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 법칙’, KT에선 언제 약발 받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12.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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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 회장 개혁 속도 더뎌…전임 뒤치다꺼리도 버거워

“달라질 게 뭐 있나요?” 정보통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인사는 ‘황창규호 KT’의 2014년을 평가해달라고 하자 이렇게 반문했다. 잘했다는 건지 못했다는 건지 답변이 영 어정쩡하다. 그는 “별 탈 없이 1년을 무사히 보냈으니 평균 이상 점수를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못했다”는 혹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했다”는 호평도 아니다.

2013년 11월 이석채 전 회장이 물러난 후 KT의 최대 화두는 ‘혁신’이었다. “변해야 살아남는다.” 약육강식의 살벌한 기업 경쟁에서 KT도 예외는 아니었다. 삼성 출신의 ‘이방인’인 황 회장에게 회사의 수장을 맡긴 것 자체가 “한번 바꿔봐라”라는 요구로 볼 수 있다. 그는 자신만의 ‘법칙’으로 시장을 선도한 바 있다. 반도체 집적도가 1년 만에 2배씩 늘어난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삼성전자를 세계적 기업으로 올려놓았다.

그런데 KT는 다르다. 대놓고 얘기는 안 하지만 KT는 콧대 높은 유력 대기업과 비교해도 ‘기’가 엄청 센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회장이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는 ‘오너 회사’가 아니다. 황 회장의 지난 1년을 두고 “뭘 하려고 해도 할 게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책임질게”라고 큰소리치며 사업을 추진하기에 임기 3년이 너무 짧기도 하다.

KT는 ‘국민 기업’으로 불린다. 민영화가 됐지만 하는 일 자체가 ‘공공성’을 띠고 있다. 같은 이동통신업체인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와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말썽이다. 권력을 잡은 정권에서 내려꽂는 ‘낙하산’ 중에서 KT 회장직은 알짜 가운데 알짜로 여겨져왔다. 황 회장도 철벽같은 관문을 뚫고 이 자리에 섰다.

황창규 KT 회장이 2014년 10월21일 KT부산국제센터에서 열린 국제 해저 통신망 통합관제센터 개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만 경영’ 자회사 ‘대출 사기’ 연이어 연루

박근혜정부 출범 전부터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석채 교체설’이 나돌았다. 당초 분위기는 황 회장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동통신 사업과 이해관계에 있는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사 출신 인사는 불가하다는 기류가 있었다. 한마디로 ‘삼성맨’은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관료나 학계 인사인 ㄱ씨와 ㅂ씨가 물망에 올랐다. 내부 인사로 ㅇ씨도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됐다.

회장은 ‘얼굴 마담’이고 부회장이 ‘실권’을 쥘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았다. 정치권에서는 황 회장이 낙점을 받은 후에도 ‘친박(친박근혜)’ 실세의 고교 동창인 ㅎ씨가 ‘KT 권력’을 장악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가 KT에 임원 명단을 달라고 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결과적으로 시중에 떠도는 ‘헛소문’에 불과했지만 그만큼 KT가 차지하는 위상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황 회장은 2014년 1월 취임 후 ‘비상 경영’을 선포하며 전임 회장 시절 문제로 거론된 사안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갈 뜻을 내비쳤다. 내정자 시절이던 2013년 12월 임원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KT의 방만 경영을 끝마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초기부터 칼을 빼들었다. 임원 수를 27% 줄이고 임원급 직책 규모를 50% 이상 축소했다. 인원 감축을 통해 경영 효율을 높이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하지만 이후 황 회장의 뜻이 얼마나 현실화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외형상 실적은 나쁘지 않다. 2014년 3분기 매출액은 5조9556억원으로 영업이익이 3351억원이고 당기순이익도 740억원에 이른다. 특히 무선 부문 매출액이 전 분기 대비 6.3%, 전년 동기 대비 11.6% 성장해 1조9127억원을 올렸다. 3분기에만 가입자가 41만명 증가해 유지 가입자 1718만명을 기록했다. 3분기 말 기준으로 LTE 가입자 수는 1025만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59.6%에 이른다.

반면 유선 부문 매출액은 감소 추세를 이어갔다. 2014년 3분기의 경우 전 분기 대비 2.6%, 전년 동기 대비 6.2% 감소해 1조3714억원에 머물렀다. 유선전화는 가입자가 계속 감소하고 통화량 역시 줄어들고 있어 전년 동기 대비 10.6% 감소했다. 초고속인터넷은 2014년 3분기에 가입자 수가 6만8000여 명 증가했으나, 결합 혜택 확대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6% 감소했다. 인터넷 결합률은 73.6%로 나왔다.

2014년 KT는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다. 황창규호가 출발하자마자 자회사인 KT ENS가 사기 대출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다. 물론 황 회장과는 무관한 일이다. 1986년 한국통신진흥주식회사로 출발한 KT ENS는 통신망 관련 시스템 구축과 유지·보수 업무를 해온 KT의 핵심 자회사 중 한 곳이다. 2007년 KT네트웍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문제는 관리 체계가 엉망이었다는 점이다. 2013년 말 내부 직원과 협력업체들이 짜고 1조8000억원대 대출 사기를 벌이다 들통 났다. 이 일로 법정관리 신청까지 했는데 이번에는 지난 7년간 중견 가전회사인 모뉴엘로부터 팔리지도 않을 제품을 받아 수출채권을 2000억원어치나 발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KT 측은 “정상적인 거래였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사기 대출’ 전력이 있는 회사라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KT의 방만 경영으로 인해 언젠가는 터질 게 터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본사와 관련 없는 일인 건 맞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은 있다고 봐야 한다. 자회사가 워낙 많다보니 관리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통 본사에 있던 임원이 자회사 사장으로 가게 되는데, 자신이 모시던 분을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겠나. 같은 식구라고 생각할 텐데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겠나”라고 꼬집었다.

30개 자회사가 57개로 늘어

그동안 문어발식 확장을 해온 KT는 그야말로 ‘공룡 기업’이다. ‘이석채의 KT’ 때 몸집이 부쩍 비대해졌다. 이 전 회장은 2009년 1월부터 KT 수장을 맡았다. 이 전 회장 취임 직후인 2009년 3월 기준으로 기업집단 KT에 소속된 회사 수는 KT를 포함해 총 30개였다. 반면 이 전 회장이 물러난 직후인 2014년 3월 기준으로 KT를 포함해 57개에 이른다. 해외 계열사 및 관계 회사도 8개에서 14개로 늘어났다.

황 회장도 이 부분을 상당히 신경 쓰는 듯했다. 비통신 계열사 매각을 통해 경쟁력 회복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전임인 이 전 회장의 ‘탈통신’ 전략을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영화 제작 자회사였던 싸이더스FNH를 매각한 데 이어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 자회사인 유스크림코리아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그 밖에도 콘텐츠 관련 자회사들의 재편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KT렌탈·KT캐피탈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매각 방침도 확정됐다. BC카드 매각설도 꾸준히 제기된다. 렌터카업계 1위인 KT렌탈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알짜 회사로 알려져 있다. 2012년 3분기에 편입됐는데 KT가 58%의 지분을 갖고 있다. 2014년 3분기 매출액이 2058억원이고 이 중 영업이익이 354억원이다. 오토 렌털 부문 영업 활성화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5%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19.2% 늘어났다. SK네트웍스를 비롯한 여러 대기업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다.

KT는 그동안 BC카드 매각설을 부인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가 어느 증권사를 통해 BC카드 매각에 나섰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2011년 4분기에 편입됐는데 KT가 69.5%의 지분을 갖고 있다. 2014년 3분기 매출액은 8671억원, 영업이익은 587억원이다. 신용·체크카드 사용 증가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83%나 늘어났다. KT 계열사 중 덩치가 큰 회사다.

황 회장이 비통신 자회사를 정리해 통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정보통신업계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KT렌탈과 BC카드를 인수할 때는 교통과 통신, 금융과 통신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KT가 돈이 없어 사업을 못하는 것도 아니라서 자회사 매각에 적극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절실함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3년 말 기준 KT의 사내 유보금은 10조7320억원이나 된다. 2013년 한 해 동안 KT가 쓴 판매촉진비만 2조5130억원이다.

KT가 대규모 부동산 사업에 진출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KT는 서울 동대문·영등포, 부산 등 전국 도심 요지에 있는 옛 전화국 용지를 활용해 임대·리츠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미 국토교통부와 함께 동대문구 신당동에 797가구 규모의 오피스텔을 짓고 있고 영등포와 부산에도 각각 800가구 규모의 임대주택을 짓는 등 2015년까지 총 3000가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중·장기적으로 전국에 1만 가구의 임대주택을 지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통신 경쟁력’을 강조해온 황 회장의 말과 잘 맞지 않는 행보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가 2014년 2월11일 KT ENS 협력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 한 후 증거물을 차량에 싣고 있다. ⓒ 연합뉴스
통신판 ‘황의 법칙’ 언제쯤 나올까

통신 시장이 포화 상태라 실적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수익률 높은 부동산 사업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동통신사들이 카카오톡·라인 등에 문자는 물론 전화 서비스까지 다 빼앗길 위기를 맞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이통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망 관리밖에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수익률이 좋다보니 일정 기간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잠식당할 것은 불 보듯 빤하다”고 내다봤다.

이럴 때일수록 정공법을 펼쳐야 한다. 업계에서는 황 회장이 또 다른 ‘법칙’을 만들어 침체된 시장에 활력을 가져다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 유료 방송의 합산 규제 논의, 통신요금 인하 요구 등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다. 무엇보다 KT가 지녀온 ‘국민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황 회장이 KT에서 물러난 후 장관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KT는 수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이 만들어놓은 역사를 지우고 새로운 브랜드를 단장하느라 3년 임기를 다 보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황 회장의 경우 전임 회장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임기를 마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임기 2년 차에 접어든 2015년, 황창규호 KT가 ‘국민 기업’으로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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