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파트너와 키스는 ‘비타민’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12.1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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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면역력 강화에 도움…구강 위생 나쁜 사람과는 피해야

입은 하는 일이 많다.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일부터 말도 하고 비명까지 지른다. 입의 활동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쾌감은 아마도 키스일 것이다.

입술은 인체 중에서 에로티시즘이 가장 강렬한 부분 중 하나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키스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의 경험’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첫 키스의 가벼운 떨림과 달콤함은 영원한 설렘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최근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가 환상적인 기억의 흔적뿐 아니라 미생물까지 나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다.

10초 키스에 세균 8000만마리 이동

네덜란드의 응용과학연구원(TNO) 시스템미생물학부는 국제학술지 ‘미생물군집’ 11월17일자에, 사랑하는 연인들이 키스를 할 경우 구강 미생물이 상대방의 입으로 이동한다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를 이끈 렘코 코트 박사팀은 연인 21쌍을 대상으로 구강 내의 미생물 분포를 조사한 후 실제 연인들을 대상으로 키스 실험을 했다.

ⓒ Xinhua 연합
실험은 한 사람에게 미생물이 함유된 유산균 음료를 마시게 한 뒤 10초 동안 키스를 하도록 한 다음 상대방의 입속 세균을 검사하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상대방에게 유산균이 얼마나 옮겨지는지 확인한 것이다. 이때 유산균 음료에 있는 미생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락토바실리쿠스와 비피도박테리움의 분포를 살폈더니 10초 동안 단 한 차례의 키스만으로 약 8000만마리의 미생물이 상대방의 입속으로 옮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매일 9차례 이상 키스를 나누는 커플의 경우, 구강 내에 거의 동일한 세균을 공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균이 전해진다고 하니 키스하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체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좋은 세균들을 공유한다는 좋은 의미다. 연구를 지휘한 렘코 코트 박사는 “많은 연구 결과 키스를 통한 세균의 공유가 면역 증진에 도움이 된다”며 “이런 점에서 키스는 건강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사람의 구강 안에는 700종 이상의 미생물이 존재한다. 섭취하는 음식 종류, 생활습관, 구강 위생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본인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고 인체와 공생하는 상재균(Normal Flora)으로 존재한다. 누구의 손바닥에나 세균이 있고 장에는 유산균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구강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세균들이 사라지면 입안이 헐고 피가 나는 ‘진균증’에 걸릴 수 있다. 인체에는 무려 100조마리나 되는 미생물이 서식하면서 음식 소화를 돕고 면역력을 강화해 질병을 예방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건강에 대한 키스의 효과를 조사한 연구는 많다. 입술과 혀, 입속의 점막에는 아주 많은 감각신경이 분포돼 있기 때문에 키스를 통한 가벼운 접촉에도 성적 충동을 받게 돼 맥박이 빨리 뛰고 심장 박동 수를 급격히 증가시킨다. 또 남녀가 ‘설왕설래(舌往舌來)’하는 동안 췌장에서는 인슐린을, 부신에서는 아드레날린을 각각 분비한다. 또 핏속에선 백혈구 활동이 활성화돼 면역력이 올라간다. 뇌에선 엔도르핀과 엔케팔렌 등의 면역 기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물질이 분비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키스를 통해 남성의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가 여성에게 전달돼 여성은 그에 대한 면역력이 향상된다. 그 현상은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쳐, 아내가 임신할 경우 태아가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사이토메갈로는 전 세계인의 약 70%가 만성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폐렴 바이러스로, 여러 기관의 거대화를 유발한다. 다만 여성들이 키스를 통해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선 지켜야 할 조건이 하나 있다. 같은 남성과 6개월간 키스를 할 때라는 것이다.

프렌치 키스에는 적어도 29개의 근육이 동원되고, 최대 9㎎의 타액과 단백질 0.7㎎, 지방질 0.711㎎, 염분 0.45㎎이 교환된다. 미국에선 매일 규칙적으로 키스를 즐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5년 정도 오래 살 뿐 아니라 결근율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는 물론 키스하는 상대방의 구강 건강이 좋을 때 얘기다. 키스 파트너가 충치에 걸려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충치를 일으키는 뮤탄스균은 키스로 전염되는 대표적인 세균이다. 무탄스균이 음식물 찌꺼기의 당분을 먹은 뒤 산(酸)을 배설하면 이 산이 사기질을 녹이기 때문에 충치가 생긴다. 사기질이 녹거나 닳아 상아질이 노출되면 이가 누렇게 보일 뿐 아니라 온도에 민감해져 시린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풍치 환자와는 ‘프렌치 키스’ 금물

또 위염의 원인이 되는 헬리코박터균, 세균성 인후두염, 감기나 독감 바이러스, 입 주변에 물집을 만드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역시 키스에 의해 전염된다. 특히 입 냄새가 심한 풍치 환자와의 ‘프렌치 키스’는 금물이다. 입속 세균 중 혐기성 세균은 단백질을 분해해 입 냄새의 원인이 되는 황화수소(H²S) 가스를 만드는 주범이다. 따라서 구강 상태가 좋지 않은 파트너의 침 속에 바글거리는 세균을 조심할 일이다.

이보다 더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여러 명의 파트너와의 키스다. 특히 10대들이 여러 사람과 친밀한 키스를 하게 되면 수막염 발병률이 4배나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호주 웨스트미드 아동병원의 로버트 부이 박사가 최근 영국 의학저널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파트너를 바꿔가며 많은 사람과 혀를 이용해 깊은 키스를 하면 치명적인 수막 구균성 세균을 옮길 수 있다.

 수막염을 일으키는 세균은 신체 밖에서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체액 속에 존재하며 사람을 통해 전파하는 일은 아주 쉽다. 특히 균이 혈액을 통해 뇌로 이동해 뇌 안쪽에서 염증과 수막염, 패혈증 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세균 감염 질환은 환자에게 치명적이다. 패혈증은 주로 열이 나면서 오한을 느끼고 피부에 이상이 나타나는 정도지만, 수막염의 경우 뇌가 손상되거나 청력 상실, 학습 불능이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건강한 커플끼리의 키스는 건강에 도움을 주지만, 건강하지 않은 커플의 키스는 건강에 해악을 끼친다. 키스를 통한 세균 전염이나 성병 감염은 구강 위생이 나쁘거나 흡연자의 경우 위험성이 더 커진다. 이젠 사랑을 나눌 때도 건강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키스는 원래 원시 시대에 남편이 밖에서 사냥하는 동안 집에 남은 아내가 보관해놓은 식량을 몰래 축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사냥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내의 입안을 혀로 샅샅이 훑어 냄새나 맛을 확인했다는 것. 키스가 연인들만의 행위가 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유래가 어떻든 현재 키스는 사랑을 뜻한다. 따라서 구강을 청결히 하는 것은 기본이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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