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 1000만원짜리 홈시어터 사달라 함”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12.1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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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약품 리베이트로 50억 뿌려…추적 피하려 장부에 은어·약자

까스활명수(소화제)와 후시딘(상처 연고제)으로 유명한 동화약품이 의사 923명에게 50억7000만원을 뿌린 사실이 드러났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200억원. 이 가운데 리베이트와 관련된 약품(전문의약품) 매출은 약 900억원이고, 이 금액의 약 5%가 의사들의 호주머니로 흘러갔다. 이 돈은 고스란히 약값에 반영돼 소비자가 부담했다. 2008년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처벌 법규가 시행된 이후 최대 규모다. 2010년에는 리베이트를 준 제약사와 받은 의사 모두를 처벌하는 쌍벌제가 도입됐지만 리베이트 수법은 수사와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더욱 음성화되고 있다.

은어 사용·보증금 지급 등 수법 갈수록 교묘

과거에는 필요에 따라 리베이트를 지급했다면, 최근에는 제약사가 의사를 관리하며 정기적으로 뒷돈을 챙겨주는 단계로 진화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동화약품은 자사의 위장관 경련 치료제, 소화불량 치료제, 동맥경화 치료제 등 13개 전문의약품 판매 목표액을 정한 뒤 병·의원별 처방 실적을 월별로 꼼꼼히 기록했다. ‘8차 진행 현황 및 입금 명단’이라는 제목의 리베이트 장부에는 의사명·병원명·구분(신규·기존)과 같은 일반적인 내용과 함께 은행 계좌 번호, 제공 금액, 입금 예정일 등 리베이트 상세 내역이 기록돼 있다. 예를 들어 제공 금액에는 300만~500만원이 적혀 있다. 1회 처방 대가는 5만원 정도다. 이렇게 리베이트 금액이 의사마다 다른 이유는 약 처방 건수에 따라 리베이트를 차등 지급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병원 의사가 응급실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 시사저널 박은숙
리베이트 냄새를 풍기지 않기 위해 은어와 약자를 쓰는 등 갈수록 수법이 치밀해지고 있다. ‘100:100, 100:200, 100:300’과 같은 숫자가 있는데, 의사가 처방하는 금액에 각각 1배, 2배, 3배를 보전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100:300은 500만원의 약 처방이 발생하면 1500만원을 리베이트로 줄 의사라는 의미다.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병원 친해지기 전까지 성격이 까다로움’ ‘○○병원 원장이 1000만원짜리 홈시어터를 사달라고 함’ 등 의사별 특징과 요구 사항을 꼼꼼하게 정리해뒀다. 제약업계에서는 리베이트를 선지원(SG) 또는 후지급(B) 방식으로 제공하는데, SG와 B라는 은어를 사용한다. 리베이트 사건을 맡은 유동호 서울서부지검 검사는 “선지원을 의미하는 SG는 ㅅ과 ㅈ을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고, 후지급을 뜻하는 B는 뒤를 뜻하는 영어(back)의 머리글자”라며 “단속에 걸리면 SG를 small gift(소액 판촉물) 제공 거래처로 변경한다”고 설명했다.

쌍벌제 이후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부담스러워하자 CSO(영업대행사)를 이용해 리베이트를 세탁하는 방식이 퍼졌다. CSO란 제약사를 대신해 의료인을 대상으로 시장 설문조사, 번역, 광고 업무를 대행하는 업체를 말한다. 동화약품의 경우 2010년부터 CSO 3곳과 계약을 맺었다. 영업 대행 대가로 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이 계약은 실제로는 불법 리베이트 지급 내역을 숨기는 작전이었다. 이 회사는 관리할 의사 명단과 제품별 리베이트 금액을 CSO에 건넸다. CSO는 그 의사들을 대상으로 형식적인 설문조사를 했고, 그 대가로 의사들 계좌로 한 번에 많게는 1100만원을 보냈다.

의사 이 아무개씨(54)는 서울 집에서 평택에 있는 병원까지 출퇴근한다. 이씨는 동화약품 약을 처방해주기로 약속하고 평택에 원룸을 지원받았다. 2012년 2~10월 월세 400만원을 포함해 원룸 마련에 필요한 보증금과 관리비도 동화약품이 부담했다. 이처럼 현물로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현금처럼 거래 내역이 남지 않아 의사가 현물 리베이트를 요구하기도 한다. 요즘 같은 연말에는 루이비통 등 명품 지갑이 리베이트 성격으로 둔갑한다. 동화약품은 심지어 의사들에게 여러 장의 명품 지갑 사진을 보여주고 고르도록 했다. 자사 약품을 월 100만원 이상 처방한 의사 29명에게 평균 81만원짜리 명품 지갑(2350만원 상당)을 안겨줬다. 1000만원 상당의 골프채와 홈시어터 등을 사달라고 한 의사도 있었다.

올해 서울역 앞 STX남산타워로 이전하기 전 서울 서대문구 소재 동화약품 본사. ⓒ 시사저널 구윤성
정부, 의사 1900여 명에 면허정지 처분

제약사 영업사원들이 리베이트로 사용할 현금을 마련하는 수법도 다양하다. 기프트카드를 현금화하는 이른바 기프트카드깡은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그 내용은 과거와 달라졌다. 영업사원이 개인적으로 받은 법인 신용카드를 이용해 기프트카드를 사서 현금을 만드는데, 특정 기간에 사용 금액이 남기 때문에 요즘은 가족이나 친구의 개인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런 경우는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 또 친분이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한 것처럼 음식 값을 신용카드로 지급한 후 음식 값에서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하고 현금으로 돌려받는 방식도 있다. 심지어 길에 버려진 영수증을 주워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마련한 돈을 의사가 타는 자동차 보험료로 납부하거나 세미나 명목으로 제공한다. 의사가 300만원 이상의 리베이트를 받으면 형사 처벌을 받기 때문에 1회 리베이트 금액은 300만원을 넘기지 않는다.

리베이트 지급 방법이 지능화하고 있지만 꼬리를 밟히게 마련이다. 동화약품의 경우 내부 고발자가 관련 자료를 공개했고, 공정위가 2013년 해당 사실을 확인한 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정부 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은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약사법 위반)로 동화약품과 이 회사 영업본부장 이 아무개씨(49), 영업대행사 대표 서 아무개씨(50)와 김 아무개씨(51) 등 3명을 기소했다. 300만원에서 많게는 3000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의료법 위반)로 의사 155명도 기소했다. 검찰은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에 동화약품과 적발된 병·의원을 대상으로 판매업무정지·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복지부는 동화약품에 대해 의약품의 상한 금액 인하 조치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올해 7월부터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2번 이상 적발되면 급여 목록에서 영구 퇴출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동화약품 사건은 그 전에 일어났기 때문에 투아웃제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의료인들은 위반 시점, 벌금액, 수수액 등에 따라 행정처분이 이뤄질 예정”이라며 “유통 질서 문란 행위에 해당하는 의약품은 부당 금액에 따라 약제 상한 금액을 인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기존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 1900여 명에게 면허정지 처분을 내렸다. 12월4일부터 제약사로부터 300만원 이상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들에게 2개월 자격정지의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국세청도 나섰다. 지난 11월 국세청은 제약사들의 상품권 사용 내역을 조사한다고 밝혔다. 국내 제약사 100여 곳에 4년간 구매한 상품권에 대한 해명자료를 제출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정부가 리베이트 근절 의지를 보이지만 매년 리베이트 사건은 터진다. 지난해에는 국내 1위 제약사인 동아제약이 의사에게 동영상 강의를 의뢰한 대가로 리베이트를 지급한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난해 10월 덜미를 잡힌 대웅제약의 임원은 올해 3월 기소됐다. 올해도 CMG제약과 태평양제약 등이 리베이트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동화약품에 이어 올해 10월부터 진행한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교수와 연루된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수사 결과도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제약업계에서 리베이트가 고질적인 병폐가 된 배경에는 의약품 시장의 특수성이 있다. 의약품 소비자는 환자지만, 어떤 약을 사용하느냐는 의사의 권한이다. 따라서 제약사에 가장 큰 고객은 의사다. 의사 처방권은 제약사의 매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제약사로서는 그런 의사를 관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때문에 처방권이라는 ‘절대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약사 관계자는 “특정 성분을 자주 바꾸는 의사의 처방 패턴 등 리베이트를 의심할 만한 의료비 청구 내역을 해당 부서가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처방권이란 ‘절대 권력’ 제한해야 

처벌 수위가 낮은 탓도 있다. 리베이트를 주거나 받아도 병원이나 제약회사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는 사실상 어렵다. 제약회사는 과징금을 내고, 병원은 의사 개인의 문제라고 꼬리를 자르면 그만이다. 제약회사에 대한 과징금은 매출의 1%다. 100억원 매출을 올리고 1억원 과징금을 내더라도 리베이트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이 많아 제약회사는 리베이트 관행을 떨치지 못하는 구조다. 형량을 상향 조정해 긴급체포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검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성희 서울서부지검 형사2부장은 “법정형 2년 이하 벌금 3000만원 이하로 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긴급체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동화약품은 1897년에 창업해 117년 동안 이어진 최장수 제약기업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애국 기업으로도 알려졌다. 초대 민강 사장 등 역대 사장 3명은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2005년부터 동화약품을 이끄는 현 윤도준 회장은 의대 교수 출신이다. 윤 회장은 선대 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하고 범법자가 됐고, 동료 의사 다수를 범법자로 만들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앞으로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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