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억짜리 ‘쪽지’ ‘카톡 문자’ 나도는 국회
  • 이준한 |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4.11.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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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정 파탄 ‘나 몰라라’…지역구 챙기기만 골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시다”다. 여전히 복사 용지에 적힌 쪽지가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쪽지 예산’을 막겠다고 하니, 이젠 아예 쪽지 대신 눈에 잘 안 보이는 카카오톡 문자가 활개를 친다. 이 쪽지 한 장, 저 카톡 문자 하나가 많게는 수십억 원짜리다. 이 쪽지 한 장, 저 카톡 문자 하나가 모이고 쌓여서 올해도 수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바꾸게 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에 버금간다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물론 공무원연금 개혁까지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자기 지역구 예산을 챙기기 위해 앞을 다투는 것은 물론, 서로 선심을 써가며 민원성 예산을 주거니 받거니 지켜주는 중이다.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막을 올린 상임위원회 예산안 예비심사 때부터 시작돼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열리는 국회 본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11월18일 새정치연합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 우윤근 원내대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왼쪽부터)가 국회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토교통위, 7조2000억원이나 증액

원래 새해 예산안은 회계연도가 개시되기 90일 전까지 예산편성권을 가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다. 그 후 예산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예비심사를 받는다. 올해 소관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를 거치면서 376조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은 14조원 이상 늘어났다. 대통령 선거 공약인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이 중단 위기에 처했는데 지역구 예산을 지키려는 국회의원들의 쪽지와 카톡 문자 덕에 내년 경기도 예산(17조8185억원)과 부산 예산(9조1909억원) 사이에 해당하는 혹이 하나 더 붙어버린 것이다.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편성해 제출한 예산안을 국회가 손질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국회의원들은 정부의 예산안을 철저하게 심사하고 부조리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국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의 역할이다. 또한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유권자의 이해를 반영하는 예산안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책임과 의무일 것이다. 그러나 예산 심의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이 유권자의 이해보다는 자신의 재선만 위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는 통에 정부 재정은 더욱 악화되고 국가 경제는 더욱 침몰한다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상임위원회는 어차피 예산안조정소위가 감액할 것을 알기 때문에 예비심사 과정에서 예산을 최대한 늘려 잡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경제가 최악인 올해 예비심사 과정에서 증액된 예산 규모가 역대 최대라는 사실이다. 이 틈을 타 지역 도로와 철도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무려 7조2000억원이나 증액되었는데, 이것 역시 역대 최대 규모다. 국토교통위에 몰린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예산이 인천의 내년 예산(7조7648억원)과 비슷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도 받고 대체 토론과 찬반 토론 및 표결을 통과한 예비심사 내용은 예결위의 예산안조정소위로 넘겨진다. 과거에는 계수조정소위로 불렸던 예산안조정소위는 또다시 학연·지연·혈연 등을 총동원한 쪽지와 카톡 문자가 오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예산안조정소위는 먼저 예산안의 감액 심사부터 진행한다. 여기에서는 여야 국회의원 15명이 전체 예산안을 보면서 중복 예산도 잡아내고 불필요한 예산도 솎아내며 예산의 우선순위도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도 선심성 민원 예산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올해도 법정 시한 내 통과 어려울 듯

더 큰 문제는 그다음에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진행되는 증액 심사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은 여야 간사 두 명만 참가한 채 진행되는데 어떠한 논의 결과도 회의록 등으로 남지 않는다. 바로 이 깜깜이 심사 과정에서 과거와 같이 올해도 ‘쪽지 예산’과 ‘카톡 예산’이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올해도 여야에서 이구동성으로 쪽지 예산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여당 원내대표는 물론 예산안조정소위 여당 간사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의 몸이 안 따라가고 정부는 알아서 국회의원들의 비위를 맞춰준다. 대표적으로 지난 7월 보궐 선거에서 호남에 예산 폭탄을 떨어뜨리겠다고 공약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 실세의 지역구에는 이미 수백억 원의 건설 관련 예산이 늘어났다. 기재부에서는 국회 요직과 양대 정당 지도부의 지역구 예산에 대해서는 알아서 챙겨주기도 한다. 이러한 국회와 정부의 짬짜미 의식과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쪽지 예산을 없애겠다는 말은 선량하고 힘없는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구태의연한 쪽지 예산과 카톡 문자 예산을 없애기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의 관행을 뜯어고치는 것은 물론 제도적 정비에도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현행 국회법 84조 5항에 의하면 ‘예산결산특별위는 소관 상임위의 예비심사 내용을 존중하여야 하며, 소관 상임위에서 삭감한 세출 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게 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경우에는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외의 경우에는 예결위가 마음대로 해도 현행 국회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법적 맹점을 없애려는 법률 개정안이 이미 6건씩이나 제출되었건만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는 2년 동안 할 일을 하지 않고 그저 계류시키는 중이다. 이렇다 보니 국회에 스스로 개혁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의심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예산안을 법정 기한 안에 통과시키는 것과 관련해 여야가 옥신각신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우여 교육부총리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가 만나 새해 누리과정 예산으로 5600억원을 순증하기로 합의했다가 여당 지도부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이로 인해 법정 시한 안에 예산안 통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 사이 쪽지 예산이라도 줄어야 할 텐데 오히려 늘어날까 걱정하는 통에 국민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경제는 악화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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