. 그걸 인정하고 가야 한다. 안 풀리면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낮춰야 한다. 스윙이 안 좋다면 빨리 인정하고 고쳐야 하는데, 화만 내고 있으면 더 안 된다.”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하지만 그도 ‘머리 따로, 몸 따로’를 피해가지는 못하는 듯하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내가 마음먹고 공을 잘 넣어야지 명상 백 번 해도 공 안 들어가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골프는 결과론이다. 잘 풀리면 마음이 강해진 것이고. 내가 스스로를 믿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감이 체력보다 중요하다. 나를 보는 내 마음? 그게 제일 중요하다.” 

국내 무대에서 배상문의 캐디백을 직접 멨던 어머니 시옥희씨는 아들의 변한 모습에 대해 말했다. “상문이가 확실히 달라졌다. 전에는 그린에서 상대가 라이를 읽는 것을 보는 것도 ‘치사하다’고 안 봤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차분하게 살피더라. 이제 따라다니지 않아도 걱정이 안 된다. 작년에 고생하면서 쌓인 경험 때문인지 확실히 변했다. 신한동해 대회 현장에서 보면서 ‘우째 철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깜짝 놀랐다. 전에는 무작정 달려들었는데 그린을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고 차분히 하는 것을 보니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 이 말을 듣자 배상문은 “어무이는 내가 언제 그랬다고. 내가 옛날부터 유심히 봤다”고 반박(?)했다. 

시옥희씨는 배상문이 일본 무대에서 성적을 낼 무렵부터 손을 떼기 시작했다. 투어 생활의 고단함과 장시간 비행기 여행이 힘든 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들 배상문을 혼자 던져놔도 자제하고 자립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만고만하게 한국과 일본 투어에서 경쟁하던 그 또래의 선수 중 미국 무대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아직까지는 배상문 혼자다. “일본에 갈 때도 PGA 진출이 목표였다. 막상 일본 투어를 시작해보니 높아 보이던 일본 벽이 낮아 보였다. 음식 좋지, 상금 많지, 너무 좋았지만 여기 더 있다간 일본 생활에 젖어들 것 같았다. 그게 독이 될 것 같았다.” 2011년 일본 오픈 우승과 일본프로골프투어 상금왕에 오른 배상문은 이듬해 PGA투어로 방향을 틀었다. 

2012년 3월 PGA투어 트랜지션스 챔피언십에서 연장전 끝에 준우승을 했다. 미국 언론은 혜성이 등장했다고 했다. 상반기까지는 그랬다. 그러다 중반 이후 곤두박질친다. “미국에 와보니까 난 우물 안 개구리였다. PGA가 경쟁이 세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가보니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큰 무대였다. 약간의 쇼크를 받았다. 내 골프로는 중간은 하더라도 톱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변화를 줬다.”

그는 이후 그린 주위에서 숏게임 공략법이나 구질 등을 더 연구하고 공부하고 연습했다. “공을 갖고 잘 놀아야 한다. 공을 얼마만큼 컨트롤하느냐가 중요했다. 미국 선수들이 경기 운영 하는 것을 보니까 강약 조절을 잘하더라.”

어떤 이는 그를 ‘자수성가형 골퍼’라고 부른다. “몇몇 고마운 분이 있지만 어떤 한 분에게서 레슨을 꾸준히 받은 적은 없다. 그래서 누구를 스승으로 지명하기가 그렇다”는 게 그의 해명이다. 그는 덧붙여 “운동은 노력보다는 결과”라고 말했다. “어떤 이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단순히 연습하는 시간에 연연하기보다는 내가 부족한 것을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나보다 더 노력하고 하루에 공을 몇 천 개씩 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런 친구 중에도 운동 그만둔 경우가 많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게 중요하다. 훈련 양이 결과를 좌우한다기보다는 질적인 연습이 중요하다.”

배상문의 미국 거점은 댈러스다. 한때 LA 쪽에 머무르다 지난 3월 댈러스에 아파트를 얻었다. 댈러스의 집도 한 달에 일주일 정도 머무를 뿐이다. 스피드 애호가인 그의 스포츠카를 주차해놓은 곳이기도 하다. 그는 결혼에 대해 단호했다. “될 수 있으면 늦게!” 아내와 아이를 호텔에 던져놓고 호텔을 전전하는 프로골퍼 생활이 싫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마주친 수많은 유부남 골퍼가 그랬다. 그나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가족과 생이별을 한다. 배상문은 “그렇게 살기 싫다.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혼자 키운 배상문이기에 더욱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미국 생활에 대해 배상문은 “무지 외롭다”고 했다. “식구도 없고 친구도 없고 쉽지 않다. 경기가 안 풀렸을 때 한국 상점에서 소주·맥주를 사다가 혼자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고 잠든 적도 있다. 잠이 잘 오더라.” 미국 생활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집에 오면 재밌기는 한데 약속도 너무 많고 만나자는 사람도 많고 불려다니며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도 귀찮다. 미국에선 운동만 하면 되기 때문에 편하다. 맛있는 것 사먹고 친구도 가끔 만나고…. 거기는 외롭지만 편하다.”

한국에서 그가 바쁜 이유는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젊은 프로골퍼, 잘생긴 외모, 미혼, 거액의 상금, 유명세 등등. 이런 그를 연예계건 정치권이건 어디선가는 부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스포츠 분야에선 특히 ‘천재’ 소리를 듣던 젊은 선수가 망가진 경우가 많다. 사생활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난 사람을 가리는 편이다. 좋은 분만 만나려고 애쓴다. 상대의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진심을 담는 분을 만나려고 한다. 좋은 분을 통해서 다른 이를 소개받지, 모르는 자리에는 나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좋은 분이 많다.”

신한동해오픈 시상식에 함께한 시옥희·배상문 모자. ⓒ 안성찬 제공
“나는 나를 믿는다”

두 번의 PGA투어 우승으로 그가 얻은 것은 두 가지다. “우승은 다 좋은 것” “큰 간이 있어야 우승한다”는 것. 담력이 두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골퍼는 30대가 전성기인 것 같다. 자꾸 깨지고 경험이 쌓이고 어느 부분에서 뭐가 필요한가를 깨달을 때 탁 치고 올라간다. 미국에 와서 골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숏게임도 부족하고 정확도도 모자란다. 골프에 대해 스스로의 마음에 들 수 있게 부족한 점을 보강하면 더 좋은 성적을 낼 것 같다.” 시옥희씨도 “상문이는 완성형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아들을 격려했다.

배상문은 자신에 대해 “안 좋을 때는 무지 안 풀리다가 찬스가 오면, 선두권 경쟁이 된다 싶으면 전투력이 생기고, 안 지는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범띠(1986년)인 배상문이 젊은 호랑이의 기세로 타이거 우즈를 넘어설지 기대해보자.



ⓒ 안성찬 제공
1 장타자의 어드레스다. 장타자는 대개 스탠스 폭이 넓지만 배상문은 평균 정도. 다만 척추와 클럽이 이루는 각도가 완벽하다. 

2 낮고 길게 빼주는 테이크백 동작을 눈여겨볼 만하다. 스윙 아크를 크게 만들어 비거리를 늘려주는 핵심 동작이다.

3 교과서적인 톱 동작이다. 양발 끝은 목표 방향과 수직으로 스탠스를 잡아주고 손목과 팔, 몸통, 허리를 비틀어주며 힘을 축적한다.  

4 하체 회전으로만 다운스윙을 시작한다. 체중은 왼쪽에 싣고 허리 회전으로 클럽을 끌어내리고 있다. 

5 코킹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큰 파워를 축적하기 위한 것이다. 시선은 볼에 머물러 있다. 볼과 샤프트가 직선을 이루고 있다.  

6 임팩트 순간 체중이 왼쪽으로 이동해 클럽에 체중을 싣고 있다. 임팩트 단계에서 몸통의 빠른 회전으로 팔의 원심력을 이용하고 있다.

7 안정적인 릴리스 자세다. 척추 각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머리 위치는 볼이 있던 자리의 뒤쪽에 남아 있다.  

8 오른쪽 어깨는 완벽하게 목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강력한 임팩트와 릴리스 이후에도 여전히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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