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확인] 검찰, '김준기 비자금' 수사
  • 조해수·엄민우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1.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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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수사 착수하고도 '쉬쉬'…시사저널, 검찰 내부 문건 단독 입수

검찰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단독 확인됐다. 그러나 검찰은 1년 8개월여 동안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를 숨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검찰 내부 문건에 따르면, 검찰은 김 회장에 대한 수사 사실이 언론에 알려져 공론화되는 것을 경계했다. ‘재벌 총수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FIU 자료 받고도 김준기 회장 조사 안 해

금융정보분석원(FIU)은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2013년 5월 동부그룹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해 이를 검찰에 통보했다. FIU 자료를 접수받은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김범기)에 배당하고, 지금까지 계좌 추적 및 회계분석을 실시했다. 검찰은 김 회장이 2005~14년 동부제철 등 계열사 임직원에 대한 급여 지급을 가장해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수사에 착수한 지 2년이 가까워오지만 관련자 소환 등 실질적인 수사는 답보 상태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검찰이 회사 측에 수사와 관련해 별도로 요청한 것도 없다. 당연히 김 회장은 물론 회사 임직원들에 대한 소환조사도 없었다”고 밝혔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연합뉴스

이 사건과 관련해 시사저널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상부 보고용으로 최근 작성한 내부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해당 문건에는 김 회장에 대한 수사를 ‘동부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진행된 수사 상황이 간략하게 정리돼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대외 대응 방침이다. 검찰은 우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검찰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동부그룹 수사 중인 사실을 언론에 확인해준 적이 있는지 확인 요망. 없을 경우 답변 기조 재검토’라고 적시하고 있다. 또한 문건에는 ‘동부그룹은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므로 이번 수사가 대상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방침도 첨부돼 있다.

검찰의 이와 같은 대응 방침은 엄정해야 할 수사가 특정 재벌 앞에서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FIU가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긴 것은 2013년 5월이다. 당시만 해도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맞춰 대기업 수사에 주력했다. CJ·효성·동양·STX·롯데홈쇼핑·웅진그룹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검찰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수사 상황은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그러나 동부그룹에 대한 수사는 예외였다. 특히, 검찰은 그룹 오너인 김준기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했음에도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문건에 따르면, 검찰은 동부그룹 횡령 사건의 관련자로 김 회장을 특정했으며, 비자금을 조성한 수법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그럼에도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을 이유로 수사 내용을 철저히 함구에 붙이며, 대외 대응 기조를 재검토할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재벌 기업 대주주의 비리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검찰의 기존 입장과는 배치되는 모습이다.

검찰의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해서는 검찰 내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재경 지검의 한 검사는 “FIU에서 자세한 자료가 넘어온 것으로 보이고, 이를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했다면 이렇게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 수사를 진행하다가 충분히 소명이 됐다면 사건을 종결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어야 맞다. 특히 대기업 총수에 대한 수사는 국민적 관심이 높기 때문에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2013년에 시작한 수사가 아직까지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점도 놀랍다”고 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왼쪽)과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 © 시사저널 임준선

검찰 “내사 중이고 수사 중단한 적 없어”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내사 중이던 사건이라 수사에 방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공표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지 사건을 덮으려 했던 것이 아니다. 여전히 내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고 수사가 중단되거나 한 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검찰의 재벌 봐주기 수사 의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본지는 ‘신세계 총수 일가 계좌로 30억 흘러들어갔다’(2014년 11월13일자 참조)는 기사를 통해 신세계 비자금 조성 의혹 내사 사건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이 사건 역시 FIU의 특정금융거래 정보로부터 출발했다. FIU는 2011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60억원가량이 (주)신세계 명의의 당좌계좌에서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해, 2014년 2월28일 이를 검찰에 통보했다.

그러나 검찰은 FIU 자료를 건네받아 내사에 착수한 지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식 수사로 전환하지 않았다. 그룹 총수 일가의 계좌에 수상한 자금이 들어간 정황까지 파악했지만, 이 돈의 사용처와 성격에 대한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신세계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 내사가 진행된 후 총수 일가는 물론 신세계 직원 누구도 소환조사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김후곤)에 배당돼 있다.

검찰이 신세계그룹 총수 일가가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물 타기’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이 언론에 처음 알려진 지난해 5월께만 해도 거의 모든 언론은 검찰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사건을 이른바 ‘상품권깡’(상품권을 대량으로 구입한 후 일정액의 수수료를 떼고 현금화하는 수법)으로 보도했다. 신세계백화점 일부 임직원들에게 관련 업체에서 구입한 신세계백화점 상품권이 대량으로 흘러들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거액의 회사 돈이 빼돌려졌다는 혐의였다. 신세계 총수 일가 비자금 조성 혐의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검찰은 상품권깡에 대한 수사를 애초부터 진행하지 않았다. 문건에 따르면 검찰은 이 사건의 혐의 사실에 대해 ‘신세계 명의 당좌계좌에 입금된 자금을 당좌수표로 인출한 직후 현금으로 교환하는 방법 등으로 자금 조성하여 횡령’이라고 적시하고 있을 뿐, 어디에도 상품권깡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문건에는 상품권깡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인 것을 확인해주었는지 (확인 바람)’라고 되묻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신세계 건은 수사가 진행 중에 있고, (지연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수사 일정에 따라 속도가 달라질 뿐”이라고 밝혔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해 12월2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김 총장은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남보다 많은 지식·부를 가진 사람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굵직굵직한 재벌 수사를 진행했던 채동욱 전임 총장 때와는 달리 김진태호가 출범하면서 검찰의 대기업 수사는 사실상 끝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재계를 대하는 청와대의 입장이 달라진 것과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사 © 시사저널 포토

“김진태호는 ‘정권 모범생’으로 전락”

박근혜정부는 최근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면서 정권 초기와 달리 대기업들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기업인 가석방 논의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동부그룹이나 신세계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보면 가석방을 논하기 이전에 재벌 총수의 불법 행위에 대한 수사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검찰이 대통령의 ‘심리 경호’에만 몰두하고 있다. 검찰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기업에 대한 (FIU 등의) 비리 첩보가 있었다면 검찰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동부그룹에 대한 검찰의 지지부진한 수사는 ‘외풍’ 때문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든다. 그렇지 않다면 검찰이 알아서 처신하지 않았겠느냐”며 “김진태호는 (채동욱 전 총장 때와는 달리)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수사만 진행하는 ‘정권 모범생’으로 전락했다. 김진태호가 대기업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살리기 정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위기의 동부그룹…임직원에 주식 매입 강요도

동부그룹은 현재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동부그룹은 계열사가 60여 개에 이르는 중견 재벌이다. 그러나 재무 구조 악화로 인해 2013년 11월 자산 매각을 통해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자구 계획을 발표했다. 이 와중에 핵심 계열사의 700억원대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임직원들에게 주식 매입을 강요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시사저널 2014년 4월5일자 ‘동부그룹, 직원들에게 자사주 매입 강요’ 기사 참조)

동부발전당진은 시장 예상가의 절반 수준인 2100억원에 SK가스에 매각됐고, 동부익스프레스 경영권도 3100억원에 재무적 투자자(FI)에게 넘어갔다. 그룹의 모태인 동부건설은 지난해 12월31일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주력 계열사인 동부제철 경영권 역시 채권단에 넘어간 상황이다. 이에 따라 동부그룹은 금융 중심 그룹으로 사실상 재편됐다. 매년 10조원 이상의 보험료 수익을 올리고 있는 동부화재는 그룹 전체 매출 중 75% 이상을 차지한다. 

동부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건설업계 전반에 상당한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동부건설은 2014년 9월 말 기준으로 국내 건설사 중 시공 능력 평가 순위 25위에 올랐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동부건설의 협력업체 상거래 채무는 1713개사, 3179억원에 이른다. 이 중 대기업은 16개사 172억원, 중소기업은 1697개사 2107억원이다. 중소기업들의 줄도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검찰 견제할 제도적 장치 마련돼야"

“검찰이 휘두르는 ‘정의의 칼’은 잘못 휘두를 경우 ‘악마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검찰 개혁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검찰의 기소 독점권이다.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도 조용히 덮일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그 밖에도 검찰은 수사권, 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영장청구권·기소재량권·형집행권 등 막강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이 때문에 검찰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먼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1차 수사권을 경찰에 부여해 2차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을 견제하고 있다. 검사의 재량에 따라 기소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기소편의주의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일정한 요건만 갖춰지면 무조건 기소하는 기소법정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경우 중죄에 대해서는 수사판사에 의해 기소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관계자는 “검찰의 기소 독점권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재정신청 대상 사건을 고발 사건을 포함해 모든 사건으로 확대해야 한다. 또 일본의 검찰심사회나 미국의 대배심제도와 같이 구속력 있는 시민 감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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