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올해의 인물] ‘스스로 야인’ 정국 뒤흔들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12.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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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으로 모습 드러내

그는 자신을 ‘야인(野人)’이라고 불렀다. 아무것도 아닌 야인으로 그냥 이러고 있다고 했다. 정말 비참하게 살고 있다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그를 ‘그림자 실세’라고 불렀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박심(朴心)’에 영향을 미치는 몇 안 되는 인사로 거론되기도 했다. 연말 정국을 뜨겁게 달군 이른바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의 중심에 선 정윤희씨 얘기다.

정치권 주변에서 ‘정윤회’라는 이름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의 이름 앞에는 정치인 ‘박근혜’의 이름이 수식어처럼 따라다닌다. 정씨는 박 대통령이 1998년 보궐 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비서실장’으로 불리며 박 대통령을 보좌했다. 2002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실제 총재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박 대통령이 복당해 한나라당 대표에 오른 이후 더 이상 공식 석상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12월10일 정윤회씨가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최태민 목사 사위로 박 대통령 신뢰 상당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최고의 권좌에 올랐다. 정씨는 자신이 밝힌 대로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의 비선이 거론될 때면 그의 이름이 명단의 앞자리를 차지했다. 시사저널은 3월23일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기사를 보도했다. 정씨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그를 둘러싼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씨는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였다. 최 목사의 다섯째 딸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가 올해 5월 이혼하기 전까지 그의 부인이었다. 최 목사는 박 대통령과 인연이 남달랐다.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75년 최 목사가 상심에 빠진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서신을 보낸 게 계기가 됐다. 박 대통령을 접견한 최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 설립을 주도했다. 이 단체는 1976년 ‘구국여성봉사단’에 이어 1979년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서 최 목사가 이 단체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이른바 ‘최태민 수사 자료’를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과 동생 박근령씨가 1990년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었을 때 최 목사는 재단 고문을 맡고 있었다.

정씨도 최 목사의 ‘가족’으로서 박 대통령의 신뢰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 검증 당시 “대통령이 돼도 최 목사 가족들과 계속 관계를 가질 것이냐”는 질문에 박 대통령은 “정윤회 비서는 능력이 있어 도와달라고 했고 실무 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는 것이다”고 답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후보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맞섰던 당시 박 대통령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 중 한 명이 최 목사였다는 점에서 공개 석상에서의 이 같은 답변은 정씨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한다.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의혹 해소 못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 내용이 11월28일 세계일보 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정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정씨와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보좌진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포함된 ‘십상시 회동’의 실체에 관심이 쏠렸다. ‘비선 실세’가 보고서 내용처럼 정말 국정 농단을 했는지 여부가 핵심 사안이었다. 청와대가 곧바로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밝혔고, 검찰도 수사 결과 ‘실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의혹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다.

정씨는 올해 3~4월 시사저널 기자와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나를 씹는 사람이 세상에 한두 명이냐”고 말했다. 또 “생판 보지도 못한 사람이 나를 판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내가 그랬다면 오기로 그랬다 치지만 만약 내가 안 그랬는데 나를 물고 늘어졌다면 이거야말로 춘추전국시대도 아니고 진짜 말이 안 된다. 이런 걸 바로잡아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예회복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정씨가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검찰에도 직접 출두하는 등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베일에 가려 있던 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는 있다. 하지만 정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당선 후 (박)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 한 번 한 게 전부”라거나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불장난에 춤을 춘 사람들은 누구인지 다 밝혀질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비참하게 살고 있는 ‘야인’과는 어딘가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검찰 출신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고, 실세로 통하는 총무비서관에게 전화를 받게 해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는 것도 힘없는 ‘야인’의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정씨를 둘러싼 의문이 풀리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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