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 양보할 수 없다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12.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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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집안과 클린턴 집안, 2016년 대선 숙명의 재대결 예고

11월4일 세계의 모든 눈이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에 쏠려 있을 때, 미국 내에서는 또 하나의 선거가 주목받았다. 텍사스 주의 랜드 커미셔너(Land Commissioner)를 뽑는 선거였다. 이 자리는 텍사스 주의 천연자원이나 에너지·토지 등을 책임진다. 우리나라의 국토교통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당선자는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한 조지 P(프레스콧). 부시였다. ‘부시’라는 이름에서 보듯 그는 41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H. 부시의 손자이자, 43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의 조카며, 요즘 대선 출마설로 화두에 오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아들이다. 부시가(家) 3대째인 조지 P. 부시가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현실 정치권에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정치권에서 부시 가문의 파워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인 조지 H. 부시, 큰아버지인 조지 W. 부시 그리고 아버지인 젭 부시 모두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첫 선거에서는 패한 전력이 있다. 반면 조지 P. 부시는 첫 도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에게 쏟아지는 질문들은 온전히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 젭 부시의 2016년 대선 출마에 관한 물음이 빗발쳤다. 조지 P. 부시는 선거전에서 “아버지가 2016년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단언한 바 있다.

전직 대통령인 아버지(왼쪽)·형(가운데)과 함께 서 있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 EPA 연합
여기에 총대를 멘 사람이 또 등장했다. 젭 부시의 형이자 전직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였다. 12월7일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민주당의 강력한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치켜세우면서도 “힐러리 클린턴은 의심할 여지없이 대단한 인물이지만 내 동생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럼 둘이 붙는다면? 젭 부시가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버지 조지 H. 부시는 1990년대부터 “정치인으로 유능한 사람은 형이 아니라 오히려 동생인 젭”이라고 발언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대통령인 형보다 아우가 정치적으로 유능”

그동안 젭 부시는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유보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가족들의 압박이 거듭되자 더 이상 미적거릴 수 없었다. 12월16일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이 요구하는 새로운 지도력에 대해 심사숙고한 끝에 대선 출마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선거자금 모금 등 대선 활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정치활동위원회(PAC)를 내년 1월 출범시킬 것이며, 이 위원회를 통해 미국이 직면한 중대한 도전들에 대해 미국인들과 대화하겠다는 비전까지 밝혔다. 힐러리와 젭 부시. 둘 중 누가 먼저 출마 선언을 할 것인가가 관심사였는데 의외로 젭 부시가 먼저 선수를 치고 나왔다. 그가 그동안 대선 출마의 전제조건이라고 밝혔던 ‘가문의 허락’ 절차가 끝났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2008년과 2012년, 오바마의 대항마로 유력했던 젭 부시는 출마를 고사했다. 이는 오히려 몸값을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됐다. 공화당은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를 비롯해 많은 잠룡이 있지만 본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꺾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고민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1953년생으로 61세인 젭 부시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정치적으로 적당한 나이다. 그는 부시 가문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 주에서 정치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아니다. 일찌감치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로 이사해 그곳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뒤 1998년 플로리다 주지사에 당선됐다. 2002년 공화당에 주지사 자리를 내준 민주당은 전력을 다해 젭 부시의 재선을 막으려 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 높은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해 저력을 보여줬다. 3선 연임이 금지된 플로리다 주법에 따라 주지사 직에서 퇴임했지만 당시 그가 남긴 행정력과 이미지는 아직도 유권자들의 뇌리에 생생하다.

젭 부시의 정치적 성공 배경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부인이다. 텍사스 대학 재학 시절인 1971년, 멕시코에서 영어 봉사 활동을 하다 만난 콜롬바 갈로는 가난한 농촌 출신이다. 출신 배경이 확연히 다른 둘은 1974년 결혼했다. 젭 부시가 유창한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가난한 히스패닉 여성과 결혼했다는 점은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오는 원동력이 되었다. 플로리다 주에서 공화당 출신으로 유일하게 재선에 성공한 정치인이 된 배경이며 공화당에서 대선 때마다 러브콜을 던진 이유이기도 하다.

‘부시’라는 이름이 주는 양면성이 관건

공화당 출신이지만 개혁적 성향이라는 점도 장점이다. 이민정책에서 ‘불법 입국’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공화당의 당론과는 상반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족 부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 입국한 사람들은 구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정책을 옹호한다. “불법 입국자들은 범죄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을 분노케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다른 공화당 잠룡들과 다른 부분이다. 부시 가문이라는 막강한 배경과 히스패닉계 표를 끌어올 수 있는 가족들, 그리고 개혁적 성향까지 갖춘 젭 부시는 가진 게 많은 정치인이다.

물론 모든 것이 확정적이진 않다. 공화당 경선에서 이겨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했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브리지 스캔들’(고의적으로 다리 폐쇄를 검토한 사건)에 발목이 잡혀 있지만 여전히 유리한 상황이다. 대선 기간이 다가오면서 이번이 대선 삼수째인 미트 롬니 전 후보를 찾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설혹 롬니가 출마하지 않더라도 랜드 폴 상원의원과는 온건 보수 성향이라는 점에서 지지 세력이 겹친다. 지금은 몸값이 높은 젭 부시지만 당내 경선 과정에서는 어떤 돌출 변수가 생길지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역시 본선이다. ‘부시가(家)’라는 정치적 자산은 반대로 ‘부시 피로감’으로 변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비판으로 탄생한 게 민주당의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정부다.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젭 부시가 출마한다면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비율이 절반에 달한다. 오히려 ‘부시’라는 이름은 극복 대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클린턴가(家)와의 첫 대결이었던 1992년, 조지 H. 부시 당시 대통령은 40대의 빌 클린턴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미 출마 선언 이상의 단계에 도달한 힐러리 클린턴은 첫 대결 이후 24년이 지난 2016년 대선에 출마할 예정이다. ‘의형제’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돈독한 클린턴-부시 가문이지만 이제 대권과 가문의 명예를 걸고 전투장에 나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전투의 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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