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물티슈 유해성 ‘엉터리’ 조사?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12.0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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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술표준원, 업체에서 낸 자료 바탕으로 조사…유해물질 독성 검사는 아예 안 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하 기표원)이 12월1일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물티슈에 대한 안전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표원의 물티슈 실태조사는 지난 8월30일 시사저널이 ‘치명적 독성물질 든 아기 물티슈 팔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한 후 물티슈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진행된 것이다. 이날 기표원은 “인체 세정용 물티슈 제품의 실태 확인 조사 결과, 물티슈에 사용하고 있는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가 화장품 안전 기준(0.1%, 1000mg/kg) 이하로 사용되고 있다”며 “물티슈 안전성 검사 결과 (모두) 안전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표원의 이번 물티슈 실태조사는 물티슈 제조업체 측이 제공한 자료를 기반으로 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등 객관성이 떨어져 논란이 예상된다.

왜 144개 제품 중 51개만 조사했나

이번 조사는 일부 물티슈에 대해서만 안전성 조사를 실시했을 뿐 전수조사를 한 게 아니다. 기표원 발표 자료를 보면 “국가기술표준원에서 물티슈 144개 제품을 구매해 제품 표시 성분과 업체에서 제출한 성분 배합비 자료를 토대로 세트리모늄계 성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51개 제품을 선별했다”고 적시돼 있다. 기표원은 이 자료에서 “(51개 제품 가운데) 26개 제품이 세트리모늄계 성분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모두 화장품 안전 기준에 적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포토
기표원은 제품 포장지의 전 성분 표기에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가 없거나 업체가 제출한 성분 및 배합비 자료상 이 성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돼 있는 제품은 조사 대상에서 아예 뺐다. 제품의 성분 표기나 업체 자료가 신뢰할 만한 것이었을까.

이번 실태조사 결과만 살펴봐도 전 성분 표기를 하지 않았거나 허위로 표기한 업체가 다수 적발(8개 업체, 9개 제품)됐다. 조사를 하지 않은 93개 제품 가운데에도 얼마든지 제품 성분 표기가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공정을 기해야 할 공적 기관이 업체가 제출한 성분 및 배합비 자료에 의존해 조사 대상을 선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화장품 안전 기준에 부합하는 양을 사용하고 있으니 안전하다’는 논리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그동안 물티슈 살균제 성분으로 쓰였던 CMIT(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치아졸리논) 역시 법적 기준에만 맞으면 아기 물티슈에 얼마든지 써도 된다는 말이 된다.

CMIT와 MIT 역시 화장품법상 사용상 제한이 필요한 살균·보존제 성분으로 등록되어 있고, 법적 허용치는 각각 0.0015%, 0.01%다. 그동안 업체들은 물티슈의 방부제 성분으로 CMIT와 MIT를 사용해왔는데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사용 중인 물티슈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논란이 커지자 업체들은 대체 성분 찾기에 나섰고 공교롭게도 그 성분이 바로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였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

시사저널은 지난 8월30일자 보도에서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의 유독성은 CMIT나 MIT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문제제기와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근거를 제시했다. 우선 안전보건공단의 물질안전보건 자료만 살펴봐도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의 독성 정도가 CMIT나 MIT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는 1970년대에 소독제로 사용한 이후 그동안 국내에 유통되지 않았던 성분이다. 화장품법상 제한이 필요한 살균·보존제 성분으로 등록돼 있지만 주로 샴푸나 린스와 같이 바로 씻어낼 수 있는 제품에 사용된다. 이 때문에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 성분을 물티슈의 방부제로 쓰기 위한 연구·개발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 성분을 물티슈에 도입했던 ㅁ업체 대표는 “국내 한 기업의 의뢰로 2년 전부터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 개발을 하게 됐지만 나중에는 이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중소업체들이 먼저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의뢰 업체는 이 성분을 도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개발 의뢰 업체가 도입을 미뤄왔던 성분인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다른 중소업체들이 왜 일시에 사용하게 됐는지 의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피해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온 국내 한 대학 연구팀 교수는 “CMIT·MIT와 CTAB(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비교해보니 예비실험 결과만으로도 CTAB의 독성이 가장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한 본 실험에 들어갈 경우 최소 6개월이 소요된다”고 덧붙였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소독제 성분의 유해성을 밝히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할 정도”라며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는 피부 상처나 입, 눈을 통해 몸으로 흡수되면 안 되는 물질”이라고 강조했다.

기표원은 이번 실태조사에서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 성분의 위해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았다. ‘화장품법에 등록된 성분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설명이 전부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주관 부처가 안일한 방식의 대처를 하고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물티슈 주관 부처의 허술한 관리 행태는 이미 ‘고질적 병폐’ 수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소비자단체나 언론, 국정감사 등을 통해 물티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지난 10월14일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산자부 산하 기표원의 허술한 물티슈 관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산자위 소속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표원은 최근 3년간 일부 물티슈에 대해서만 안전성 조사를 실시했을 뿐 전수조사를 실시해 안전 기준 적합 여부를 확인한 적이 없다”며 “물티슈 안전을 관리·감독하는 정부 소관 부처가 이원화돼 있는 게 이런 상황을 더욱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백 의원이 기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표원은 2012년 25개, 2013년 20개, 2014년에는 50개 물티슈 제품에 대해서만 안전성 실태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물티슈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고 괴로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늦은 감은 있지만 보람이 있었다.”

지난 12월3일 열린 ‘생활화학가정용품, 물티슈 관리 부처 이관 합동설명회’에 참석한 기표원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 관계자는 설명회에 강연자로 참석해 생활화학가정용품 및 물티슈 등 공산품 안전관리 부처의 이관 배경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논란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업체가 많을 것이다. 이 결과(세트리모늄 실태조사 결과)로 인해 물티슈가 더 이상 (안전성)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 안전을 관리하는 공무원의 말인지, 업계 대변인의 말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정부 기관 안전관리 책임자가 소비자 안전보다는 업체의 피해 여부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물티슈 실태조사를 기표원이 맡은 것부터가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물티슈업계 관계자는 “물티슈 관리 부처가 산자부 산하의 기표원인데 물티슈 안전성 실태조사를 다시 기표원이 한다는 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 아닌가”라며 “성분 유해성 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실태조사의 ‘키’를 기표원이 아닌 식약처가 쥐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12월3일 국가기술표준원과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생활화학용품·물티슈업계를 대상으로 소관 부처 이관에 관한 합동설명회를 열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기표원 “추가 조사 계획 없다”

현재 기표원은 시판 중인 물티슈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위해성 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기표원 생활제품안전과 관계자는 “업체가 제출한 배합 성분표, 제품 표기 등에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사용한 것으로 나온 제품뿐 아니라 성분 배합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업체 제품까지 포함해 모두 51개였다”며 “추후 나머지 제품들에 대한 별도의 조사 계획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이어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뿐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와 MIT 역시 법적 한도치를 준수하면 (아기 물티슈에 사용해도) 안전하다고 본다”며 “실태조사 결과 물티슈의 위해성 여부가 심각하지 않아 (실태조사 자료를 내면서) 해당 성분을 사용한 업체명이나 분석 방법 등의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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