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스타 X파일] #4.스타들 무기로 ‘절대 갑’ 방송권력 무너뜨리다
  • 이기진│PD ()
  • 승인 2014.11.2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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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라인음향과 SBS의 전쟁…이후 권력 관계 바뀌어

특이한 것은 SM에서 이수만을 부르는 호칭이다. 지난 9월 부인의 사망 때도 SM은 이수만을 프로듀서로 호칭했다. 그는 수천억대 주식을 보유한 SM의 오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그의 공식적인 호칭은 프로듀서다. 더 나아가 SM 기업 내에서는 그를 회장도 사장도 아닌 선생님으로 부른다. 가수뿐 아니라 직원들도 그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이수만을 얘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폭넓은 인맥이다. 그의 인맥의 핵심은 이른바 K2 라인으로 통하는 경복고 동문이다. 모교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애정은 유명하다. 그는 2012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함께 ‘자랑스러운 경복인’ 상을 받았으며, 소녀시대 등 소속 가수들을 모교 축제에 출연시키기도 했다. 경복고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대한항공 조양호, 삼양사 김윤, 신세계 정용진, CJ 이재현, 현대백화점 정몽근·정지선, LG 구본근,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 등 쟁쟁한 그룹 오너들의 출신 학교로 유명하다. 정치 쪽에서도 문희상·김진표·맹형규·남경필·김덕룡·이인제·원혜영·이한동·이계안·유승민·봉두완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유명인이 졸업했다. 김상협 전 고려대 총장, 최종찬 전 건교부장관, 김동진 전 국방부장관, 이인원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이재창 전 환경부장관, 이석채 전 KT 회장,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등이 경복고 출신이다. 소설가 황석영 등 수많은 문인과 화가, 법조인이 배출되었다. 이런 인맥으로 그는 특강 등에 불려 다니고 소속 스타들과 관련된 청탁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가 2011년 6월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인 파리’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터폴 수배에도 불구속…막강 인맥 거론

2000년대 초, 그가 주식 관련 조사를 받을 때 인터폴에 수배되었음에도 바로 구속되지 않고 풀려나자, 언론에서는 그의 인맥이 작용했다는 의구심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그는 꾸준히 정치권 입문 가능성 0순위 후보로 오르내린 바 있다. 그의 선후배들이 대중문화계 선두 주자로서 그의 가치를 탐내 러브콜도 보냈고, 언론에서는 후보 물망에 자주 올렸다.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이수만을 평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약했던 스타권력을 정점에 올려놓았다는 점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업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특히 음반업계의 폭발적 성장은 엔터테인먼트가 산업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댄스 장르를 주축으로 성장한 대중음악계에선 여러 가수가 음반 100만장 판매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것이 팬덤 현상이다. 소녀 팬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기 가수들의 팬클럽은 음반과 공연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무서운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자 그들을 등에 업은 스타들과 기획사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대중문화계를 주도하며 절대 권력으로 군림해온 방송사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이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주는 팬들을 등에 업고 ‘방송권력’과 맞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당하게 방송사에 자신들의 요구를 하고 때론 출연 거부라는 초강수를 두며 힘을 과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형 기획사들이 방송권력에 맞섰다. 1990년대 초·중반, 가요계 최대 파워를 과시하던 라인음향과 방송사 간의 숨 막히던 힘겨루기는 그 시작이었다.

신승훈·김건모·박미경·노이즈·클론 등 당대 최고 빅스타들을 보유 중이던 라인음향은 소속 스타들의 방송 출연을 무기 삼아 당당하게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주장했고, 때론 방송사에 맞서 소속 가수들의 방송 출연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SBS TV의 가요 프로그램을 연출하던 필자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방송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 한 예가 1995년 발생한 SBS와 라인음향의 전쟁(?)이었다.

필자는 김건모의 <인기가요> 출연 펑크 사건을 기화로 PD들의 뜻을 모아 김건모의 무기한 출연 정지를 결정했고, 라인음향 역시 소속 가수들의 SBS 출연을 전면 보이콧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치 국면은 무려 3개월간 이어졌고, 이는 언론과 대중, 엔터테인먼트업계 전체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결국 이 갈등은 라인음향 측이 박미경의 신곡(<이브의 경고>) 발매를 앞두고 유감을 표시하며 종지부를 찍었다. 서로 간에 큰 상처를 남긴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방송권력의 승리로 끝났지만, 크게 성장한 스타권력의 위세를 증명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스타권력이 이전까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던 방송권력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점차 방송권력을 넘어서는 시발점이 되었다.

방송사의 과한 요구에 ‘출연 보이콧’ 대항

그 후 방송권력과 스타권력은 지속적으로 갈등하고 부딪치며 힘겨루기를 이어갔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마침내 균형추가 급격히 기울어지게 된다. 그 중심에 서서 스타권력의 파워를 극대화한 장본인이 바로 이수만이다. 그는 H.O.T의 성공 이후 SES·신화·플라이투더스카이·동방신기·슈퍼주니어·소녀시대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면서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선두 주자로 올라섰다. 그러면서 그는 정말 지독하게 방송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국 유학 시절 선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경험한 그는 매사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방송권력과의 정면 대결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방송이 과한 요구를 해오거나 불합리한 행태를 보이면 바로 대항했고,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해당 방송사 프로그램에 소속 스타 전원의 출연을 보이콧했다. 이미 주도권을 상실한 방송권력은 그의 눈치를 보기 바빴고, SM은 전체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 극단적인 예가 동방신기 해체 후 SM을 떠난 멤버들이 만든 JYJ에 대한 SM의 대응이다. 과거 H.O.T 해체 후 탈퇴 멤버들이 JTL을 결성한 후 큰 상처를 입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인지, 이수만과 SM은 적극적으로 JYJ의 방송 출연을 저지했다. 때문에 국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JYJ 멤버들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지상파 방송에 가수로서 서지 못하고 있다. 서슬 퍼런 SM의 위세 때문이다.

이수만의 영향은 그 후 빠른 속도로 다른 기획사들로 퍼져나갔다. 최근 SM이 제시카 사건과 XO 중국 멤버 탈퇴 파동 등을 겪는 와중에, 시가총액 1위로 올라선 양현석의 YG, 박진영이 이끄는 JYP, 연기자 중심으로 성장한 싸이더스(IHQ), 비·비스트·포미닛 등이 소속된 큐브엔터테인먼트 등도 이미 방송권력을 뛰어넘는 파워를 과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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