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희미해져가는 ‘김일성’과 ‘김정일’
  • 진희관│인제대 통일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15.01.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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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신년 메시지에서 전대 수령 지도이념 사라져

북한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새해 신년사 발표 이후 1월6일 평양시군중대회를 필두로 신년사 사업 관철을 위한 군중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했다. 김정일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북한은 연초 평양시를 시작으로 전국 도 단위 군중대회를 동시다발적으로 열어 신년사에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보고 후에 토론, 이어 군중 행진을 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그동안 신년에 보여온 북한의 대남 반응들은 당시의 남북 관계 상황과 밀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시기마다 다른 자세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2014년 신년사부터 북한의 대남 언급 내용들은 매우 조심성을 담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지난해 1월1일자 조선중앙통신은 ‘북남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고, 1월5일 군사훈련에 대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비난이 있었지만 6일자, 7일자 로동신문 논설을 통해 남한 정부에 대한 비난 없이 통일의 중요성만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박근혜정부에 대한 실명 비난 없이 ‘현 집권 보수 세력의 반통일 대결 책동’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점으로 볼 때 남한 정부를 크게 자극하지 않으려고 매우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새해 첫날 고아원인 평양육아원·애육원을 방문했다. ⓒ 연합뉴스
통일·남북 관계 내용 70% 늘어

이와는 달리 이명박 정부 시기였던 2012년과 2013년은 사뭇 다르다. 2013년에는 1월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의 실명을 거명하면서 맹비난했다. 3일자 조평통 대변인 담화에서도 역시 같은 수위의 비난이 이어졌다. 2012년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한 조문 문제로 인해 이 대통령 실명을 거명하며 ‘남조선 보수패당’과 함께 맹비난이 이어진 바 있다. 이처럼 신년에 보이는 북한의 대남 자세들은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그런데도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두 차례의 신년사에서는 모두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29일 우리 측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에서 대북 제안을 발표한 이후에도 북한은 오랜 기간 답변을 보류한 채 조심스러운 반응만을 내놓았다. 1월6일자 로동신문 논설 ‘조국통일운동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자’에서는 비난 없이 통일의 중요성만을 언급했고, 같은 날 조선중앙통신 논평 ‘대결인가 관계개선인가 입장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에서는 탈북자단체의 전단지 살포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면서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대화 분위기가 중단된 사태를 환기시키고 있다. 여기서 북측은 “또다시 파국으로 몰아가겠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북남 관계 개선과 대화에 나서겠는가 하는 데서 입장을 명백히 하여야”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금후 사태를 주시할 것이다”고 곁들였다. 예컨대 전단지 살포로 인해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 정부의 자세를 기다리면서 관망한 이후 평가하겠다는 한결 조심스러운 입장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신년사에서도 볼 수 있다. ‘최고위급 회담’ 개최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중요한 전제가 있다. 남한 당국이 “진실로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이라는 전제가 그 문장 앞부분에 나와 있다는 점이다. 또한 눈에 띄는 것은 상당한 분량의 내용을 통일 문제와 남북 관계에 할애했다는 점이다. 이 역시 통준위의 대북 제안에 대한 고려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분량으로만 본다면 역대 최대라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글자 수만 2025자에 달한다. 김정일 사망 이전 3년(2009~11년)과 이후 3년(2012~14년)을 합쳐 지난 6년간의 내용을 비교해볼 때 가장 많았던 2012년의 1683자보다 20.3% 증가했고, 지난해인 2014년 신년사에서 언급한 통일 및 남북 관계 관련 내용의 1191자와 비교하면 무려 70%나 증가한 분량이다. 신년사와 최근 북한 매체를 통한 반응을 볼 때 남한의 대북 제안에 대해 현재 내부적으로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후대 지지층 기반 위해 어린이에 관심 

이 밖에도 올해 신년사를 분석해보면, 크게 세 가지 면에서 뚜렷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이제는 김정은 제1비서의 체제가 확고해져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전대 수령인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실명 언급이 전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지도이념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김일성-김정일주의’에 대해서도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지난 2년간 김정은의 신년사와 비교해볼 때 눈에 띄는 변화다. 지난 2년간은 마지막 문장에서 반드시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 따라…”라고 강조했지만 올해는 아예 없었다.

두 번째로 지난해의 화두였고 김정은 시대의 속도전이라는 ‘마식령속도’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대신 ‘조선속도창조’라는 표현으로 다르게 제시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김 제1비서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마식령 스키장 사업의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향후 새로운 방식의 사업을 추진할 것이 예상된다.

세 번째로는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강조가 유달리 눈에 띈다. 서두의 인사 문장에 군인·인민·가정과 함께 어린이가 새롭게 포함되었고, 경공업 부문에서 어린이에 대한 소비품·학용품·식료품이 더 많이 공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 제1비서가 실제 세 살배기 어린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도자로서의 자애로운 아버지상을 이미지화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젊은 지도자의 후대 지지 그룹은 바로 지금 10세 이하의 어린이라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다. 15년, 20년 후 김 제1비서가 50대가 되었을 때 ‘후비대(後備隊)’가 될 수 있는 연령대라는 점을 감안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과거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 시절 청년동맹을 강조했던 점과도 맥을 같이한다. 신년사에 나타난 몇 가지 변화들을 볼 때 김정은 제1비서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면서 점차 자신의 체제를 공고화해나가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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