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왕비서관 ‘4인방’ 있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1.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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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민정비서관 영향력 놓고 당·청 안팎에서 시끌

청와대 안의 수많은 자리 중에서 유독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민정수석이다.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고위 공직자들의 비위를 감시할 뿐만 아니라, 국민 여론과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고 청와대에 들어오는 다양한 민원까지 해결하는 자리여서 그렇다. 사실상 대통령 직속의 사정·정보기관 수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4대 국가 사정기관(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 및 정보기관(국정원)과도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우 비서관 포함된 ‘신7인회’란 말 돌아

그러나 지난해 6월께 출범한 청와대 3기 참모진은 달랐다. 홍경식 전 민정수석의 뒤를 이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을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대신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우병우 민정비서관을 주목해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청와대발(發) 뉴스는 우 비서관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우 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간 지난해 5월부터 민정수석실에 파견됐던 검찰·경찰·국정원 요원들의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단행됐다.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40명 안팎의 요원 중 30여 명이 교체됐다고 한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우 비서관이라는 것이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요원 교체의) 명분은 청와대 문건 유출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과한 측면이 있었다. 우 비서관이 자신이 신임하는 새로운 인물들을 채워넣기 위해 (문건 유출의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을 앞세워 물갈이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고 언급했다. 

우병우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이 있는 ‘박연차 게이트’ 주임검사로 발탁 당시부터 논란이 일었다. ⓒ 연합뉴스
민정수석실 내부의 업무 분장도 달라졌다. 민정수석실에는 민정·공직기강·법무·민원 비서관이 있다. 그런데 우 비서관 임명 후 민정비서관실의 역할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다고 한다. 당초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맡았던 인사 검증과 공직자 감찰 등의 업무가 민정비서관실로 이관된 것이다. 정윤회 문건 유출과 관련해 공무상 비밀 누설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속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원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맡았던) 공직윤리지원관실 지휘 업무와 관련해 3급 이상은 민정비서관이 맡고, 4급 이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이 맡는 이상한 구조로 바뀌었다”며 “인사 검증도 공직기강 쪽에서 대충 기초 자료를 만들면 최종적으로 민정비서관실이 판단하는 식으로 바뀐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다.

민정비서관실의 권한이 커지면서 우 비서관을 새로운 권력으로 지목하는 ‘신(新)7인회’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필두로 황교안 법무부장관, 김영한 전 민정수석,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 김학준 민원비서관, 김종필 법무비서관 등과 함께 우 비서관이 여기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 비서관의 파워는 신7인회를 넘어선 듯 보인다. 지난 1월9일 김기춘 실장의 국회 출석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 사태 배경에 우 비서관과의 갈등설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수석은 정윤회 파동 처리 과정에서 우 비서관에 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우 비서관이 김 전 수석을 건너뛰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보를 했다는 청와대 내부 전언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우 비서관이 민정수석실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민정수석실에서 검찰 수사관 2~3명을 차출해갔는데, 우 비서관과 같은 TK(대구·경북) 출신들이다. 김 전 수석이 사의를 표한 마당에 이 인사를 누가 했겠는가”라며 “우 비서관에게 힘이 집중되면서 여러 가지 잡음도 생겨나고 있다. 우 비서관이 사시 출신의 경찰 고위직 ㄱ씨와 크게 충돌했다고 한다. 사시 기수로는 ㄱ씨가 우 비서관의 선배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갈등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발탁 배경에 ‘비서관 3인방’ 이름 오르내려

우병우 비서관은 발탁 당시부터 뒷말이 무성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박연차 게이트’ 사건의 주임검사였다. 우 비서관은 당시 대검 중수부 중수1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검찰에 출두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고,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 직후인 2009년 5월23일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지난해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우 비서관이 내정됐다. 야당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우 비서관 임명을 강행했다. “김기춘 실장이 ‘간택’했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김 실장과 우 비서관 사이에는 별다른 인연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우 비서관 발탁 배경으로 ‘비서관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의 이름이 더 자주 오르내린다. 한 검찰 관계자는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당초 민정비서관을 강력히 원했던 것으로 안다. 조 전 비서관이 3인방과 다툼을 벌이다 정윤회 문건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다. 3인방이 (조 전 비서관 사퇴 후) 청와대 민정 라인 인사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민정비서관은 민정수석실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리다. 우 비서관 임명 후 박지만 EG 회장 등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관리 업무가 민정비서관실로 넘어간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우 비서관의 배경으로 고 이상달 전 정강중기 대표가 거론되기도 한다. 우 비서관은 기흥컨트리클럽 대주주였던 이 전 대표의 둘째 사위다. 이 전 대표는 생전에 정·관계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치러진 6주기 추모식에는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 전 대표가 연루된 1993년 기흥컨트리클럽 비리 사건 당시 담당 부장검사(서울지검 특수3부)였다.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야당 의원은 “김기춘 실장이나 황교안 장관의 교체가 예상되면서 향후 우 비서관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 비서관은 이번 정윤회 파동에서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경찰관을 회유하려고 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민정비서관실은 더 이상 논란의 중심에 서지 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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