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직원 불법 퇴출 프로그램 가동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1.0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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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증권 전·현직 직원 13명 소송…회사 측 “실행되지 않았다”

 대신증권은 2011년 말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에 용역을 의뢰했다. 성과가 낮은 근로자들을 체계적으로 퇴출시킬 수 있는 인력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창조컨설팅은 2011년 12월 130쪽 분량의 ‘고성과 조직 구축을 위한 전략적 성과 관리 프로그램 매뉴얼(성과 관리 프로그램)’이란 제목의 용역 보고서를 제출했다.

대신증권은 2012년 1월 인사위원회를 열어 이 프로그램 도입을 결정했다. 내부 규정을 개정했고, 직원들의 동의서도 받았다. 동의서에는 직원 출생지와 학력, 입·퇴사일, 직위 변경 사항, 퇴직금 추계액 등이 창조컨설팅에 제공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대신증권 전·현직 직원 13명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대신증권 사옥. ⓒ 시사저널 구윤성
대신증권은 2012년 4월부터 성과 관리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했다. 1단계로 20여 명의 직원을 선정했다. 그리고 8개월짜리 프로그램이 끝나기도 전에 2기를 모집했다. 이런 식으로 대신증권은 2년여 만에 100명 이상의 인원을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증권 내부에서는 ‘성과 관리 프로그램이 사실상 직원 퇴출 프로그램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성과 관리 프로그램’은 퇴출 프로그램”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대신증권의 부당노동행위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창조컨설팅은 노조 깨기 전문 업체로 2012년 10월 노동부로부터 설립 인가 취소 처분을 받았다”며 “대신증권이 용역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의 장남인 양홍석 대신금융그룹 사장과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여야 간 합의 실패로 경영진에 대한 증인 신청은 무산됐지만 대신증권의 불법적인 직원 퇴출 의혹이 다시 수면 위에 떠올랐다. 고용노동부는 대신증권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대신증권의 전·현직 직원 13명이 11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조합 간부가 회사나 오너 일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사례는 그동안 일부 알려졌다. 하지만 전직뿐 아니라 현직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단체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은 소장에서 ‘사측은 직원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외지 전근이나 감봉, 영업 기반 박탈 등의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며 ‘교육 대상자에게 불이익을 줘서 사직을 유도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대신증권 측은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금융 환경이 바뀌면서 직원들의 능력을 개선할 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했다”며 “퇴출 목적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회사와 각을 세우고 있는 일부 노조원이 이번 소송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리적으로 다툴 사안으로 소송 결과를 지켜볼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입수한 소장에는 이 프로그램이 직원 퇴출용임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대신증권의 성과 관리 프로그램은 총 3단계(8개월)로 진행됐다. 1단계(2개월)는 현업을 유지하지만 2단계부터는 현 직위를 박탈하거나 급여를 대폭 삭감하게 된다. 이를 통해 사직을 유도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골자다.

구체적인 지침도 있었다. 용역 보고서 19쪽의 ‘전략적 성과 관리 프로그램 설계 방향’이 우선 눈에 띈다. 여기엔 ‘프로그램 시작 전부터 개별 면담을 통해 다수의 희망퇴직 유도하고 저성과자는 잔류 욕구가 감소하는 시점에 사직을 유도한다’고 적시돼 있다. 용역 보고서 20쪽에는 대신증권에 적합한 정리 방법이 나와 있다. 보고서는 ‘사직 권고 후에 전략적 성과 관리 프로그램에 투입하면 퇴출 프로그램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며 ‘성과 관리 프로그램을 먼저 실시한 후 대상자를 개별 면담해 퇴직시키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강요에 의한 권고사직이나 사직서 제출은 추후 부당해고로 문제 될 소지가 있다’며 ‘권고사직 합의 시 일정액의 퇴직 위로금을 지급하는 희망퇴직 형태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보고서에는 퇴직을 결정했을 때와 거부했을 때, 결정하지 못했을 때의 대응 방안도 적시돼 있다.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있을 때의 대책도 적혀 있다. ‘노동조합 설립은 회사 탄압이나 방해 등을 우려해 음성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비밀리에 진행되는 노조 설립 움직임에 대한 사전 정보 파악을 통해 주동자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와 있다. 이를 위해 사내 CCTV를 모니터링하거나 경찰 등 유관 기관을 통한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대신증권 직원들이 회사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장 사본. ⓒ 시사저널 구윤성
노조 설립 등의 대응 방안도 마련

대신증권의 한 직원은 “퇴출 인사 중에는 경영진이 스카우트한 사람도 있다”며 “회사는 인적 자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체는 대상자를 퇴직시키기 위한 불법적인 직원 퇴출 프로그램이다. 회사 측은 퇴출 대상자들에게 산 정상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오게 하거나 외부인의 명함 10장을 받아오게 하는 등 모멸감을 줬다”고 주장했다.

대신증권의 전·현직 직원 13명의 소송을 맡고 있는 정현우 변호사는 “대신증권이 실시한 성과 관리 프로그램의 목적은 갱생이 아니라 말살하기 위한 퇴출 프로그램”이라며 “관련 판례 역시 실천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해 사실상 해고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경우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신증권 측은 창조컨설팅 내용이 실제 실행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회사 관계자는 “창조컨설팅 문건은 여러 군데에 의뢰한 컨설팅 보고서 중 하나”라며 “보고서 내용대로 실제 진행되지 않았고, 부당한 권고사직 또한 없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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