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도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 부산=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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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로 왼손 잃고 지하철역 청소하는 왕희자씨

왕희자씨(59)는 항상 부산 지하철 3호선 물만골역에 있다. 그의 직업은 지하철 청소원. 지하철 역사 안을 깨끗하게 치우고 닦는다. 한 손으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을 법도 한데 왕씨는 익숙하게 바닥을 닦고 걸레를 짰다. 그러면서도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며 환한 표정을 짓는다. 의수도 끼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플라스틱을 끼우고 일하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왕씨는 원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맡은 분야는 프레스. 기계의 압력으로 철판을 누르거나 구부리는 작업이다. 2009년 7월 사고가 났다. 작업을 하다 프레스에 들어간 왼손 대부분을 잃었다. 10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전신 마취를 다섯 번이나 했다.

몸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컸다. 사고 이후 자신을 싣고 갔던 앰뷸런스 소리가 계속 귀에서 맴돌았다. 옆 사람한테 “누가 사고 났나 봐. 또 앰뷸런스 소리 난다”는 소리를 습관처럼 했다. ‘30년 동안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일을 할 수 없다’는 상실감도 컸다. 병원에 입원해 우울한 시간을 보내던 중 부산시 산재장애인협회에서 진행하는 ‘산재 재활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로복지공단과 연계해 산업 재해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지원 사업이다.


왕희자씨는 산업재해로 한쪽 손을 잃었지만 늘 밝은 모습이다. ⓒ 시사저널 구윤성 재활 프로그램에 참가해 도자기를 만드는 산재 피해 근로자들. ⓒ 부산시 산재장애인협회 제공
다른 장애인들이 붙여준 별명 ‘왕언니’

왕씨는 그중 ‘사회 적응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의기소침해진 산재 피해 근로자들에게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참가 신청만 하면 무료로 이용이 가능해 부담이 없었다. 다양한 직업 훈련뿐 아니라 도자기 만들기, 론볼, 사격 등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취미 활동에도 참가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는 장애인들이 늘어나면서 별명이 생겼다. ‘왕언니’다.

다치고 나니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더 해야 정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으니까. 왕씨는 퇴원한 지 1년 정도 지난 2013년 9월 물만골역 청소원으로 취직했다. 가족들은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열차는 주말에도 다니기 때문에 정해진 휴무일도 없이 일한다. 그러나 왕씨에게는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고마운 직장이다.

그는 다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있을 때 주변에서는 남아 있는 왼손 엄지 아래까지 잘라버리고 장애 등급을 높여 연금을 더 받으라는 얘기까지 했다. 왕씨는 “그때 그 말을 안 들어서 다행이다. 이 부분 때문에 일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며 쟁반을 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산재 재활 프로그램을 몰랐다면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이 행복감을 다른 산재 근로자들도 느꼈으면 한다”는 왕씨. ‘왕언니’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침에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너무 깨끗하다” “물만골역에 오면 마음이 확 트인다”고 인사를 건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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