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힐러리의 앓던 이 빼주다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12.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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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개혁안 발표로 대선에 도움…공화당은 혼돈 빠져

11월20일 목요일 저녁 8시(미국 동부 시각), 이른바 황금 시간대인 ‘프라임 타임(prime time)’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는 빅뉴스가 터져 나왔다. 500만명에 달하는 불법 체류자들의 추방을 유예하는 것을 포함해 대통령의 사면권을 시행하는 이민개혁안이 발표된 것이다. 

그동안 민주·공화 양당 상원의원들은 불법 이민의 합법화와 국경 단속 강화 두 가지 방안을 함께 추진하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러나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하원에서는 국경 단속 강화만을 실시하도록 주장했고 그래서 통과되지 못한 채 이 법안은 계류 중이었다. 이런 가운데 11월4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대승으로 양원 모두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하자,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오바마의 구상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민 개혁을 행정명령으로 돌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 EPA 연합
이날의 대통령 발표는 이미 하루 전부터 예고돼 있었지만 미국의 주요 방송사인 ABC·NBC·CBS·FOX 등의 생중계는 없었다. 지역 계열사가 본사의 방침을 어기고 생중계하는 경우만 있었을 뿐, 주요 방송에서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방송사들은 표면적으로 “정치적인 기자회견을 최고 시청률 시간에 내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집권 초기였거나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대패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레임덕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게 이들의 평가다.

히스패닉계 표 얻는 데 기여할 듯

오바마 대통령의 레임덕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인물은 따로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다.

일단 오바마 대통령의 후반기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이라는 점이 걸린다. 그렇다고 무려 500만명이나 혜택을 받게 되는 이민개혁안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히스패닉계와 아시아계 등 불법 체류자의 대다수는 민주당 지지 세력이다. 하지만 이를 대놓고 지지했다가는 백인 등 기존 지지자들의 표를 잃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나마 차기 대선 주자들의 캠페인이 시작되기도 전에 오바마가 이민 문제에 결단을 내린 것은 힐러리에게 ‘앓던 이’를 빼준 것과 다름없다. 중간선거가 치러지기 전,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개혁안 발표를 연기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자 이민단체는 물론 다양한 소수인종 단체가 압력을 가한 곳은 힐러리였다. 하지만 차별화하기에는 이민자를 둘러싼 이슈 자체가 단순 계산을 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민자 국가 미국의 2050년을 예측해보면 알래스카의 백인은 그곳 전체 인구의 절반을 밑돌게 된다. 그렇다 보니 점점 유색 인종의 표가 대선의 향방을 좌우한다.

오늘날 미국에는 1000만명이 넘는 불법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중남미에서 건너오는 사람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그들에게 우호적인 정치인은 불법 이민에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려 하고, 적대적인 정치인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담장을 세우는 것처럼 단속하려 한다.

미국은 양당제 국가지만 이민 문제는 소속을 가로지르는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입장이 다르다. 히스패닉계의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은 가까운 히스패닉 친척이라도 불러 옆에 세우지만, 노조와 밀착한 정치인은 이민자 증가로 생기는 임금 저하를 우려해 이민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공화당에서도 노동자의 임금 하락을 원하는 기업가와 친하다면 이민자를 환영하지만, 이민자들이 가져올 사회적 혼란에 불만을 느끼는 지역 여론에 압박을 받는다면 해당 의원은 이민에 엄격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공화당 차기 대권 주자들, 득실 계산 분주

이처럼 복잡하지만 대선을 앞두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민자 정책에 대한 정치인의 입장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유는 미국 특유의 대통령 선거 방식 때문이다. 대통령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이라면 당의 공식 후보로 인정되기 위해 각 주에서 예비선거와 당원집회를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투표율이 낮아 당원집회의 경우에는 1~2% 정도에 불과하다. 평일에 열리는 예비선거와 당원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특정 쟁점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열성적인 유권자가 많다. 즉 이민자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공화당 후보 가운데 상대적으로 유연한 후보라도 좀 더 강경한 반대파가 되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민자 문제에 어정쩡한 민주당 후보는 더욱 친밀한 척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앓던 이를 뽑아준 오바마의 선택은 힐러리에게 도움이 될까. 최근 대선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분명해진다.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는 약 71%의 히스패닉계 표를 받았다. 반면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는 27% 획득에 그쳤고 이는 패배로 직결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행정명령으로 사면을 받게 될 불법체류자 500만명은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원군이 될 가능성이 크고 힐러리에게 긍정적이다. 반면 공화당은 혼돈에 빠졌다. 향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려면 본선에서 중남미계의 지지를 일정 정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2016년 선거를 노리는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산토끼를 잡기 위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런데 이제 집토끼를 잡기 위해 대통령의 이민개혁안을 강도 높게 비판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풀기 어려운 퍼즐을 만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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