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비, 정부가 100% 책임 져야"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11.2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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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아이들 일은 누가 공약했건 지켜져야”

지난 1월 인터뷰 이후 열 달 만에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은 내부 구조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벽면은 형형색색 파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시장실 한쪽 공간은 아예 자료 보관 창고가 됐다. 그동안 쌓인 자료들을 둘 공간이 없어 구조를 바꾼 것이다. 박 시장이 직접 이슈별로 모으고 정리한 자료들이다.

서울시와 관련된 온갖 업무를 챙기고, 정치적으로는 차기 대권 지지율이 선두권을 달리다 보니 박 시장은 늘 이슈의 중심에 선다. 최근엔 무상보육과 관련한 논란이 한창이다. 11월20일 시사저널이 박 시장을 만났다.

분 단위로 시간을 활용하며 바쁘게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족과 보내는 등 개인 시간은 없는가.

사실 그동안 전혀 그런 걸 못하고 살았다. 요즘은 반성하고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중이다. 직원들이 빨리 퇴근하게 하려면 나부터 일찍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보통 오후 6~7시에 퇴근하고,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면 9~10시다. 요샌 집에 가서 드라마 <미생>을 즐겨 본다. 어쩜 그렇게 만화책과 캐릭터들을 똑같이 만들었는지 기가 막힌다.

최근 무상급식 친환경 농산물 비율을 70%까지 늘린다고 들었다. 서울시 예산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아이들 먹이는 급식 아닌가. 난 궁극적으로는 당연히 100%까지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계약 재배로 유통 단계를 확 줄이면 된다. 일반적으로 농산물을 구매하면 다단계를 거쳐 비용도 들어가고 농약 함유 여부도 따지기 힘들다. 그런데 계약 재배로 협약을 맺으면 친환경 농산물을 확보할 수 있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농민도 돕고, 시민들과 학생들도 동시에 돕는 게 가능하다.

무상보육과 관련해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는데, 이를 비판하는 세력도 있다.

내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아이들 먹이고 기르는 일은 누가 공약을 했건 지키는 게 맞다. 재정이 문제인데 무상급식의 경우 서울시가 주도했으니 비용이나 관리 책임을 지는 게 맞지만, 무상보육은 중앙정부가 공약하고 시행하기로 약속했으니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는데 자꾸 지방정부에 전가하고 있다. 무상보육 관련 재정 중 65%가량을 서울시가 부담한다.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더 원칙적으로 이야기하면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는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것이 맞다. 지방정부는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펴는 게 역할이고 큰 프로젝트는 중앙정부가 맡아야 한다. 최근 스웨덴 전 총리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의 책에도 복지국가로 가는 10대 원칙 중 하나로 예산을 지방정부로 전가하지 말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무상보육 비용의 어느 정도를 중앙정부가 맡는 게 합리적이라고 보는가.

그 대상이 서울 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에 해당되니 정부가 100% 다 부담하는 게 맞다. 지금 이른바 매칭 방식으로 중앙이 일방적으로 정한 비율로 지자체들이 부담하고 있는데 우린 세수도 정해져 있고 맘대로 늘릴 권한도 없다. 한정된 재원 안에서 복지 디폴트를 선언하는 지방정부도 생기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도 서울시는 정부와 협력해 우리가 할 몫을 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 행정을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지난 여름 한강종합개발 TF 구성에 합의한 것이나 최근 홍릉 월드에이징센터 건립 계획 발표는 기존 전시 행정과 뭐가 다른가.

한강 생태를 복원하자는 것은 지금도 변함 없는 원칙이다. 한강은 시민들에게 너무도 중요한 공간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대도시 안에 이렇게 큰 강은 없다. 파리의 센 강을 가도 사실 개천과 같은 수준 아닌가. 이런 점 등을 고려해 시민들이나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생태 복원과 시민 편의라는 투 트랙 전략은 모순되지 않는다. 월드에이징클러스터 건립은 서울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홍릉 부근에 있던 카이스트·농촌경제연구원 등이 다른 도시나 외곽으로 나가게 됐다. 일종의 위기인데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월드에이징센터를 만들어 의료관광단지로까지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번 본지와의 인터뷰 때 “가든파이브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했는데 대책을 마련했나.

주춧돌을 잘 놓아야 건물이 잘 서는 법이다. 처음부터 청계천에서 이주하는 분들을 위한 정책으로 띄엄띄엄 만들어놓으니 개발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상가 개발이란 것은 고도의 치밀한 계획과 일괄적 정책이 필요하다. 현장을 가보고 고민 끝에 일괄 임대 방식으로 가자는 결론을 내렸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새빛둥둥섬·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문제도 서울시 예산을 거의 안 쓰고 해결했다. 이런 문제 있으면 불러달라.(웃음)

제2롯데월드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특히 서울시가 임시 개장 승인 조건으로 주차 사전예약제 및 전면 유료화를 요구해 시민들에게 불편을 전가했다는 비판이 일던데.

그 메시지는 곧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제2롯데월드와 더불어 문정동 일대가 개발되고 위례신도시가 채워지면 그 일대는 교통지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수요 관리를 안 할 수가 없다. 반대로 그런 정책을 안 했으면 주변이 엄청 혼잡해졌을 텐데 그렇다면 더 큰 원성이 나왔을 것이다. 고육책으로 내린 결정이다.

‘서울 시정 4개년 계획’ 안에 있는 ‘도시 재생’이 기존 ‘뉴타운’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뉴타운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도시 재생은 전 세계적인 보편적 흐름이다. 뉴타운과 다른 점은 사람 중심 개발이라는 것이다. 전면 철거하고 그 위에 아파트 세우는 게 뉴타운이라면 도시 재생은 그 동네의 역사, 산업적 생태계를 존중해 개발을 하겠다는 것이다. 훨씬 자연스럽고 발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식이다. 기존에 살던 사람을 몽땅 외곽으로 내보내는 방식은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는 서울의 산업적 생태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내년엔 아예 도시재생본부를 만들어 향후 4년간 2조원을 투자할 것이다. 낙후된 도시의 인프라 기반을 살려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만드는 일이다.

‘서울 시정 4개년 계획’과 관련해 다른 분야 예산을 아껴 시행하겠다는 것인데 어려움이 없나.

어려움은 많지만 나는 늘 위기를 기회로 생각한다. 예산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낭비 예산을 없애고 수익 모델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경우 대중교통만으로 매년 1조원씩 적자가 난다. 요금 중심의 수익이 아닌 역세권 개발 등 자체적 수익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지난 3년간 해온 것들을 보면 사실 할 것 다 했다. 그러면서도 올 연말까지 채무도 7조원 정도 줄이게 된다. 혹시 경영상 위기가 있는 기업들 데려오면 해결해주겠다.

시민운동가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대권 후보 박원순 중 가장 맘에 드는 칭호와 그 이유는.

나는 건배사도 사자성어로 ‘오직 서울, 오직 시민’만 한다. 서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국 도시들이 영향을 받는다. 이미 23개 외국 도시에 영업 모델을 수출하고 있다.

솔직하게 묻고 싶다. ‘대권 후보 박원순’으로 거론되는 것을 왜 그렇게까지 불편해하나.

서울 시정에 ‘올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을 잘할 생각만 해야지 그걸 못하면서 다른 걸 생각할 수 있겠나. 서울시장이라는 자리가 워낙 정치 영역에서 중요한 위상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오직 시정에 전념하고 싶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수인 서울시의회를 생각했을 때 당과의 관계도 중요할 것 같다.

결국 시민의 삶의 질을 가꾸는 목적은 같다. 하지만 방식이나 내용에서 우리가 실수하는 부분은 지적을 받고 함께 가는 것이 맞다. 다수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지만 시의원은 시의원이다. 나도 시정 질의 때 많이 혼나는데, 때론 괴롭기도 하지만 그게 좋은 것이고 민주주의다. 견제와 비판을 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야당 출신 서울시장으로서 (여당의 아성인) 강남 3구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균형이 중요하다. 강남과 강북 격차를 해소해 지역 격차를 줄일 필요가 있다. 영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출신이 당선되고 호남에서 새누리당 출신이 당선되듯 강남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사심 없이 그런 마음이다. 지난 선거에서는 송파에서는 내가 2만표 앞섰고 강남구 등의 득표도 전보다 상당히 올라갔다. 제 마음을 알아주시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으로서 다른 국가 도시들 중 배우고 싶거나 부러운 도시 딱 한 곳을 꼽으라 하면.

전 세계적으로 모든 도시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이미 배우는 수준을 넘어 22개국 23개 도시에 배운 것을 나눠주고 있다. 뉴질랜드 웰링턴의 교통카드 정산 시스템 구축, 베트남 다낭 시의 도시개발 전략컨설팅 등 기업들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서울의 시정을 수출하고 있다.

어떤 서울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그게 어디 내 생각대로 되나. 그런 욕심 자체를 버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되면 많은 시정이 왜곡될 것이다. 난 그저 시장의 꿈이 아니라 시민들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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