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과 한숨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5.01.15 19: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주 오래 담배를 피웠었다. 근 30년 동안이었다. 그러다 보니 담배에 얽힌 추억이 많다. 내가 담배를 처음 배울 때는 여자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 자체가 무슨 패륜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훈계는 물론, 심한 경우에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왜 피웠나. 한번 배운 것을 도무지 끊기 어려운 이유도 분명 있었겠으나, 어느 정도는 반항 혹은 저항적인 의미도 있었던 것 같다. 기성세대, 제도권, 시대의 부조리 등등에 대해.

금연자가 된 후에 달라진 것들이 있다. 금연을 시작할 당시의 온갖 극단적인 금단 증상과 우울과 짜증과 초조감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를 지나자, ‘살아가는 건 담배 없이도 가능하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담배와 얽힌 아름다운 추억들만 빼놓는다면 담배 없는 삶은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담배를 떠올리지도 않는다.

담배를 끊게 된 계기가 있다. 몇 해 전에 미국에서 반년 정도를 머물렀는데, 그때 담뱃값이 기절하게 비쌌다. 한국에서는 2500원 하던 담배가, 브랜드도 똑같고, 포장도 똑같은 담배가 네 배 값이었다. 경제적 부담이 살벌하기도 하거니와 똑같은 담배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게 억울한 느낌이기도 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그런 기분이 들 것을 예상했고, 정말로 그런 기분이 들면 끊어야지 했었다. 당장 끊게 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내가 세를 얻었던 집은 주인집과 정원을 공유하는 단독형 원룸이었는데, 계약 조건에 흡연 금지가 있었다. 담배를 끊을 때까지는 내 집에서조차 담배를 몰래 숨어서 피워야 했는데, 그게 한심하게도 느껴지고 구질구질하게도 느껴졌다.

새해 들어 담뱃값이 엄청나게 올랐지만 외국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그리 비싼 건 아니다. 가격정책은 분명 효과가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일시적일 것이다. 가격에 대한 내성이 생긴 후에는 금연과 흡연이 나뉘는 게 아니라 돈 없는 사람과 돈 있는 사람으로 나뉘게 되는 결과도 생길 것이다. 청소년들에 대한 우려의 이야기도 나온다. 청소년 폭력의 중심에 너무나 비싸진 담배가 자리 잡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어떻든 담뱃값이 올랐으니 세수도 많아졌다. 담뱃값이 오른 것에 대해서는 떠들썩하게 이야기가 많은데,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모르겠다. 청소년들에게 많이 쓰이기를 바란다. 담배는 안 배우는 게 최고고, 배운 후에는 그것이 내성으로 굳어지지 않는 게 좋고, 이것저것 다 떠나 담배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게 건강하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많으면 좋을 것이다. 기성세대가 된 후에는 다 불가능해지는 일들이다. 기성세대의 누군가에게는 내뿜는 담배 연기가 니코틴보다 더 독한 한숨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 한숨 같은 돈들로 미적미적 이미 배부른 자들의 배만 더 불리지 않기를 바란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흡연자들이여, 담배 끊어 복수하자는 말도 있다. 그러나 복수란 게 항상 너무 어렵다는 게 문제다. 대신에 눈이라도 똑바로 떠 그 한숨 같은 돈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똑똑히 두고 볼 일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