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발 ‘택배대란’ 벌어질 수 있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1.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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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택배 사업 진출 놓고 업계 반발 확산

농협이 올해 택배 사업에 뛰어들기로 하면서 택배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농협 택배가 가시화되는 순간 ‘택배 업무 중단’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농협발 ‘택배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농협은 2007년 대한통운, 2010년에는 로젠택배 인수를 시도하며 택배 사업 진출을 노렸으나 업계의 강한 반발로 실패했다. 이번에는 오랜 숙원을 풀게 될지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농협은 2014년 10월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택배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이날 국감장에 출석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택배 사업 진출 여부를 묻는 의원 질의에 “농협이 상시 농산물 수송 체계를 갖추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농협은 최 회장이 택배 사업 진출을 선언하기 전부터 TF팀을 꾸려 사업성 검토 작업에 돌입한 상태였다. 농협은 2013년 택배 사업 진출 타당성 검토를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한 바 있다. 택배 사업 추진은 농협중앙회에 소속된 농협경제지주(대표 이상욱)가 맡고 있다.

농협이 올해 택배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가운데 택배업계가 이에 반대하는 차량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한국통합물류협회 제공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협은 이르면 올 상반기 중 택배 사업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체국택배가 지난해 7월12일부터 집배원의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토요 휴무에 들어간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농협은 우체국택배의 토요 휴무로 농산물의 신선한 유통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에 농협이 이를 대신해 농산물 배송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즉, 구멍 뚫린 농산물 유통 구조를 농협이 직접 나서 메우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농협이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속내를 감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택배업체 연합회인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우체국의 농수축산물 배송 물량은 국내 전체 택배 물량의 2.61%가량이다. 이 가운데 우체국이 취급해왔던 토요일 물량은 전체 물량 가운데 0.0057%에 불과하다. 0.0057%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택배업에 뛰어들면서 ‘농가의 이익 증진을 위해서’라고 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협회는 주장한다.

권영택 현대로지스틱스 전국운송협의회 명예회장은 “전체 택배 물량 중에 농수산물 배송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3%인데 이것을 농협이 모두 흡수한다고 해도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며 “농수산 택배라는 명분으로 시장에 진출한 후에 농협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 보듯 빤하다”고 주장했다.

농협은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TV홈쇼핑인 제7홈쇼핑에도 도전장을 냈다. 농협이 제7홈쇼핑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두고 업계의 시선이 곱지 않다. 택배업계의 한 관계자는 “(농협이) 겉으로는 농수산 택배 운운하며 농가 이익 증진을 외치지만 그 속내는 전혀 다르다”며 “제7홈쇼핑 사업에 적극적인 것만 해도 그렇다. 결국 홈쇼핑의 판매 물량을 농협 택배로 배송하도록 해 판을 키우겠다는 구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농협의 택배 진출로 향후 벌어질 택배 물량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권영택 회장은 “농협이 과거 우체국과 같이 사업 초기에 물량 확보를 위해 공산품 등 물품에 대해 단가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이미 택배 운임이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데, 농협까지 가세해 단가 경쟁을 벌이면 운임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우체국이 1999년 택배 사업에 진출하면서 시장 확보를 위해 단가 경쟁을 벌인 결과, 1997년 건당 4700원대였던 택배 평균 단가가 지난해에는 2480원대로 떨어져 절반 가까이 내려앉았다.  

권영택 전국운송협의회 명예회장은 농협이 택배업에 진출하면 운임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일반 택배회사와 ‘불공정 경쟁’ 우려

“농협 택배는 일반 택배업체와 출발선부터 다르다. 관련법 제재를 받지 않는 데다 전국적인 유통망까지 갖추고 있으니 천하무적이나 다름없다.” 한 대형 택배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업계 측 주장에 따르면 민간 택배업체들은 현재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제56조(화운법)의 적용을 받아 영업용 운송차량을 늘리는 데 제한을 받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위원회 배명순 사무국장은 “택배업체들은 화운법 적용을 받아 영업용 화물자동차용 번호판, 이른바 ‘노란색 번호판’을 단 차량으로 영업을 해야 하는데, 증차에 제한을 두고 있어 현장에서 늘 영업차량이 부족하다”며 “그래서 웃돈을 주고 번호판을 사고파는 경우가 많은데 차보다 번호판이 더 비쌀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협은 사정이 다르다. 농협 택배가 농업협동조합법 제12조(다른 법률의 적용 배제 및 준용)의 적용을 받게 되면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배 사무국장은 “농협은 농협협동조합법 적용 대상인데 이 법 제12조에는 ‘조합과 중앙회의 사업에 대해서는 화운법 제56조 등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며 “만약 농협 택배가 농협법 제12조 규정을 적용받는다면 증차를 제한하는 화운법을 따르지 않아도 돼 특혜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협 택배 TF팀 관계자는 “농협이 기존 택배사를 인수해 농협 택배를 시작하면 당연히 주식회사 형태가 될 것이므로 화운법 적용을 받게 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농협 택배가 농협법 제12조의 적용을 받게 되느냐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에서 뚜렷한 입장을 내놓은 게 없다. 업계 측 반발이 상당할 텐데 (농협법 12조) 적용은 힘들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농협은 현재 택배 진출과 관련해 확정된 바가 없는 상황에서 업계가 지나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농협 TF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택배 사업 진출 타당성을 세부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라며 “택배 참여 방식이나 운영 전략, 경영 안전화 가능성 등을 검토하는 데 6개월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농협중앙회 관계자 또한 “언제 진출한다는 구체적 구상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업체들이 과민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며 “최원병 회장이 국감에서 농협의 택배 사업에 대해 언급한 것은 ‘농축산물 택배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농협이 나서달라’는 농업인과 농민단체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 업체들이 농축산물 배송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농협 또한 택배 진출 명분이 없어지게 될 것인데 (농축산물 택배가) 배송도 어렵고 수익도 나지 않는 분야이다 보니 다들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농협 택배가 농업협동조합법 제12조의 적용을 받을 경우 특혜 논란이 일 전망이다. ⓒ 시사저널 구윤성
“택배 파업 벌어질 수 있다”

농협의 택배 진출 문제를 놓고 업계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측이 지난해 11월 청와대와 농림부에 농협중앙회의 택배 사업 진출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12월부터는 14개 회원사와 함께 ‘농협택배 결사반대’ 문구를 내건 현수막을 단 차량 250여 대를 운행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농협이 택배 사업을 시작한다면 택배업체가 연합해 파업에 나설 수 있다. 농협발 택배대란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올해 택배업계는 업체 간 인수·합병 바람이 불면서 대규모 지각변동이 예고된 상태다. KG그룹은 12월22일 중견 택배업체인 동부택배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KG그룹의 택배 자회사인 KG옐로우캡이 동부택배를 합병하면 시장 점유율이 단숨에 7%대로 올라가 업계 6위가 된다. 현재 택배 시장 1위 업체는 CJ대한통운이며 현대로지스틱스, 한진, 우체국, 로젠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로젠택배와 KGB택배의 인수·합병설도 나돈다. 농협이 인수·합병으로 덩치가 커진 택배사를 인수하기 위해 시장 진출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 측은 “농협 택배에 관한 소문이 무성하지만 모두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신속한 시장 진입과 농업인의 택배 불편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해 기존 택배사를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굳이 규모가 큰 회사를 매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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