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뿐이다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5.01.15 18: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검찰의 이른바 ‘정윤회 문건’ 중간 수사 결과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두 차례나 ‘찌라시’라고 못 박았던 터라 답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검찰은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풍설들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공직자에 의해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가공, 국정 운영의 최고 기관의 동향보고 문건으로 탈바꿈한 것” 이라고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청와대는 “몇 사람이 개인적 사심으로 인해 나라를 뒤흔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 밝혀졌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것은 국민의 인식과 동떨어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윤회씨를 비롯한 문고리 3인방,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 농단 여부입니다. 검찰은 이 중 어느 것 하나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제2부 속실 비서관의 ‘경찰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이재만 비서관 등의 인사 개입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갖는 무게나 내용의 구체성을 볼때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정윤회씨는 고소인 자격으로 형식적인 조사를 받는 데 그쳤습니다. 의혹의 핵심 인물인데도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를 하지 않고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일본 산케이신문 검찰 출입기자가 쓴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검사는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처음 작성한 시나리오에 억지로 끼워 맞춰 사건을 만들고 있다.” ‘정윤회 문건’ 사건을 수사한 우리 검찰을 두고 한 말 같습니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을 ‘개인 일탈’로 뭉개고 넘어갈 모양새입니다. 비선의 국정 농단과 권력암투 등 의혹의 본질을 ‘사심을 가진 자들의 일탈’로 비틀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청와대가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전 행정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박 대통령의 비서였습니다. 유진룡 전 장관도 현 정부에서 녹을 먹은 사람입니다. 이들이 일탈을 했다면 애초 대통령이 인사를 잘못 했다는게 됩니다. 오죽했으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정윤회 문건, 실세인 청와대 진돗개가 알려나”라고 조롱했겠습니까.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의혹의 실체를 밝힐 의지도 힘도 없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이제 특검을 도입하는 것밖에 길이 없습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국민의 59%는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20%에 불과했습니다.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설이 ‘사실일 것’(48%)이라고 믿는 사람이 ‘사실이 아닐 것’(15%)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세 배나 많았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검찰 수사를 불신하고, 비선권력의 국정 농단 의혹이 파묻히는 상황에서 특검 수사는 외길 수순입니다. 청와대가 떳떳하다면 특검 요구를 묵살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꾸 딴청을 부리는 것은 구린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울 뿐입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