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스타 X파일] #10. 오디션 떨어졌으나 감독 부인이 ‘콕 찍어’
  • 이기진│PD ()
  • 승인 2015.01.0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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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작 <박하사탕> 주인공 역 행운…송윤아와 재혼 때 마음고생

“2014 MBC 연기대상!” 지난 12월30일 카메라가 강력한 대상 후보인 송윤아와 이유리를 번갈아 비췄다. 대상 수상자로 이유리가 호명되자 송윤아의 눈가에 순간 아쉬움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후배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따뜻한 박수를 건넸다.

6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송윤아는 드라마 <마마>에 출연하며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울면서 “결혼해서 아이 낳고 6년 공백 후 첫 출연 작품인데  <마마>가 내게는 기적 같은 작품이며 큰 선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편인 영화배우 설경구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 어쩌면 그의 성공적 복귀를 가장 바라고 열렬히 응원한 사람은 설경구였을 것이다.

2009년 5월9일 배우 설경구와 송윤아가 결혼식을 올리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설경구와 동생의 이혼 원인은 송윤아”

설경구가 전처와 이혼하고 2009년 송윤아와 결혼한 후 불거진 의혹과 일부 네티즌들의 비난이 너무 긴 시간 두 사람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전처의 친언니임을 자처하는 이가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린 폭로성 글은 사실 여부를 떠나 오랜 시간 두 사람을 힘들게 하는 단초가 됐다. 이른바 설경구의 전 처형임을 자처한 이 여성은 “동생과 설경구의 별거, 그리고 이혼의 원인이 바로 송윤아이며, 두 사람은 설경구의 이혼 이전부터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불륜 커플이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송윤아는 결혼 후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쏟아지는 네티즌들의 야유와 비난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설경구·송윤아 부부는 지난 5년간 눈물로 호소하고 모성애와 부부 금실 등을 드러내며 상황을 바꿔보려 애썼다. 급기야는 악플러들을 고소하겠다는 극약 처방을 내놓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송윤아는 6년여 만에 본업인 드라마 출연을 감행했다. 드라마의 반응을 지켜보는 마음의 조마조마함은 당사자인 송윤아보다 설경구가 더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6500만명. 대한민국 전체 국민 수를 훨씬 능가하는 이 숫자는 영화배우 설경구가 그동안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통해 기록한 누적 관객 수다. 이 숫자는 그가 대한민국 영화 시장에서 얼마나 대단한 파워를 지니고 있는 스타권력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언론에서 그를 수식하는 여러 단어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구는 ‘국내 최초 1000만 돌파 배우’다. 2003년 그는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를 통해 최초로 관객 1000만명 돌파 배우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어서 2009년 <해운대>를 통해 두 번째 1000만 돌파 기록을 세웠다. 또한 그의 출세작이기도 한 <공공의 적> 시리즈 3편을 통해 10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고, 2013년에는 <감시자들> <소원> <스파이> 세 작품을 통해 한 해 1681만명 관객 동원을 기록했다.

“스타성과 스타권력은 전혀 다르지요.” 흔히 엔터테인먼트업계 시장에서는 스타를 두 부류로 분류한다. ‘스타성’과 ‘스타권력’이다. TV와 달리 영화는 주연 배우의 폭발력이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다. 즉 송강호·설경구·최민식·이병헌 같은 톱스타급 배우들은 자신의 인기만으로 일정 정도 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연예가에서는 바로 그들을 스타권력이라고 칭한다. 그들은 자신이 직접 작품을 고르고, 영화 제작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한다. 나아가 경제적 측면에서도 크게 차별화된 혜택을 보장받는다.

최민식·송강호 등과 함께 스타권력 정점에

반면에 톱스타라 할지라도 전혀 관객 유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배우도 많다. 이 경우 ‘스타성은 있으나 폭발력이 떨어진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이런 스타들은 TV에서는 인기가 유지되어도 소비자가 자신의 돈과 노력을 투여해 찾아가는 영화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 지난 2014년 한 해, 설경구는 아내의 드라마 복귀 때문인지 다른 해에 비해 쉬어가는 스탠스를 취했다. 단 한 편의 영화에만 출연했다. 그나마 그 영화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믿는 인물을 연기한 <나의 독재자>는 지난 10월 말 개봉되었지만, 38만5000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의 라이벌로 꼽히는 흥행 배우인 송강호·최민식은 <변호인>과 <명량>을 통해 각각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고, 내친김에 최민식은 역대 최다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송강호도 <변호인>의 1100만명 돌파를 통해 역대 누적 관객 수 1위 배우에 올라섰다.

설경구는 대학 졸업 후 극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김민기의 눈에 띄어 연극 <지하철 1호선>에 투입됐다. 그를 영화계에서 주목받게 한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1999년 영화 <박하사탕>이다. 이 작품은 그에게 그해 대종상·백상연기대상·청룡영화상 등 10개의 상을 안겼다. 하지만 <박하사탕> 출연에는 남다른 뒷이야기가 감춰져 있다. 그는 정말 지독히도 운이 좋았다. 실제 설경구는 처음 <박하사탕>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이창동 감독의 부인이 우연히 거실에서 오디션 필름을 보다가 “김영호(<박하사탕>의 남자 주인공 이름) 여기 있네”라며 전혀 모르는 설경구를 남편에게 지목한 것이다. 이 감독의 부인은 바로 방송 드라마 작가로 유명한 이정란씨다. 

초년병 시절부터 상복이 많았던 그는 월드컵이 온 나라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2002년

<공공의적> <광복절 특사> <오아시스>를 연속 히트시키며 다시 각종 영화제에서 10개의 남우주연상을 휩쓰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웠다.

설경구는 현재 스타권력의 정점에 있다. 그는 올해 잠시 주춤했지만 송강호·최민식·이병헌 등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앞으로도 한국 영화판을 좌지우지할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일본을 넘어 중국·미국·유럽으로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그들의 경쟁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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