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7인 모임 자작극” vs 조응천 “청와대 조작극”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12.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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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연말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구중궁궐의 권력 싸움에서나 등장할 법한 음습한 용어들이 난무한다. ‘국정 농단’ 의혹과 ‘문서 유출’ 문제가 얽히고설키면서 대립 양상이 치열해지고 있다. ‘십상시 회동’ 논란에 맞서 ‘7인 모임’ 주장까지 나왔다. 최고의 권력 집단인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게 없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며 한솥밥을 먹고 지냈던 사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같은 사안을 놓고 어떻게 이처럼 다른 말이 나올 수 있는 걸까. 권력의 심장부에 있던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이 펼치는 진실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연말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이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해소되기는커녕 의문만 커지는 분위기다. ‘조작’ ‘음모’ ‘배신’ 등 구중궁궐의 권력 다툼에서나 나옴 직한 음습한 용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청와대 담장을 넘나든다. ‘난장판 청와대’에서 ‘시장판 막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대결 구도는 단순하다. 두 개의 축이 움직인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와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청와대 보좌진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문건 작성자로 알려진 박관천 경정 등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가까운 그룹이다.

사건 구조는 다소 복잡하다. ‘국정 농단’ 의혹과 ‘문서 유출’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양측은 서로 다른 의제로 사건을 이끌어간다. 정씨와 보좌진 3인방 측은 청와대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는지에 초점을 맞춘 반면,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 측은 국정 농단 세력이 누구냐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십상시 회동’에 ‘7인 모임’으로 맞불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 내용이 세계일보 보도로 공개되자 정씨와 보좌진 3인방이 포함된 이른바 ‘십상시 회동’에 관심이 쏠렸다. ‘비선 실세’가 보고서 내용처럼 정말 ‘국정 농단’을 했는지 여부가 핵심 사안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현 정권은 존립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청와대가 곧바로 ‘찌라시(정보지)에 불과하다’며 적극 방어에 나선 것도 그만큼 사안이 위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로 인한 파문 자체에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것으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파문이 인 지 10여 일이 지나면서 청와대의 반격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이 주도했다는 이른바 ‘7인 모임’이 대표적이다. 청와대가 문건 보도 직후인 12월 초 실시한 내부 감찰 결과 해당 문건이 작성되고 유출된 배후에 조 전 비서관이 중심이 된 ‘7인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서 거론되는 ‘7인 모임’ 멤버는 조 전 비서관 이외에 박 경정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같이 근무한 오 아무개 전 행정관, 최 아무개 전 행정관, 전직 국정원 간부인 고 아무개씨, 박지만 회장의 측근인 전 아무개씨, 언론사 간부 김 아무개씨 등이다. 여기에 대검찰청 수사관 박 아무개씨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청와대는 이들 중 한 명인 오 전 행정관으로부터 조 전 비서관이 문건 작성과 유출을 주도했다는 진술을 받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 작성의 경우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업무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려워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유출 부분이다. 청와대의 주장대로라면 ‘7인 모임’이 자신들이 작성한 문서를 스스로 유출해놓고는 나중에 와서 누군가에 의해 유출된 것처럼 ‘자작극’을 벌인 셈이 된다. 일련의 사태가 정치적 의도에 따라 진행됐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이는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내세운 ‘음모론’과도 맞닿아 있다. 올해 3월 ‘박지만 미행 사건’ 취재 당시부터 정씨는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2월10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 밝혀지리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비선 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가 국정 개입 의혹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한 고소인 자격으로 12월10일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정윤회, ‘7인 모임’ 내용 미리 알고 있었나

‘7인 모임’ 멤버로 박 회장의 측근 전씨가 포함된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검찰 출신인 조 전 비서관은 지난 대선 캠프에서 친인척 관리를 맡았다. 청와대에 들어온 후에도 대통령 친인척 관리 업무를 보면서 전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밝힌 것처럼 만약 ‘7인 모임’이 작동했다면 조 전 비서관과 박 회장의 연결 고리로서 전씨가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이 경우 박 회장이 정윤회씨가 주장하는 ‘음모론’의 자장 내로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7인 모임’ 멤버로 지목된 당사자들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없는 걸 만들어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자신과 알고 지내는 인사들을 엮어서 마치 ‘조응천을 수괴로 하는 청와대 내 반VIP(대통령) 비밀 결사 조직’이 구성된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와대의 ‘조작극’이라는 설명이다. 조 전 비서관은 박정희 대통령 때 쿠데타 혐의를 씌워 처벌한 ‘윤필용 사건’이 떠오른다고까지 했다.

반박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오 전 행정관의 진술과 관련해 청와대 감찰 과정에서 ‘정윤회 문건 작성 및 유출 과정 전반을 조 전 비서관이 주도한 게 맞지 않느냐’며 서명 날인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오 전 행정관도 언론을 통해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전씨의 경우 대통령 친인척 관리 업무를 맡도록 청와대 직원으로 채용하자고 요청했지만 정호성 비서관이 반대했다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은 “박지만 사람이 오는 건 싫다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정윤회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박(관천) 경정이 ‘위에서 지시한 대로 타이핑만 했다’고 하더라”고 밝힌 부분에 대해서도 진술이 엇갈렸다. 조 전 비서관에 따르면 정씨가 전화를 걸어와 사실관계를 물었을 때 박 경정이 ‘저는 실무자다. 저는 알지도 못하고 말씀도 못 드린다’고 얘기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은 ‘7인 모임’과 관련해 “정씨가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밖에 나는 안 들린다. 청와대 애들하고 대책을 만들었을 것이다. 난 그 생각이다”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내부 감찰 시기와 결과 처리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12월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 내용에 대해 “근거 없는 일”이라고 규정하자마자 강도 높은 감찰에 돌입했다. 그리고 10여 일 뒤 감찰 결과를 검찰에 전달했다. 수사 의뢰는 아니라고 했지만 같은 사안을 검찰이 수사 중인 상황이라 이번에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청와대 문건을 시중에 유포시킨 것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경찰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관천 경정이 2월 청와대 파견을 마치고 경찰에 복귀하면서 보낸 개인 짐을 뒤져 100여 장의 문건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한 아무개 경위가 이 문건을 복사했고, 최 아무개 경위가 언론사 등에 유출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는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돌던 얘기다. 당사자들은 관련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법원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해 검찰을 난감하게 했다.

정윤회씨 국정 개입에 관한 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박관천 경정이 12월4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문건 유출 알고도 수습 안 했나

만약 이러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른바 ‘7인 모임’이 문건 작성은 물론 유출도 주도했다는 청와대의 감찰 결과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 경우 문건 내용의 진위를 두고 펼쳐진 양측의 ‘진실 공방’이 문건 유출의 책임을 놓고 2라운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작극’일지 ‘조작극’일지 여부에 따라 어느 한쪽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문건 유출과 관련해 의문은 또 있다.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는 내부 기밀이 유출된 사실을 알고도 청와대가 제대로 수습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5월12일 A4용지 100여 장 분량의 청와대 문서를 박지만 회장에게 직접 보여주면서 문건 내용의 진위와 다량의 문건이 유출된 경위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박 회장은 유출된 문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겠다고 했고,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10여 일 뒤 확인한 결과 박 회장 측은 정호성 비서관에게 문건을 전달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간에 문건 유출 추적 작업이 흐지부지된 것으로 파악됐다. 역추적해본 결과 정 비서관에게 건네진 문건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넘어갔고, 김 실장은 홍경식 민정수석에게 알아보라고 했고,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이 추적에 나섰다고 한다.

이는 조 전 비서관의 주장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 조 전 비서관은 세계일보 기자가 박 회장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준 게 자신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문건을 전달받은 박 회장이 자신의 바람과 달리 꼼짝을 하지 않아 오 전 행정관을 통해 대통령과 잘 통하는 정호성 비서관에게 문건을 전했다. 그런데 정 비서관이 문건의 출처가 어디냐고만 묻고 출처 얘기를 안 하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고 해서 권오창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보냈다는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발언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지만 청와대가 문서 유출을 사전에 인지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에도 민정수석실은 박 경정이 문건을 유출하고 조 전 비서관이 이를 방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렇다 할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면서 진상조사가 유야무야됐다는 것이다. 이번에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다시 내부 감찰에 들어갔고 그 결과물로 내놓은 게 바로 ‘7인 모임’인 셈이다.

어느 권력에서나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현실 정치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갈등 해소는 정치 본연의 역할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갈등을 겪고 이를 봉합하는 과정에서 권력은 스스로를 정화하고 외부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최고의 통치권력 집단인 청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이 어떨지 깊이 새겨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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