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래기 아니라 ‘십상시 서열 4~5위’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1.1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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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파문’ 중심 인물 음종환은 누구…친박 실세 의원 보좌관 거쳐 청와대 입성

‘김무성 대표 수첩’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친박(근혜)’과 ‘비박(근혜)’ 간 계파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고, 야권은 이를 계기로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특검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일이 야당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여권 내부, 그것도 일개 청와대 행정관의 입에서 촉발됐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때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던 이른바 ‘청와대 환관 권력’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윤회 문건 파동의 배후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 있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은 음종환 전 청와대 홍보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지난해 12월18일 저녁 모임에서 이 같은 문건 배후설을 얘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음 전 행정관은 이를 전면 부인했지만,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음 전 행정관, 3인방과 한 팀으로 봐야”

음 전 행정관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서 ‘십상시(十常侍)’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됐다. 십상시란 중국 한나라 영제 때 나이 어린 황제를 대신해 국정을 농단했던 10명의 환관(내시)들을 말한다. 그는 이미 지난 18대 대선 당시부터 십상시의 일원으로 불렸다.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내에서는 고 이춘상 전 보좌관을 포함한 ‘보좌진 4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외에 6~7명의 보좌진이 의원들을 넘어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6~7명의 보좌진 중 음 전 행정관이 핵심이고, 그래서 “십상시 서열 4~5위에 해당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음 전 행정관은 최근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가 세계일보에 고소장을 낼 때도 ‘비서관 3인방’과 함께 고소인 8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일부 의원이 인수위 고위 인사에게 읍소할 정도로 십상시의 권세가 대단했다”며 “그러나 친박 핵심 실세 ㄱ의원이 십상시를 지원하면서 모든 불평불만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한 중진 인사가 당시 박 후보에게 비서진들을 너무 가까이하지 말라는 건의를 했다가 오히려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음 전 행정관은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두 사람은 고려대 88학번 동기로,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정 비서관이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배울 때 음 전 행정관을 만나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최진웅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실 선임행정관까지 같은 학교 동기다. 이들은 지난 17대 국회부터 이른바 ‘팔닭회(88학번 닭띠 모임)’를 결성해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음 전 행정관은 정 비서관 외에도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도 끈끈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음 전 행정관을 고 이춘상 보좌관을 대신해 ‘신(新)4인방’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여권 관계자 ㄱ씨는 “음 전 행정관에 대한 3인방의 신뢰는 대단하다. 음 전 행정관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최일선에 있었던 사람이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3인방이 음 전 행정관과 상의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음 전 행정관은 3인방과 한 팀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음 전 행정관이 이처럼 두터운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치권에서 보여준 탁월한 ‘정보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음 전 행정관은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정기관은 물론 대기업 정보관(IO)들과 폭넓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도 음 전 행정관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런 정보망을 통해 야권의 비리 발굴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고 한다. ㄱ씨는 “2007년 대선 때부터 음 전 행정관은 캠프 내의 주요 결정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정보가 빠르고,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뉴시스
“친박 의원들과 동지적 관계 맺어와”

음 전 행정관에 대한 친박 실세들의 신망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음 전 행정관은 홍문종 의원의 보좌관을 시작으로 당시 김재경·권영세·김회선·이정현 의원의 보좌관을 거쳤다. 이 중 친박 핵심으로 통하는 홍문종·이정현 의원, 권영세 주중 대사와는 아직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ㄱ씨는 “음 전 행정관은 권영세 주중 대사의 의원 시절에 보좌관을 지냈는데, 이때 권영세 의원실의 모든 작품이 음 전 행정관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박 실세 의원들과도 상하 관계가 아닌 동지적 관계를 맺어왔다고 보면 된다”며 “음 전 행정관은 예전부터 ‘청와대에 들어갈 것이다. 민정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하곤 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 출범 후 이정현 의원의 부탁으로 이 의원과 함께 정무·홍보실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음 전 행정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 역시 ‘문고리 권력’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이너서클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음 전 행정관은 ‘인(人)의 장막’ 그 자체라는 얘기도 들려왔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 ㄴ씨는 “대선 캠프 시절 음 전 행정관은 박근혜 후보 보좌에 올인하면서 정작 자신이 모시는 의원과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다”며 “그는 좋게 말하면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당내 중진급 인사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를 곱게 보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음 전 행정관이 호가호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대목이다”고 밝혔다.

환관 권력의 가장 큰 문제는 ‘책임 없는 권력’이라는 점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폐쇄적인 비선 정치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3인방을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구중궁궐로 변해버린 청와대에 국민들의 쇄신 요구가 얼마나 전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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