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올해의 인물] 후계자의 갈 길 바빠졌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12.2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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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부재로 그룹 총지휘…승계 작업 마무리 단계

연말을 앞두고 국내 증권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12월18일 코스피에 상장한 제일모직 때문이다. 제일모직은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 최대주주는 삼성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25.1%)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의 주식까지 합하면 47%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제일모직은 12월10~11일 진행된 일반인 공모 때부터 관심을 집중시켰다. 194.9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30조원의 청약 증거금을 끌어모았다. 기업공개(IPO)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12월18일 상장 때도 제일모직의 흥행몰이는 이어졌다. 상장 첫날 거래 대금은 1조3600억원으로 당일 최고 거래 규모를 기록했다. 이날 제일모직의 종가는 11만3000원으로 공모가(5만3000원)의 2.14배를 기록했다. 이 부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3조원을 넘길 것으로 평가된다. 11월 상장한 삼성SDS도 이날 28만500원에 장을 마쳤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11.25%)의 가치는 2조50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2013년 5월31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23회 호암상 시상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건희 삼성생명·삼성전자 지분 증여는?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역시 탄력을 받게 됐다. 삼성그룹은 현재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돼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지배구조의 두 축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삼성전자의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 12월1일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삼성생명 주식 12만주(0.06%)를 장내에서 취득했지만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다.

이재용 체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20.76%)과 삼성전자(3.4%) 지분을 넘겨받아야 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 평가액은 10조원에 이른다”며 “이 부회장이 주식을 증여받기 위해서는 5조원의 증여세가 필요하다.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으로 증여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현재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

해 그룹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대외 활동도 적극적이다. 올해 들어 래리 페이지 구글 CEO와 팀 쿡 애플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응우옌푸쫑 베트남 서기장과 잇따라 만났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북 구미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도 얼굴을 내비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성과를 내기도 했다. 애플과의 특허 소송으로 삼성전자는 아이폰5와 아이폰5S에 D램을 공급하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7월 팀 쿡 애플 CEO와 만났고, 아이폰6에는 D램 공급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애플과 진행 중이던 특허 소송 역시 대부분 취하하기로 했다. 블룸버그는 “이 부회장이 글로벌 협력 관계를 강화하면서 삼성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삼성 내부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12월10일 조직 개편과 보직 인사를 단행했다. 병석에 있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이 부회장이 주도한 첫 정기인사였다. 이 부회장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1960년대 출생 사장을 경영 전면에 대거 배치했다. 내년부터는 이 부회장을 주축으로 한 삼성의 승계 작업이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 앞에 놓인 문제도 적지 않다. 이 부회장의 인간적인 면이나 친화력은 그동안 여러 차례 언론의 조명을 받았지만, 차세대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은 검증받지 못했다. 포춘코리아와 다음소프트는 올 초 공동으로 차세대 경영인 빅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이 부회장의 PI(최고경영자 이미지) 마련 전략이 시급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당장 삼성전자의 실적 하락을 이 부회장이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은 2011년 4분기부터 5조원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올 3분기 4조253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8.7%로 3년 만에 한 자릿수로 회귀했다. 스마트폰 사업 부문 판매 감소가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동안 IM(IT·모바일) 사업은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60~70%를 차지했다. 3분기에는 IM 부문 비중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에,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에 밀리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민희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시장의 변화로 삼성전자가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차세대 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입증할지 주목된다.

차기 경영인 능력 검증이 관건

계열사 상장으로 거액의 시세 차익을 얻게 되면서 악화된 여론도 이 부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이 부회장 삼남매는 1999년 삼성SDS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204억원에 매입했다. 대법원은 2009년 삼성 특검 당시 배임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3세들과 전직 전문경영인들은 삼성SDS 상장으로 천문학적인 시세 차익을 챙기게 됐다. 이 차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불법적인 주식 거래로 거둔 이익을 환수하는 ‘재벌의 불법 이익 환수 특별법(이학수 특별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12월12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삼성SDS가 상장되면서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삼성선물 사장 등이 수조 원에 달하는 상장 차익을 거뒀다”며 “이로 인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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