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포옹 한 번이면 족하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1.0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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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발견> 펴낸 최광현 트라우마가족치료연구소장

영화 <국제시장>이 가족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부모 세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왜 아버지가 ‘또라이’처럼 고집불통인지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극장을 나오자마자 자신의 가족 문제를 돌아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방법을 이해하고 따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 부부간에 꼬인 ‘관계의 문제’를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간에 주고받은 상처가 무엇인지, 자신이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한 그 가족의 오래 묵은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가족의 두 얼굴> 저자로 잘 알려진 가족심리 치유 전문가 최광현 트라우마가족치료연구소장(48)은 ‘사랑하는 가족’에게 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지 오래전부터 천착해왔다. 최근 그 결과물로 두 번째 가족 이야기 <가족의 발견>을 펴냈는데 이 책은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우리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더 이상 가족에게 상처받지 않고 나와 가족을 보듬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주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과 가족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 시사저널 이종현
가족 사이에 경험하는 상처가 더 아프다

최 소장은 “가족 문제를 다룬 영화가 계속 나오고 인기를 끄는 이유는 모두가 가족 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 해결도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라며 최근 본 영화 몇 편에서 발견한 가족 내 갈등과 상처를 지적했다. 그는 “말만 바꾸면 상처가 치유되거나 갈등이 해결되는 줄 아는데, 상처를 정확히 볼 줄 알고 소통하고 서로 공감하지 않으면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한 가족의 사례를 들려줬다. 결혼 후 첫 명절을 맞은 새댁은 일이 많이 서툴렀지만 최선을 다했다. 명절 행사가 다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는 날, 새댁은 우연히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쟤는 왜 이렇게 일을 못하니?” “글쎄 말이에요, 엄마.” 그 순간 새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새댁은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자 남편이 라디오의 볼륨을 확 높였다. 아내는 위로는커녕 우는 소리 듣기 싫다고 라디오 소리를 높인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다. 당장 이혼하자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아내의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렇게 행동한 걸까. 그는 그저 아내가 울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몰랐을 뿐이었다. 그는 언제나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내도 자기와 같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그저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많이 힘들었지?” 이 한마디면 되는 것이었다.

최 소장은 “이혼율 세계 3위인 우리나라 부부의 이혼 사유는 대부분 성격 차이라고 한다. 이런 부부를 깊이 살펴보면, 성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은 다르지만 속에 감추어진 부분은 놀랍게도 같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 전에는 서로 닮은 점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서로의 상처가 비슷하기 때문이며, 결혼 후에는 이해하기보다 서로의 상처로 서로를 더 힘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 소장은 이를 ‘관계의 문제’로 봤다. ‘가족이라면 이해하겠지’ ‘가족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만 바꾼다고 상처가 치유되진 않는다”

“‘관계의 문제’는 상대방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있고 자기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해결의 열쇠’를 상대방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답답함과 조급함, 때로는 절망마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열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부담감이 훨씬 덜해진다.”

최 소장은 관계의 문제를 소통과 공감으로 해결하는 걸 알고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 듯이 가족 간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담을 받던 여성이 ‘왜 나만 참고 용서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신에게 문제가 더 많아서가 아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 갈등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먼저 빠져나와야 한다. 이것은 마치 과거 시골에 있던 펌프와 같다. 펌프 아래에는 시원한 지하수가 가득하지만 물을 마시려면 한 바가지의 물, 즉 마중물이 필요하다.”

최 소장이 제시하는 해법은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잊거나 애써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그리고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자연스레 치유와 관계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은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피난처이다. 소통과 공감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포옹 한 번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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