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의혹 당사자들 정치적 책임 져야
  • 박명호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4.12.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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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인사 스타일이 문제 악화…청와대 참모진 대폭 개편해야

대통령은 당혹해했다. 당연하다. 이른바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 때문이다. 대통령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정책 현안을 집중 거론하면서도 발언의 3분의 1을 이 부분에 할애했다. 대통령은 “국정 책임자로서 2년 동안 발 뻗고 쉰 적이 없다”고 말을 꺼낸 뒤 이번 사태가 “있을 수 없는 일”이자 “힘을 빼는 일”이라고 했다.

다음 날 대통령의 언급은 더 강해졌다.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라고 했다. 임기 중반을 향해 가며 경제 회생과 민생 안정이라는 국정 과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청와대 내부자를 통해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데 대한 대통령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나 싶다. 대통령을 맡은 업(業)이지 않을까. 대통령의 언급은 이어졌다. “부적절한 처신은 일벌백계로 조치하겠다” “(언론이) 확인조차 하지 않고 의혹이 있는 것같이 보도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은 그것이 ‘루머’이자 ‘근거 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12월3일 정윤회씨 국정개입에 관한 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서울 도봉경찰서 정보과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 시사저널 구윤성
‘근거 없다’는 대통령의 말, 국민들 수긍할까

그런데 아쉽게도 여기까지였다.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은 얘기를 결국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최근 언급에 지금 제기되고 있는 의혹의 실체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이 듣고 싶었던 얘기는 ‘루머’와 ‘근거 없는 얘기’의 이유였다. 대통령의 일방적 결론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언급에 국민들이 과연 수긍할까. 이미 의혹은 번질 만큼 번졌고, 설(說)에 설(說)이 이어지며 당사자들은 정반대의 얘기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진심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유감스럽게도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된 대통령 기자회견은 한 번뿐이었다. 그것은 올 초 신년기자회견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국무회의 또는 수석비서관회의 등을 통해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야 했다. 사안의 성격이 이전의 것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안의 쟁점은 무엇인가. 첫째, 이른바 실세들의 권력투쟁과 비선의 인사 관여 등 국정 개입 의혹이다. 정윤회씨와 ‘비서 3인방’ 대(對)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파워게임 양상에 대한 소문은 그동안 무성했다.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일을 한 쪽의 반격으로 보기도 한다. 그동안 박지만 라인으로 알려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 아무개 경정이 청와대에서 쫓겨나고, 박 회장과 육사 동기인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임기 중 전격 경질되는 등 박지만 라인이 계속 밀렸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박지만 라인에서 역공(逆攻)을 펼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부 언론의 시각이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양측은 같은 문건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윤회씨는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을 “민정수석실에서 조작한 것”이라 하고, 조응천 전 비서관은 같은 문건에 대해 “사실일 가능성이 6할 이상”이라고 한다.

역시 양쪽의 다툼은 인사 문제가 핵심이었다. “경찰 인사는 부속실에서 다 한다”는 조 전 비서관의 언급도 그렇고, 지난 10월 있었던 국정원 기조실장 사의 반려 해프닝도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과 관련 있다는 설도 그렇다. 권력은 인사(人事)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동안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인사로 어려움을 겪었다. 인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졌고 현 정부는 ‘인사 참사’라는 평가를 들을 지경에 이르렀다. 대표적 예가 ‘깜짝 인사’다. 대통령의 1호 인사였던 윤창중 전 대변인 인사를 돌이켜보면, 왜 그런 인사가 있었는지 누가 관여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일절 없었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사였다. 그 이후의 인사도 설명이 없고 공감이 없는 인사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다. 설명과 공감만 없었던 것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보면 사전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인사이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다수설은 공식 라인이 아닌 비(非)공식 라인이 인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사가 있을 때마다 ‘누구누구 배후설’이 난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비공식적으로 누가 관여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책임질 사람도 없다. 시스템에 의한 인사가 아닌 비공식 라인에 의존한 인사는 폐쇄적 국정 운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웠고 결국 국민 공감을 얻지 못하는 국정 운영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청와대 관련자들의 말 바꾸기는 국민적 의구심을 더 증폭시켰다. 처음 그들은 “청와대 비서관들과 연락이 끊겨 인간적으로 섭섭했다”고 하거나 “정윤회씨를 10년 전쯤에 보고 안 만났다”고 했다. 그러다가 조 전 비서관의 반박 증언이 잇따르자 “지난 4월에 통화했다”고 말을 바꿨다.

참모들, 대통령에게 부담 주지 말아야

검찰 수사는 시작됐지만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해 명쾌한 결론이 날지 의문스럽다. 수사 결과에 대해 국민적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많은 사람이 현재 권력에 대한 수사가 과연 가능하겠는가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수사는 문건 유출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국정 개입 의혹은 정치적 공방과 논란의 대상으로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물론 문건 유출에 대한 수사도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청와대 문건 다량 유출설(說)까지 나돌고 있어 향후 주목되는 부분이다.

과거 정권을 보면 친인척 또는 측근들의 국정 개입 의혹은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주었다. 김영삼 정부의 김현철 국정 개입 파동과 김대중 정부 아들들의 이권 개입 의혹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는 ‘형님’들이 문제였다. 현 정부는 이제야 임기 중반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의혹 관련 당사자들의 정치적 책임이 불가피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든지 과장된 측면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성공이 그들에게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는 선택을 그들이 먼저 해야 한다. 나아가 ‘그들의 대통령을 위한 선택’은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등 여권 진용 대규모 개편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치는 인사(人事)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 의지와 정치적 지향점을 사람을 통해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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