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그를 악마라, 우린 영웅이라 부른다
  • 허남웅│영화평론가 ()
  • 승인 2015.01.1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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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클린트 이스트우드 35번째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올해 85세가 됐다. 남들은 은퇴하고 노후 생활을 즐기는 동안에 이스트우드는 감독으로서 더욱 왕성한 창작력을 선보이고 있다.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1971년)로 감독 데뷔한 이래 매년 한 편씩의 페이스로 지금까지 34편의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는데, 그중 스무 편이 환갑이 넘은 이후에 나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그의 35번째 영화이자 84세에 만든 신작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저격수로 꼽히는 크리스 카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이라크에 파병된 크리스(브래들리 쿠퍼)가 옥상에서 총을 겨누는 장면을 보여준다. 표적은 맨손에 포탄을 들고 미군 탱크로 향하는 이라크 아이다. 과연 저 어린아이를 쏠까 하는 순간 장면은 크리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가 어떻게 저격수가 됐는지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텍사스 출신의 크리스는 아버지로부터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야 한다는 충고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랐다. 카우보이로 활약하던 그는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지는 광경을 TV로 목격하고는 서른 살의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다. 남다른 사격 실력을 지닌 크리스는 저격수 임무를 맡게 되고 곧 이라크에 파병돼 능력을 인정받는다.

공식 160명, 비공식 255명, 미군 역사상 최다 저격 기록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는 미국에서 전쟁 영웅이자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아니 통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촬영이 한창이던 때 그는 육체적 고통은 물론 심적 불안을 보이는 재향 군인을 상대로 총 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정신 착란을 일으킨 이의 총에 맞고 사망했다. 이스트우드는 그의 추도식 방송 장면을 그대로 영화의 마지막에 갖다 붙여 크리스 카일을 추모했다.

이를 두고 영국의 가디언은 ‘이라크 파병 미군에 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동적인 경의’라는 평가를 했다. 크리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대해선 적합한 평가가 아니다. 이스트우드는 크리스를 전쟁 영웅이나 전설의 저격수가 아닌 전쟁 피해자, 즉 전쟁이 어떻게 그와 그의 동료, 더 나아가 미국을 망쳤는지에 초점을 맞춰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구성했다. 

이 영화의 국내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홍보 문구가 전면에 나선다. ‘적은 그를 악마라 부르고 우린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크리스 카일을 지칭하는 것일까. 제목에 ‘아메리칸’이 명기된 만큼 많은 사람이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겠지만, 주어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애매하다. 의도적일 것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에는 크리스 외에 또 한 명의 저격수가 등장한다. 이라크군 소속의 무스타파다. 크리스가 이라크 반란군에게 악마로 불린 것처럼 미군에게 무스타파 또한 악마다. 그러니까, 이라크 반군에게 무스타파는 또한 영웅이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지만, 둘 다 자신의 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점에서 크리스와 무스타파는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   

결국 자신의 영혼을 표적 삼은 저격

이스트우드는 늘 전쟁 같은 삶을 영화로 다뤄왔다. 그가 가장 많이 출연하고 연출한 서부극도 기본적으로 전쟁을 무대로 한다. 아예 전장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화산섬 이오지마를 두고 대립했던 미군과 일본군의 입장을 각각의 영화에 담았던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상 2006년)를 만들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전쟁의 실상과 전쟁에 임하는 병사의 생각을 균형 있게 다룬 전쟁영화의 걸작이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크리스에게 장면 대부분을 할애했다. 하지만 뻔한 전쟁영화와는 다르게 무스타파를 적이 아닌 크리스의 거울상으로 가져가며 역시나 편을 가르지 않는 현자의 시선을 견지한다. 무스타파는 크리스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올림픽 사격 부문에 출전해 메달을 땄을 정도로 총 쏘기에 재능을 지녔고 크리스가 9·11을 목격하고 군에 자원 입대한 것처럼 시리아에서 활동하던 무스타파는 이라크가 미군에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든 영광을 뒤로한 채 저격수 임무를 자청한다. 결국, 전쟁은 같은 인간이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그에 따른 복수심의 순환으로 만든 최악의 결과물이다. 자신의 동료 수백 명을 저격한 크리스의 출현 소식을 들은 무스타파는 얼른 총을 챙겨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집을 나선다. 역시나 동료의 죽음을 되갚겠다며 아내의 만류와 아이들의 갈구하는 눈빛을 무시하고 네 차례의 파병을 지원한 크리스는 무스타파의 미국인 버전, 다시 말해 ‘아메리칸 스나이퍼’인 것이다.

크리스와 무스타파의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모습에서 무엇을 취하게 될까.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포탄을 든 이라크 아이를 표적으로 한 크리스의 총구는 과연 불을 뿜을까. 잠깐, 크리스의 총이 겨냥하는 대상이 이라크 아이가 맞긴 한 건가. 영화는 그 장면에 이어 바로 어린 시절의 크리스를 보여주지 않았나. 그렇다면 전장의 크리스가 실질적으로 저격하려는 대상은 바로 그 자신의 영혼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가치를 뼛속 깊이 체화했던 크리스의 영혼은 그때 이미 죽어버렸다. 전쟁이란 그런 거다. 이런 피의 악다구니 속에서 영웅이, 전설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을 향해 즉각적으로 총을 쏘는 마초 캐릭터로 스타덤에 올랐다. 한편으로 대표작인 <더티 해리>(1971년) 개봉 당시 저명했던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로부터 ‘우익의 판타지에 복무하는 캐릭터’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스트우드는 “난 실제 삶에서 폭력을 옹호하지 않는다. 만일 그동안 폭력을 옹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제 다시 그런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이후 그의 영화적 행보는 ‘총을 내려놓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총 대신 카메라(<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년)), 권투 글러브(<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년))를 손에 드는가 하면 총이 있더라도 주머니 속에 간직(<그랜 토리노>(2008년))하는 쪽을 택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도 그 연장선에 있다. 미국의 미래, 더 나아가 세계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저격’은 총을 놓는 것이다. 85세의 노인이 35번째 영화로 전 세계에 들려주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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