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표현의 자유 보장돼야 할 공인”
  • 김정범 변호사·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 승인 2014.12.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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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손해배상 책임 인정되기 어려울 것”

박근혜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정윤회씨가 시사저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시사저널이 자신을 정권의 막후 실력자로 지목해 관련된 여러 의혹을 보도함으로써 가족들이 정신적 충격을 겪어 이혼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인 공적 인물이 아니라 단순한 일반인이기 때문에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강력히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언론들은 정씨와 부인 최 아무개씨의 이혼 소식을 전하면서, 부인 최씨가 올해 초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신청을 냈고, 지난 5월 조정이 성립됐으며, 이혼 조건 중에 결혼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서로 비난하지 말자는 특이한 조항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이 3월23일 보도한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기사와 4월8일 보도한 ‘“정윤회가 승마협회 좌지우지 한다”’ 기사. ⓒ 시사저널 이종현
정윤회 이혼 사건 기록 재판부에 제출해야

결국 정윤회씨가 시사저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크게 두 가지 쟁점을 가지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정씨와 부인 최씨의 이혼 사유가 무엇이냐, 다른 하나는 정씨가 공적 인물이냐 아니면 단순한 사인이냐의 문제다. 이혼 사유가 언론 보도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살펴볼 필요 없이 손해배상 청구는 이유가 없는 것이며, 언론의 보도가 이혼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될 경우에 비로소 정씨에 대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발생 여부가 문제가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언론의 표현 자유와 상대방의 명예훼손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이해관계를 조절할 것이냐를 두고 헌법학에서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우선 이혼 원인에 대해서는 정윤회씨와 부인 최씨가 진행했던 이혼 사건의 기록을 가져다 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시사저널 측에서는 법원에 인증기록송부촉탁서를 제출해 이혼 사건 기록 전체를 해당 재판부로 보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재판부나 정씨 측은 시사저널의 이러한 요청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부인 최씨가 처음 이혼을 신청했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혼에 합의하면서 어떠한 조건이 오고 갔는지는 재판 기록을 통해 충분히 검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혼 조건을 비밀로 해서 합의가 이뤄졌다면 정씨는 이번 재판을 통해 스스로 이혼의 원인과 합의 조건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다음으로 정윤회씨가 공적 인물이냐 여부다.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경우 언론의 자유와 충돌하게 되는데, 이 경우 상대방이 공인이냐 아니면 사인이냐에 따라 어느 쪽 권리가 더 보호받아야 하는가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명예는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의 핵심적 내용을 이루지만,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 포함)와 충돌하는 경우 어떤 권리를 우선할 것인지가 문제되고, 특히 공적 인물(public figure)의 경우에는 사인에 비해 언론의 자유가 좀 더 강력하게 보장받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우리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2002년 1월22일 선고, 2000다37524 판결 등 참조)은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 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 기준에 차이를 둬야 하고, 사적인 사안의 경우 명예 보호가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사안의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 “공적 사안, 언론 자유 제한 완화돼야”

그래서 언론에서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 ‘사적 관계에 관한 것인가 공적 관계에 관한 것인가에 따라 차이가 있는바, 상대방이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 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 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 기준에 차이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그 평가를 달리해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하며, 상대방이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의 여부도 또한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적 인물이냐, 단순한 사인이냐에 따라서 명예훼손의 적용 범위를 달리한다는 것인데, 공적 인물의 경우에는 도덕성, 청렴성, 업무 처리 등에서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보도’가 아닌 한 언론의 자유가 제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 1999년 6월24일 선고. 97헌마265 결정)도 ‘신문 보도의 명예훼손적 표현의 피해자가 공적 인물인지 아니면 사인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 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인지의 여부에 따라 헌법적 심사 기준에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사실은 민주제의 토대인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므로 형사 제재로 인해 이러한 사안의 게재를 주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신속한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신문의 속성상 허위를 진실한 것으로 믿고서 한 명예훼손적 표현에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거나, 중요한 내용이 아닌 사소한 부분에 대한 허위 보도는 모두 형사 제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시간과 싸우는 신문 보도에 오류를 수반하는 표현은, 사상과 의견에 대한 아무런 제한 없는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는 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고, 이러한 표현도 자유 토론과 진실 확인에 필요한 것이므로 함께 보호돼야 하기 때문이다’라면서 표현의 자유가 더 보호돼야 하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물론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데도 사실관계를 알아보지 않고 보도한 경우에는 당연히 면책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명예훼손적 표현이 진실한 사실이라는 입증이 없어도 행위자가 진실한 것으로 오인하고 행위를 한 경우,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또한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느냐라는 요건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그 적용 범위를 넓혀서 해석해야 하고, ‘비방할 목적’이 있느냐의 판단은 그 폭을 좁혀서 제한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위 헌법재판소 결정 참조).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좀 더 강력하게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리 판례의 입장은 미국 판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공적 인물(public figure)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행위자에게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어야 하고, 상대방은 그에 대해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 악의라는 것은 표현이 거짓임을 알았거나 진실 여부를 파악하려 들지 않고 애써 외면한 경우를 말한다(New York Times v. Sullivan, 1964). 미국 판례에서 말하는 ‘현실적 악의’는 우리 판례가 명예훼손으로 인해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는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데도 사실관계를 알아보지 않고 보도한 경우’와 사실상 동일한 내용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공적 인물이란 무엇인가. 공적 인물은 사회적으로 널리 명성을 얻거나, 스스로 공론의 장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사회에 영향력을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 대중의 관심사로 사회적 영향력이 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정윤회씨가 시사저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한 소장.
논쟁의 중심에 있는 사람도 공적 인물

특정 사안에 대해 공공의 장에서 논쟁이 이뤄지고 있는 경우 해당 논쟁의 중심에 있는 사람도 그 논쟁과 관련해서는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 공적인 인물과 관련성이 있는 사람도 공적 인물에 대한 보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가 강력하게 보장돼야 한다. 공적 인물에 관한 사항을 보도하는 데는 당연히 관련자에 대한 보도가 함께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렇게 해석하지 않을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를 좀 더 강력하게 보호하려는 근본 취지가 몰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윤회씨는 표현의 자유가 더 강력하게 보장돼야 하는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 따라서 시사저널의 보도가 허위의 사실 또는 그 인식이 가능한 상태에서 오로지 정씨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에서 이뤄졌다는 입증이 없는 한 시사저널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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