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장 창조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12.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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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펴낸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명작 스캔들>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를 모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53). 그가 새 책을 내고 독자의 사랑까지 받고 있다. 2006년 처음 구상했던 내용이 8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고 한다.

그가 “<에디톨로지>는 지금까지 내가 쓴 책 가운데 가장 진지하게 몰입한 책”이라고 했지만 책은 진지하기는커녕 시작부터 자극적이다. 첫 장을 펼치면 모래밭에 누운 나체의 여인 사진이 나온다. 두 팔로 풍만한 가슴을 감싼 여인의 배꼽 아래에 아이팟이 놓여 있는 사진이다. 김 소장은 이 사진을 두고 변태와 창조적 인간을 분류하는 법을 설명한다.

“생식기에 집중하는 것은 동물적 본능을 가진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본능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자만이 남과 다른,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다. 시선은 곧 마음이다. 무엇을 바라보느냐,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상이 정의되고, 세계가 구성된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여태껏 살아온 방식이다. 우리는 익숙한 방식과 타성에 젖어 습관대로 사고하며 일상을 반복한다.”

ⓒ 21세기북스
김 소장에게 창조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창조는 기존에 있던 것을 구성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한 것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의 또 다른 편집이라는 뜻이라면서, 편집의 구체적 방법론을 명명하기까지 한다. 책 제목에 쓴 ‘에디톨로지(Editology)’다. 김 소장은 통섭·융합·크로스오버 등 ‘에디톨로지’와 비슷한 개념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너무 세분화돼 서로 전혀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나눌 수 있는 최소 단위로 나누고, 각 부분을 자세히 분석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근대의 해석학은 그 한계를 드러낸 지 이미 오래다. 오늘날 통섭·융합을 부르짖는 이유는 이 낡은 해석학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에디톨로지인가. 통섭이나 융합은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뭐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구체적 적용도 무척 힘들다.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가 그저 마주 보며 폼 잡고 앉아 있다고 통섭과 융합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에디톨로지는 인간의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편집 행위에 관한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 <에디톨로지>는 고리타분한 이론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찾아내고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창조’ 혹은 ‘편집’ 행위를 설명한다. “PD나 영화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편집자다. ‘제7의 멤버’로 불리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만드는 자막은 이제까지 우리가 봐왔던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독자의 호응을 끄는 대목도 꽤 많다. “인간이 가장 창의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멍하니 있을 때, 생각은 아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그러다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할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꾸로 짚어나간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찾아냈을 때, 자신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날아다녔던 생각의 범위에 놀라게 된다.”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의 또 다른 편집

김 소장은 스티브 잡스의 말을 빌려 ‘에디톨로지’의 배경을 설명했다. 21세기 가장 창조적인 인물로 꼽히는 그의 능력 역시 따지고 보면 ‘편집 능력’이었다며. 스티브 잡스는 “뉴스를 모으고 편집하는 조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편집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방법론으로 ‘지식 편집’을 강조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양질의 정보를 선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분류의 변신과 합체가 언제든 가능하다. 원고를 써야 할 때는 각 노트북과 노트북 안에 들어 있는 각각의 ‘노트’가 편집된다. 검색으로 각 데이터를 불러내 새로운 분류를 만든다. 네트워크적 지식의 생성이다. 내 에버노트에는 현재 수천 개의 노트가 저장돼 있다. 이어령 선생의 에버노트에는 1만4000개의 노트가 저장되어 있단다. 팔십 노인의 데이터베이스다. 정말 많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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