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소통령’ ‘홍삼트리오’ 그리고 ‘문고리’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12.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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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들 국정 농단으로 정권 망쳐…진솔하게 규명하고 개선 계기 삼아야

#1. “실장님, 왜 그런 말씀을 했나요.”

아침 일찍이 김영삼(YS)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전화를 받은 박관용 비서실장은 한순간 말을 잊었다. 현철의 행적을 어제 오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로 다음 날 본인의 항의를 받았으니 그럴 게 당연했다. 아무리 ‘현철 관련은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민정비서실이 수집한 내용을 직보했는데 하루도 못 가 사달이 난 것이다. 이후 박 실장은 청와대를 서둘러 떠났다. 이후 정·관·재계를 주무르는 ‘소통령’ 현철을 가로막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고 청와대 참모진과 국정원 핵심을 장악한 그를 용훼하는 이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단골로 다니던 한 비뇨기과 의사의 비리 폭로로 현직 대통령 아들이자 최고 실세였던 현철은 감옥으로 향한다. YS 정부의 비극은 우연이 아니었다.

 

ⓒ 시사저널 포토
#2. “머시라고?” 김대중 대통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머시라고’는 YS의 ‘씰데없이’와 같은 어법이다. 청와대 민정팀이 VIP(대통령) 주변 동향, 특히 부인 이희호 여사와 홍일·홍업·홍걸 3형제 관련 보고를 할 때면 여지없이 재연됐다. 이후 민정팀 보고서에서는 물론 국정원 등에서도 대통령 가족 관련 비위 보고는 사라졌다. ‘옷 로비 사건’으로 영부인이 망신을 당하고, 비리에 연루돼 현직 대통령의 두 아들이 감옥으로 가는 추태는 청와대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권력 핵심이 서로 끼고돌다 보니 견제와 감시는 사라졌고 실세들이 줄줄이 교도소로 향하는 등 민심 이반은 정한 이치였다.

 

#3. “김 비서관, 뭐 이런 것을. 앞으로 말씀하실 게 있으면 나한테….” 노태우 대통령의 김옥조 민정2비서관은 아연실색했다. 엊그제 대통령에게 직보한 비리 문건을 박철언 정책보좌관 본인이 들이미니. 국정 농단은 안 된다며 ‘황태자’ 박철언 관련 종합보고서를 작성했고, 중차대한 사안이니 작성자가 직접 대통령께 보고하라는 민정수석의 지시에 따라 직보했는데 그런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러니 어느 누가 감히 ‘황태자’의 심기를 거스르겠나. 그나마 이병기 의전수석(현 국정원장) 등이 충언을 ‘감행’함으로써 발호의 상당 부분을 줄이기는 했으나 국정이 주름진 것은 분명했다. 이후 김 비서관은 국가보훈처 차장으로 ‘방면’됐다.

대통령 중심 못 잡으면 비선 발호

이렇듯 대통령이 좌정한 청와대 주변은 그렇고 그렇다. 정도 차이일 따름이다. 특정 계파 내지 그룹이 대통령을 감싸고돌 때 국정의 왜곡은 심각해지고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왜곡의 첫 단추는 끼리끼리 요직을 독점하고, 이들에 의한 이권 장악·개입으로 이어지는 게 공식이다. 권력 비선이 전횡을 일삼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아 국정 전체를 혼탁하게 만드는 딱한 상황은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등 역대 어느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현 정부의 행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귀를 의심케 하던 숱한 정부 인사 발표가 역시 ‘청와대 3인방’ ‘십상시’에서 비롯됐다는 신빙성 큰 자료들이 ‘정윤회 게이트’를 계기로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다. 시사저널이 ‘박지만 EG 회장 미행’을 보도할 때만 해도 세간에선 최고 권력 비선 내부의 해프닝성 암투쯤으로 여겼지만 그렇지 않음이 확인되는 중이다.

패거리 비선 국정 운영의 더 비극적 요소는 ‘믿을 수 있는’이라는 뒷골목식 요직 안배로 위기 경고마저 더디게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쌓인 적폐는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고 대통령의 위상을 근저에서 흔드는 험한 사태로 치닫게 만든다. 국정 농단의 규모·형태로는 사상 초유라고 할 ‘정윤회와 3인방’ 사태를 많은 사람이 개탄하면서도 다행스러워하는 소이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상화할 계기’를 찾았다는 점에서다. 한편 그 연장선상에서 ‘3인방’의 실상을 만천하에 알린 시사저널과 세계일보 등 언론의 역할과 더불어 문서 유출의 ‘정사(正邪)’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진실을 밝힌 언론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내부 문건을 외부에 흘린 게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것이다.

가짜가 인사 검증 총지휘한 해프닝도

“이상 6명 행정관 원대복귀 조치.” 1993년 2월 청와대 민정비서실에 내려온 인사 명령서다. 당시 YS를 앞세워 권력 중추에 진입한 측근들은 최우선 과제로 고위 공직자에 대한 ‘검색’에 돌입했다. 솎아내기가 본격화된 것이다. 여기엔 오랫동안 권력의 중심에 있던 TK(대구·경북)를 PK(부산·경남)로 갈아치우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외부에선 모두 ‘여당 사람’이지만 권력의 세계에서 ‘갈래’는 엄청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당시 방출된 행정관 중 하나가 현 김관용 경북도지사인데, 용산세무서장으로 내려간 그의 ‘죄명’은 행정관 중 연장자로서 떠나는 노태우 대통령의 장도를 비는 건배사를 한 것이다. 대통령의 촉수인 민정비서실 행정관은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공안·감찰 기관의 국·과장 중 ‘출신 성분’이 우량한 A급으로 충원되고 2~3년 복무 뒤에는 승진돼 나가는 게 항례다. 그런데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칼질이 가해진 것이다. 이 밖에 정부 고위직 가운데에도 좌천 등 불이익을 받은 이가 상당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 득세한 비서관 가운데 허위 경력자 등이 적잖았고, 무엇보다 칼자루를 휘두른 인사 담당 K비서관 본인이 완전한 가짜 학력 소유자였다. 가짜가 가짜를 색출한다며 공직사회 전체를 들었다 놨다 했으니…. 갓 출범한 정부가 뒤집어질 사건이었다. 이 희대의 사건 진상을 들춰낸 사람은 민정팀의 L·J행정관이다. 강직하면서도 빼어난 능력을 인정받던 L행정관은 K비서관이 졸업했다는 대학교 졸업생 명부 전체와 경호실의 기밀 자료까지 대조해 졸업장 위조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 엄청난 파장을 우려해 쉬쉬했고 J일보 기자의 취재망이 좁혀오자 K비서관을 내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대통령의 간청까지 동원해 사태를 얼버무린 청와대는 K비서관 진상을 파헤친 L행정관을 포상하기는커녕 경계했다. 그러면서 L행정관을 인사 조치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그가 J 제1부속실장의 거액 금품 수수 현장을 찍은 사진 등 청와대로서는 곤혹스러운 숱한 정보를 확보하고 던게 결정적이었다. 내부 고발자(whistle-blower)를 어떻게 봐야 할까를 숙고하게 만드는 대표적 사례다. L행정관이 아니었다면, 언론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K비서관 같은 황당한 권부 내 흑막은 끝내 감춰졌을 터이다.

행정관 비화는 ‘정윤회와 3인방’ 관련 문건 유출 혐의를 받는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 등을 어떤 시각에서 봐야 할지에 시사점을 준다. 국정 농단 현실 고발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 기밀유지 의무라는 법 규정 위반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여부다. 그게 누구건 사사로운 활용을 위해 문건을 빼나갔다면 모르지만 국정 농단 고발을 의도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검찰 수사가 국정 농단이라는 본질보다 말초적 행위에 집중되는 인상을 주는 탓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좀 더 확실한 진상 규명을 지켜봐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인사 난맥을 광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덧붙여 잘못을 고치는 진솔함은 접어두고 비판 언론이나 흘기는 폐습은 하루속히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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