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라고?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4.12.1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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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한 냄새가 나는 찌라시라는 단어가 2014년 세밑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그 진원지가 최고 권부인 청와대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습니다. 더구나 찌라시 논쟁에 불을 붙인 이는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박 대통령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자마자 찌라시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새누리당 지도부와 오찬 자리에서 “찌라시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정윤회 문건’은 찌라시라고 대못을 박은 겁니다. 야당은 ‘정윤회 게이트’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고 반발하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 말로 인해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청와대는 한순간에 ‘찌라시 공장’으로 둔갑해버린 겁니다.

 ‘정윤회 문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만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문건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됐습니다. 청와대 공식 라인에서 작성해 대통령 기록물로 기록됐다는 게 지금까지 나온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린 자들을 색출할 생각은 않고, 누가 찌라시를 만들어 유출했는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합니다. 더욱 희한한 일은 정윤회씨가 “문건은 청와대 민정팀에서 조작했다”고 큰소리치는데도 청와대가 끽소리를 못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정씨 말에 청와대 대변인이 쩔쩔매는 모습이 딱합니다. 검찰 또한 정씨와 그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하지 않고 해명을 듣는 선에서 끝낼 모양입니다. 정씨는 그거 보라는 듯이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아실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칩니다. 검찰 수사 결과를 다 아는 듯한 태도입니다. 앞뒤 정황을 고려할 때 수사 결과가 청와대나 정씨 뜻대로 나올 게 빤해 보입니다. 

 일명 ‘십상시’가 서울 강남 식당에서 정기적으로 회합을 갖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단서에 불과합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에서 가지고 나온 문건은 A4 용지 300쪽 분량이라고 합니다. 이 안에 국정 농단과 관련한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전체적인 맥락을 파헤치는 게 중요합니다. 십상시가 J가든에서 회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정 농단 의혹이 덮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응천 전 비서관은 “문건의 신빙성은 60%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조 전 비

서관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문고리 3인방이 경찰 등 인사에 개입한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이재만 비서관이 “정윤회씨를 2003년인가 4년에 한 번 만났다”고 한 말도 거짓으로 들통 났습니다. 이것만으로도 3인방의 방어 논리는 깨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이 십상시 회합 여부만 확인하고 봉합한다면 대통령 가이드라인대로 짜 맞추기식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검찰이 국정 농단 세력을 도려내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결기를 보여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하는 것을 봐선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기자들만 더욱 바쁘게 생겼습니다. 국가 기관에서 내놓는 문서나 자료가 찌라시인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툭하면 소송을 걸어대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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