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3인방’에 더욱 줄 서게 생겼다
  • 이준한 |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1.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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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보수 언론도 인적 쇄신 요구하는데 청와대만 요지부동

무릇 정치인은 여론에 매우 민감하다. 여론이란 한마디로 공공의 의견이다. 전통적으로 여론은 특정한 사건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아 그 시점에 형성된, 대중 사이의 지배적인 의견이요 정서다. 정치인은 결코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이슈에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 관심이 크고 참여에 적극적인 행위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현안이라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여당 의원들은 물론, 보수적인 언론 매체에서도 한 달 넘게 정국을 강타했던 이른바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청와대의 인적쇄신과 국정 시스템 개혁이라는 여론을 전달하고 있건만,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청와대의 인적 쇄신과 국정 시스템 개혁이라는 주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라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제기돼왔던 사안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정치적·도의적으로 책임지는 사람 없어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이 기사화된 직후부터 청와대에서 직접 만들어진 대통령기록물을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그 내용을 조금만 확인해보면 사실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고 단정했다. 검찰은 한 달 동안 수사를 하면서 이 모든 것이 대통령 동생에게 기대보려는 조응천과 박관천의 자작극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동안 지면을 장식했던 비선 실세의 개입과 국정 농단에 대한 수사는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정윤회는 물론 청와대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은 아주 깨끗한 것으로 발표됐다. 그렇다면 이 측근들이 국정의 요소요소는 물론 심지어 정부 부처 국장 이하의 인사까지 시시콜콜하게 챙긴다는 언론과 국회의 지적은 모두 풍설이요 틀렸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핵심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정윤회 문건은 다른 곳이 아닌 청와대에서 만들어졌다. 그 문건은 한두 장이 아니라 라면 박스 두 개 분량이 청와대 사람에 의해 외부로 유출됐다. 청와대에서는 직원들이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정을 살피는 게 아니라, 대통령 동생 쪽 사람들과 다른 쪽 실세들이 패를 나눠 서로 불신하고 헐뜯고 등을 찌르고 했다. 청와대의 보안 시스템도 도덕성도 조직문화도 무너졌다. 그런데 처방은 달랑 청와대 출입 보안 시스템을 비밀번호 대신 신분증을 이용하는 식으로 바꾸는 대책뿐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정치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국민을 무시하고 여론을 거스르는 것이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1월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에 대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자성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 연합뉴스
검찰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어차피 검찰이 여태껏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칼날을 제대로 휘두른 적이 국민의 기억 속에는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서슬이 시퍼런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사건의 개요와 수사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정윤회 문건에 있는 정부 인사와 관련된 내용에 문제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궁색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계속 이렇게 한다면 대통령이 공약했던 사회통합은 더뎌지고, ‘100% 대한민국’은 더 멀어지며, 중산층 복원은커녕 경제 회복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국민이 여전히 의혹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여당 의원들도 최소한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교체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12월 박 대통령이 청와대 3인방은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취지로 재신임했고, 올해 1월2일 청와대 시무식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더욱 분발할 것을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청와대 3인방에게 오히려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이제 모든 고급 정보는 이들 실세에게 쏠릴 것이고 출세하려는 공무원은 이들에게 줄을 서게 될 것이다. 경제 회복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공무원 사회의 영은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능력과 업적, 시스템보다는 특정 대학과 지역 출신이 득세하니 말이다.

김기춘 실장, 스스로 사과하고 물러나야

청와대는 검찰 수사 결과 정윤회 문건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인적 쇄신이나 국정 시스템의 변화가 불필요하다고 믿는 것 같다. 지금 인적 쇄신에 대한 여론을 아무 죄가 없는 청와대를 흔드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지금이 경제 회복의 골든타임인데 인적 쇄신 같은 것으로 발목 잡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바로 임기 말 현상에 빠지는 것이라고 여긴다. 여론에 애써 반응하지 않으려 들고 무책임하다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이 바라고 국회가 원하며 언론이 지적하는 일이라면 지금 당장은 입에 쓰더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한 약이거니 하며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무엇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스스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물러나는 게 필요하다. 대통령도 이제 비서실장을 놓아주고 심기일전해야 한다. 이미 사표를 제출한 장관도 있으니 새롭게 국무위원들도 공정한 평가에 기초해 교체해야 한다. 취임 이후 박 대통령은 오랫동안 일을 같이 했던 사람 가운데 다시 믿고 쓰고 아무도 모르게 인선을 해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에는 국민을 감동시키고 국회와 언론의 문제 지적과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시스템에 의거한 인선을 해야 한다. 아무도 그것이,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국면 전환용 인사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집권 3년 차에 큰 선거가 없는 올해, 임기 초반을 평가하고 새로운 국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무회의를 제외하고는 대통령과 만나서 국정을 논하는 기회가 없다는 장관이 태반인 것은 국정 시스템의 큰 문제이자 위기다. 야당이나 시민사회 인사를 자주 만나라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발언을 수첩에 받아 적는 일만이라도 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장관이 국정 장악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인사권도 보장해서 차관도 추천하고 그 이하는 직접 인사할 수 있도록 바꾸자. 그래야만 대통령의 공약인 책임장관제가 정착되고 투명하고 절차에 부합하는 인사 발탁이 이루어질 것이다. 청와대 3인방에 국정이 휘둘린다는 말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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