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승석 애경개발 대표 땅 투기 의혹
  • 이천=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12.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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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메덴 리조트 주변 농지 대거 보유…이천시·검찰, 동시 조사 나서

애경그룹은 2013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온천리조트 ‘테르메덴’을 인수했다. 애경개발이 현재 이 리조트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애경개발은 애경유지공업이 최대주주(31.26%)다. 애경유지공업은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과 장남 채형석 총괄부회장, 차남 채동석 유통·부동산개발 부문 부회장, 삼남 채승석 애경개발 대표, 장녀 채은정 애경산업 부대표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오너 일가가 애경유지공업과 애경개발을 통해 이 리조트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이후 테르메덴은 서림리조트에서 AK레저로 사명을 바꾸고 몸집 부풀리기에 나섰다. 2013년 중순 1차 증설을 위한 개발 계획을 이천시로부터 승인받았다. 리조트 주변 부지도 추가로 매입했다. AK레저는 2014년 9월12일 이천시 모가면 신갈리 일대 1만5300㎡(4600평)의 논(전)과 밭(답), 임야 등을 40억원에 매입했다. 매각을 위해 신탁회사에 맡겨두었던 20만㎡(6만500평)의 임야도 귀속시켰다. 기자가 12월1일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주차장 증설과 캠핑단지 신설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애경 계열사가 개발 중인 리조트 주변에 오너 2세인 채승석 애경개발 대표가 농지를 매입해 땅 투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테르메덴 리조트 전경. ⓒ 시사저널 임준선
문제는 채승석 애경개발 대표가 리조트 주변의 농지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채 대표는 2014년 9월12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일대 농지 8377㎡(2534평)를 10억원에 매입했다. AK레저가 리조트 주변 부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테르메덴 리조트가 채  대표의 땅과 수백 m가량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알박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리조트가 추가로 개발되면 주변에 위치한 채 대표의 땅값도 자연스럽게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오너 일가 지배 테르메덴 개발 뒷말 무성

실제로 AK레저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회사 측은 올해 안에 야외 풀장과 노천 온천, 주차장 확장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찜질방이나 캠핑단지(캐러밴)도 연내에 준공할 예정이다. 2015년에는 야외 유수풀이 있는 별관동과 캠핑단지(오토캠핑장), 승마 코스를 조성하고, 2016년에는 컨벤션 기능을 가진 콘도미니엄과 한옥체험관(온천 및 숙박 가능)까지도 준공한다는 것이 애경 측의 청사진이다. 

리조트와 1㎞ 정도 떨어진 곳에는 남이천 I.C.가 들어서게 된다. 부지 매입은 모두 마무리됐고, 현재 I.C.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이천시는 인근 모가면 지역을 온천지구와 골프장, 일반산업단지, 민주공원 조성 등으로 구분해 남부 생활권역 중심 배후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2015년 말까지 남이천 I.C.가 개통되면 AK레저뿐 아니라 채 대표가 보유한 부지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AK레저의 주주는 애경개발(69.1%)과 (주)서림(30.9%)이다. 애경개발이 서림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애경개발의 100% 자회사나 마찬가지”라며 “오너 일가가 사전에 조율하지 않았다면 채 대표가 주변 농지를 매입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애경그룹 측은 “내부적으로 합의한 사항이며, 투기를 위해 농지를 매입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리조트를 인수하고 추가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많이 소요됐다”며 “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법인과 채승석 대표가 나눠서 부지를 매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AK레저는 추가 매입한 부지와 기존 임야를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200억원 상당을 대출받은 상태였다. 부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 10억원 상당의 땅을 채 대표에게 대신 매입하게 했다는 애경그룹 측의 설명은 여러 면에서 의문점이 남는다. 채 대표는 애경개발을 운영하고 있지만, AK레저의 지분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천시에 위치한 시몬스 본사. ⓒ 시사저널 임준선
안정호 대표와 채승석 대표 수상한 거래

애경가 삼남의 수상한 농지 매입과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또 있다. 등기부등본상 채 대표가 매입한 부지의 지목은 모두 논으로 표시돼 있다. 예외적으로 위탁 영농을 허락하고 있지만, 현행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농민만 농경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논과 밭을 소유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농지를 매입하는 사람은 우선 농업 경영 계획서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읍·면장은 농사를 지을 여건이 되는지를 확인한 후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하게 된다. 이 증명서를 등기소에 제출해야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다. 주소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인 채 대표가 어떻게 해서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채 대표에게 부지를 매각한 사람은 안정호 시몬스(옛 시몬스침대) 대표다. 시몬스침대는 2011년 12월 테르메덴 주변 대지와 임야 10만여 ㎡(3만250평)를 매입했다. 시몬스침대가 어떤 이유로 이 부지를 매입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회사 측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해당 부지가 이천 본사와 7㎞ 정도 떨어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공장 용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안정호 대표도 리조트 주변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안 대표는 시몬스침대의 이천 본사인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장평리 227-4번지를 주소로 등록하고 2011년부터 최근까지도 주변 농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확인된 부지 규모만 6만여 ㎡(1만8150평)에 달한다. 이 중 일부는 AK레저와 채승석 대표에게 매각하고, 나머지는 아직까지 안 대표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

감사원은 올해 중순 안 대표의 농지취득자격증명서 발급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10월 초 해당 부지가 있는 이천시청에 행정처분을 지시했다. 현재 이천시는 감사원 지시에 따라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천시청 농정과의 한 관계자는 “농사를 짓게 되면 영농 자재 구입비나 직불금 수령 여부, 현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실제 농업 경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며 “휴경으로 확인되면 1차로 처분 명령을 하고,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으면 공시지가의 20%에 해당하는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정호 대표가 AK레저와 채승석 대표에게 농지와 임야 등을 매각한 시점은 감사원 조사가 시작된 직후다. 안 대표는 2011년 4월 AK레저의 전신인 서림리조트로부터 이 부지를 매입했다. 3년 5개월 후인 2014년 9월 AK레저와 채 대표에게 각각 40억원과 10억원에 부지를 되팔아 수십억 원의 시세 차익을 챙겼다. 감사가 시작되자 서둘러 부지를 매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실제로 AK레저의 2013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회사는 거래 관계가 전혀 없는 시몬스침대로부터 180억원의 차입금 보증을 제공받고 있다. 두 오너 간 밀약에 따라 부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안정호 시몬스 대표(오른쪽)는 농지 불법 취득 혐의로 이천시와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안정호·채승석 대표 “투기 목적 아니다”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은 최근 관련 고소장을 접수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현행법상 농지를 소유할 목적으로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받은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얼마든지 불법적인 농지 매입이 가능하다. 이천시청의 한 관계자는 “농지취득자격증명서 발급 시 매매계약서가 첨부되지 않기 때문에 부적격자인지 여부만 심사하게 된다”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농지취득자격증명을 꾸며 농지를 매입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불법적인 농지 매입이 드러나도 지자체는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재벌 2세들의 수상한 거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주목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최근 형사부에 이 사건을 배당했다. 검찰은 안 대표가 농지를 취득한 배경과 함께 농지취득자격증명서가 발급된 배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안 대표와 농지를 거래한 채 대표 역시 수사 대상이다. 현재 조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 측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여주지청의 한 관계자는 “현재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안 대표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시몬스침대 측에 여러 차례 답변을 요구했지만 “오너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없다. 투기 목적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안 대표에게 부지를 매입한 채승석 대표 측 역시 “(채 대표가) 인터뷰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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