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초의 추억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5.01.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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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머니가 늘 비어 있던 대학생 시절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엔 사방에 꽁초가 널려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장초’가 눈에 띄면 웬 횡재냐 싶어 후딱 집어들어 흙을 털어낸 다음 입에 물곤 했습니다. 알뜰한 분들은 담뱃값을 아끼려고 꽁초를 모아 깐 다음 말려서 종이에 말아 피웠습니다.

 꽁초가 대접받는 시대가 다시 올지 모르겠습니다. 새해부터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릅니다. 2000원이나 오르는 겁니다. 하루 한 갑을 피우는 사람은 월 6만원, 연 72만원을 더 쓰는 셈입니다. 가족끼리 삼겹살 파티도 망설이는 서민에겐 큰돈입니다. 우리나라 성인 남자 중 40% 남짓, 10명 중 4명은 끽연자입니다. 이들은 요즘 담배를 계속 피울지, 끊어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겁니다. 금연 상품과 전자담배가 불티나게 팔리는 게 이를 잘 말해줍니다. 버리기 아까워 필터가 타 들어갈 때까지 연기를 들이마시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꽁초를 케이스에 보관했다가 다시 피우는 이들도 생길 겁니다. 이런 분들,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 올렸다는 정부의 ‘애틋한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건강 해치진 않을지 걱정됩니다. 우리나라는 담배 인심만큼은 후하죠. 이젠 담배 한 개비 빌려 달랬다간 실없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한 개비에 225원이나 하니까요. ‘같이 피우고 같이 건강 망치자’는 동지의식도 사라질 듯합니다.

 담뱃값만 오르는 게 아닙니다. 대중교통 요금을 비롯해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 대기 중입니다. 주민세와 상하수도 요금도 들썩이고 있습니다. 거기다 연말정산 공제가 대폭 줄거나, 어떤 월급쟁이는 세금 폭탄을 맞을 것이란 경고가 나옵니다. 공공요금 인상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습니다. 정부가 물가 상승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공요금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10월 이후 25개월 연속 1%대 이하를 보이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으로 물가 상승률 수치를 높이겠다면 위험한 발상입니다. 소비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할 가능성이 큽니다. 차라리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을 통해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심리를 살려야 한다는 주문이 많습니다.

 지난 12월23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14년 3분기 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3.6%로 지난해 말보다 2.9%포인트 증가했습니다. 가계에 빨간불이 들어온 겁니다. 소비자심리지수 또한 102로

지난달보다 1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심리가 위축된 지난 5월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빚은 늘고, 쓸 돈은 없는 게 우리 가계의 현주소라는 걸 수치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담뱃값·공공요금이 봇물 터지듯 오르면 서민들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질 것입니다. 직장인·자영업자 할 것 없이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정부·여당은 세수 확대에 골몰할 게 아니라 서민을 따뜻하게 보듬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을미년 양띠해가 밝았습니다. 시사저널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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