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민정수석은 왜?
  • 조해수·감명국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1.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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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권력암투·문건 유출 이어 항명 파동까지 난장판

확실히 지금 청와대는 비정상이다. 내부 권력암투와 문건 유출 파문으로 지난 연말 정국을 들쑤시더니, 해가 바뀌자마자 이번에는 사상 초유의 항명 파동이 벌어졌다. 1월9일 ‘왕실장’으로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회 출석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한 김영한 민정수석이 사퇴를 표명했다. 김 실장은 “김 수석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김 수석의 ‘돌발 항명’ 사태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청와대가 밝힌 항명 이유는 이렇다. “문건 유출 사건 이후 부임해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본인(김 수석)의 출석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말 그대로 정치 공세라고 생각한다.” “지난 25년간 특별한 경우 외에는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정착돼왔는데, 정치 공세에 굴복해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출석하지 않겠다.” “다만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본인이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1월9일 국회 운영위원회장에서 빚어진 초유의 항명 사태에 당황한 여야 지도부가 김기춘 비서실장 앞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 수석의 해명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많다. 우선 그는 “문건 유출 후에 부임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잘 알지 못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국회 운영위에서 김 수석에게 묻고자 했던 것은 정윤회 문건의 유출 경위가 아니라, 문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유출자로 알려진 한 아무개 경위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회유 의혹에 관한 것이었다. 또 다른 유출자로 지목돼 검찰 조사 도중 자살한 최 아무개 경위는 유서에서 “민정비서관실에서 너(한 경위)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김 수석의 해명은 자신이 사임할지언정 청와대를 보호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실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이 ‘항명’이라는 점을 그가 모를 리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즉, 김 실장 이하 청와대 비서진의 기강이 붕괴됐음을 김 수석 스스로 보여준 셈이 됐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점은, 김 수석이 이미 오래전부터 국회 운영위 출석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김 수석 출석은 (운영위 소집) 2주 전부터 합의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김 수석은 운영위 소집 전에 사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운영위 출석 지시 거부라는 초유의 일을 벌였다. 일각에서는 김 수석이 운영위 출석 거부를 통해 오랫동안 쌓여왔던 청와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 연합뉴스
김영한과 우병우 갈등설 불거져

청와대 사정에 밝은 사정 당국 관계자 ㄱ씨는 “김 수석은 평소 자신이 민정수석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자답해왔던 것으로 안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김 수석은 청와대 민정 라인의 수장이었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우병우 민정비서관의 힘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 비서관은 김 수석의 직속 부하다. 사법연수원 기수로도 김 수석(14기)에 비해 5기 후배다. 이런 두 사람 간의 내부 갈등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우 비서관은 이중희 전 비서관 후임으로 지난해 5월께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는 TK(대구·경북) 출신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특수통 검사다. 우 비서관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자신이 관리하는 민정실 파견 요원들을 대거 교체하고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나갔다. 사정기관 관계자 ㄴ씨는 “우 비서관이 이른바 ‘새 술은 새 부대에’ 식으로 내부를 변화시켜나갔다. 빠른 속도로 민정실을 장악한 것이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우 비서관은 김 수석이 들어온 후에도 민정실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평소 직속 상관인 김 수석이 아닌 김기춘 실장에게 직보를 한다는 전언도 청와대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우 비서관은 이번 정윤회 파동 처리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조응천 7인그룹’을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것도 우 비서관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었다. ‘정윤회 문건’ 파동이 터진 후 공직기강팀이 아닌 특별감찰에서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도록 했는데, 특감 강화에도 우 비서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ㄱ씨는 “조응천 7인회 그룹 등 정윤회 파동에서 보여준 민정실의 대처에는 무리수가 많았다. 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하는 상황에서 김 수석이 더 이상 참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김 수석이 실제로는 운영위 소집일인 1월9일 이전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ㄱ씨는 “검찰의 정윤회 파동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즈음에 김 수석이 사퇴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고 있다. 김 수석으로서는 이미 사퇴 의사를 밝힌 마당에 운영위에 나가 곤욕을 치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동안 3명 불명예 낙마  



박근혜정부 들어 2년 새에 3명의 청와대 민정수석이 중도 하차했다. 모두가 경질 성격의 낙마였다. 물론 이번 김영한 민정수석의 경우는 스스로 사퇴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소 다르다.

현 정부 첫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전 수석은 2013년 8월 당시 허태열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진의 대거 교체 파동에 휩쓸려 청와대를 떠났다. 정권 초기부터 곽 전 수석은 계속해서 교체설이 나돌 정도로 입지가 불안했다. 경질의 결정적 배경은 국정원의 대선 및 정치 개입 사건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당시 채동욱 총장 체제의 검찰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데 대한 문책성이란 의견이 많았다. 실제 곽 전 수석은 사법연수원 15기로 채 전 총장(14기)보다 후배였다. 후임 민정수석으로 들어온 홍경식 전 수석이 연수원 8기로 채 전 총장보다 훨씬 선배라는 점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홍 전 수석이 2013년 8월 김기춘 비서실장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롱런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왕실장’의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데다, 검찰을 압도할 만큼의 기수와 경력 때문이다. 하지만 홍 전 수석의 발목을 잡은 것은 지난해 6월 안대희 총리 후보자 낙마 파장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줄 정도로 안 후보자의 낙마는 충격이 컸다. 결국 안 후보자에 대해 제대로 된 검증을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 홍 전 수석은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경질됐다. 하지만 당시 홍 전 수석의 실제 경질 이유는 지난해 4월 세계일보가 몇 회에 걸쳐 ‘청와대 행정관 비위’ 기사를 연속 보도한 것과 관련해 민정수석실 내부 문서가 통째로 유출된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의혹이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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