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벤츠 난 BMW, 사고 내고 돈 벌자”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12.2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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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수입차 이용한 신종 보험사기 극성

1974년에 나온 최인호의 단편소설 <기묘한 직업>은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그 보상금으로 먹고사는 ‘직업인’에 대한 이야기다. 40년이 지난 2014년에도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고의 자동차 사고를 이용해 돈을 버는 ‘기묘한 직업’이 존재한다. 다만 대상이 외제차로 바뀌었을 뿐이다. 외제차의 비싼 부품 값과 비싼 수리비용이 사고를 통해 현금을 만들어내는 통로가 되고 이를 노리는 ‘악질 직업인’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은 12월8일 외제차 대물사고로 보험금 42억원을 받아낸 보험사기 혐의자 30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미수선 수리비’라는 것을 이용해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 미수선 수리비는 자동차 사고 시 보험사로부터 차량에 대한 수리를 하지 않고 예상되는 수리비를 현금으로 직접 수령하는 것을 말한다.

수입차는 사고가 났을 경우 국산차에 비해 부품 값과 수리 비용이 비싸다. ⓒ 뉴시스
보험사기 원천은 비싼 부품 값과 공임

이번 조사에서 적발된 A씨는 친구와 함께 4인조로 16번의 ‘사고’를 기획했다. 이들 4인조는 2013년 3월 미리 짜고 BMW·벤츠·인피니트 차량을 이용해 3중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3중 추돌에 등장한 차량 모두가 이들 4인조의 차량이었고 이들은 조사 기간인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차에 동승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 역할을 나눠 맡으면서 16번의 사고를 통해 8300만원의 미수선 수리비를 챙겼다.

또 다른 혐의자 B씨는 경미한 사고로 펜더의 일부만 파손됐는데 휠·타이어·서스펜션 등 고가의 사제 튜닝 부품까지 모두 파손됐다며 1500만원 상당의 수리비를 부풀려 청구해 이 중 일부를 미수선 수리비로 착복하는 등 조사 기간 중 25회의 사고로 1억2000만원을 벌어들였다.   

국산차에 비해 수입차가 비싼 수리비용 발생으로 사고당 보험금 규모가 크고, 수리 기간이 장기화되면 과도한 렌트 비용 등으로 비용 부담이 커진다. 보험사로선 예상 보험료 지급액수가 보다 적은 미수선 수리비 지급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보험 사기 혐의자들은 이 틈을 파고든 것이다.

수입차의 비싼 부품 가격 정책이 문제 

사고가 났을 때 대체 차량으로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수입차의 평균 렌트비는 131만원으로 국산차 40만원에 비해 3.3배 높은 수준이다. KT금호렌트카를 기준으로 쏘나타의 하루 렌트 비용이 16만원이고, 벤츠 C200모델은 45만원이다. 게다가 수입차는 수리 기간도 길다. 국산차의 평균 수리 일수가 4.9일인데 수입차는 8.8일에 달한다. 그렇다 보니 렌터카 비용이 차량 수리비를 초과하는 비정상적인 사례가 많다. 이런 초과 수리 건수 통계를 보면 국산차는 2013년 1만2000건(2009년 4000건)인 데 반해 수입차는 2013년 3만5000건(2009년 1만1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보험사의 부담으로 돌아와 자동차보험료 인상의 빌미가 된다.   

이번에 금융감독원에 적발된, 미수선 수리비를 활용한 보험사기 혐의자들의 사고당 평균 수리비는 490만원으로 수입차 평균 수리비(276만원)의 2배, 국산차(94만원)의 6배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은 최근 5년간 미수선 수리비의 연평균 증가율이 국산차는 10.5%인 데 반해 외산차는 29.1%로 급격히 올라가는 추세다. 국산차의 미수선 수리비는 2013년 5445억원이었고, 수입차는 2016억원이었다(표1 참조). 수입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10%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외제차가 보험사에 큰 부담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입차의 비싼 수리비나 부품가격은 보험사의 부담이기도 하지만 수입차를 선택하는 소비자의 선택도 막아선다는 점에서 수입차업체들이 보험 범죄에 악용되는 비싼 부품 가격 정책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입차 부품 값 국산차의 최고 7배 



40대 직장인 나 아무개씨는 자유로를 통해 경기도 일산의 집과 서울 마포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있다. 나씨는 최근 연비가 좋은 수입 디젤승용차 구입 여부를 놓고 몇 달째 고민하고 있다. 그를 계속 망설이게 하는 것은 차량 가격이 아닌 A/S 문제다. 성능이 괜찮은 독일차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고장 나면 부품 값이 비싸고 지정 정비소만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나씨의 불안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이는 보험개발원 조사 결과로도 확인된다. 보험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국제 기준(RCAR)에 따른 전·후면 저속 충돌 시험 결과 차량 가격 대비 수리비 비율이 벤츠 C200 모델의 경우 36.3%, 혼다 어코드가 33.8%, 폭스바겐 골프는 25% 수준이었다. 반면 동일한 기준으로 충돌 시험을 했을 때 국산차는 대부분 차 값의 10% 미만으로 수리비가 들었다. 차량 가격도 비싸고 수리비용은 더 비싼 셈이다.

이는 부품 가격과 공임비가 국산차에 비해 수입차가 더 비싸기 때문이다. 특히 부품 값은 평균 같은 배기량 대의 국산차와 수입차 간의 가격대 이상으로 차이가 난다는 통계는 수입차업체들이 신차 판매보다 부품 판매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챙기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12월 초 공개한 자동차부품 가격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급(2000cc) 세단 승용차의 경우 평균 가격이 국산차(LF쏘나타·K5·말리부·SM5)는 2246만원인 데 반해 수입차(BMW 520d)는 6390만원으로 2.9배 비쌌다. 문제는 부품 가격이 부위별로 4.6배(앞 도어 패널)~7배(헤드램프)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미 차를 구입한, 그래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객을 상대로 높은 부품 가격을 통해 더 큰 수익을 올리는 얄팍한 상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일반 정비업소에서도 수입차의 정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비 관련 매뉴얼을 공개하고 대체 부품이나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부품 사용을 허용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부품 가격의 폭리 구조를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수입차업계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대체 부품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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