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대상 1850만명, 전 국민의 공직자화?
  • 엄민우 기자·이호재 인턴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1.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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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범위 놓고 논란…김영란 전 대법관도 “신중” 경고

“고위 공직자들이 퇴직 후 연관 단체에 재취업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 입법으로 ‘김영란법’을 제출하고 통과시키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19일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정부가 제출한 ‘김영란법’ 통과를 국회에 요청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국회에 김영란법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해왔다. 김영란법은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안이다. J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1월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70.6%가 이 법안에 찬성한다고 밝히는 등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1월 국회’에서 이 법안을 처리하지 않고, ‘2월 국회’로 미뤘다.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법안 처리에 대해 대통령은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고 있고, 국회는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얼핏 보면 ‘국회가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청와대의 요구를 뭉개고 있다’고 비칠 법도 하다. 하지만 김영란법엔 여론을 그대로 따르기 힘든 복잡한 함수관계가 있다. 정작 이 법안을 최초 제안한 김영란 전 대법관조차 법안 처리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박영란법’으로 변질되었다”며 꼼꼼히 잘 따져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박영란법이란 ‘박근혜+김영란’의 합성어로 ‘정부가 제출한 김영란법’을 가리킨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 시사저널 사진자료
“좀 더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야”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관(官)피아’ 논란이 일면서 급부상한 김영란법은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서라도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형사 처벌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거치며 공직자뿐 아니라 민간 영역까지 대상이 확대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법이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것은 2011년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김영란법을 놓고 벌어지는 최근 논란에 대해 김영란 전 대법관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1월14일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있는 그를 만나 해당 논란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부쩍 고조된 관심 탓에 언론과의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김 교수는 해당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했다. 김 교수는 “내 이름이 붙은 법이라고 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건 옳지 않다”며 직접적 판단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해당 법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국민이 관심을 갖고 신중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건강한 일”이라며 “통과 시기가 미뤄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법은 우리 문화 자체를 바꾸는 법이다. 우리가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행동 패턴에 큰 변화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야 한다. 애초 2년의 숙려기간을 둬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말했다.

김 교수조차 “충분히 검토해서 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당 법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는 대체적으로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다. 여야는 지난 1월15일 당 대표 및 원내대표 회동을 열고 김영란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우선 처리키로 했지만, 법리상 문제에 대해 역시 2월 국회에서 충분히 검토할 계획이다.

김영란법과 관련한 논쟁은 겉으론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법의 적용 대상을 어디까지 잡아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영란 당시 위원장은 공직자만을 주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국회에서 정무위원회의 거듭된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면서 그 대상이 사립학교 교직원과 대학병원 종사자, 모든 언론사 종사자 등 민간 영역으로 확대됐다. 이때부터 김영란법에 대한 논란이 가열됐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법적 완결성 등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39쪽 상자 기사 참조).

그렇다면 해당 법 적용 대상에는 어디까지 포함되는 걸까. 현재로선 공직자뿐 아니라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 종사자의 민법상 가족 범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다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민법상 가족이란 배우자 및 직계혈족, 형제자매를 뜻한다. 뿐만 아니라 민법상 가족이 아니라 하더라도 생계를 같이한다면 직계혈족 배우자 및 배우자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까지 포함된다. 쉽게 말하면 대상자인 ‘나’를 기준으로 아버지와 아들 및 손자, 부인과 형제자매는 무조건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헌법기관 2만5333명, 국가공무원 82만2496명, 지방공무원 35만638명, 공직 유관 기관 35만명, 사립학교 및 유치원 종사자 21만1150명, 언론사 직원 9만여 명(추정) 등 총 185만명과 여기에 민법상 가족 개념을 10명으로 적용해 곱하면 1850만명 선이 된다. 이는 국민 10명당 약 3~4명이 포함되는 셈이다.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도 해당 법 적용 대상자가 상당할 것이란 얘기다.

국민 최대 1850만명까지 적용될 수 있어

만약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김영란법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지 가상의 한 인물을 통해 유추해봤다.  5년 차 일간지 기자인 김 아무개씨는 기업 관련 이슈를 다루는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조그마한 개인 사업을 한다. 그런데 사업 과정에서 A기업으로부터 사업적 동반 관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10만원 상당의 펜을 선물로 받았다. 이럴 경우 김 기자의 부친은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기자의 가족이 100만원 이하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 관련성과 관계없이 최대 5배 이하 과태료를 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리적 문제는 구체적으로 따져봐야겠지만 지금 논의되는 법 자체만 보면 이런 경우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렇게 될 경우 김 기자의 부친은 아들이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데 불편을 겪어야 할 상황이다. 그의 아들이 기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오히려 사업 관계에 있는 다른 회사들이 접촉을 꺼려해 사업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공직과는 전혀 관계없는 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사립학교 선생님을 자녀나 부모로 둔 사람도 마찬가지다. 만약 자신의 아버지나 형제, 혹은 아들 중 교사나 언론인 등이 있다면 업무 관련성과 관계없이 누군가를 만나거나 선물을 받는 것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법학자들은 김영란법이 충분한 법리적 고민 없이 통과될 경우 위헌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단순히 ‘김영란법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식 국민 여론에 기대 감정적으로 법을 만들었다간 위헌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일단 만들어보고 고치자’는 주장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국회 법사위 소속의 야당 법률 전문가는 “정책 법안이면 운용하며 고치는 것이 말이 되지만, 형사법을 운용해보고 고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1월12일 ‘김영란법’ 논의를 위해 모인 여야 원내 지도부 및 법사위 간사. ⓒ 연합뉴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사립학교 교직원 및 언론인들까지 법을 적용하는 것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이들 가족이 해당 법에 걸려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되면 위헌 판결이 나온다고 본다. 이런 식이라면 국민들이 주식 투자를 다 하는 상황에서 상장 기업 종사자들도 다 넣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해당 법에 민간을 포함시키면 포함되는 민간과 포함되지 않는 민간 간의 형평성도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김영란법을 사립학교나 언론계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과잉 입법 소지가 있어 위헌 청구소송을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좌제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공직자 아버지를 둔 아들이 친구에게 밥을 못 얻어먹을 수가 있다. 실제로 대가 없이 모르고 받을 수도 있다”고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헌법학 교수는 “2006년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사립학교는 국가와 계약 관계일 뿐이다. 그런데 사립학교에 대해서까지 김영란법을 확대 적용한다면 이는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불명확성에 대한 검토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고의성 없이 한 행동이 법에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 알 수 없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상태로 법이 만들어져선 안 된다. 법사위가 원래 이런 문제를 살펴보는 곳인 만큼 그 명확성에 대해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국가기관 종사자 즉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김영란법에 어떻게 사립학교 종사자 및 언론인들까지 포함되게 된 것일까. 시사저널은 해당 논의 과정이 담긴 제324회(2014년 4월25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과 제325회(2014년 5월24일) 정무위원회 회의록의 내용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회의 때부터 해당 문제에 대해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본격적으로 해당 문제가 논의된 것은 324회 법안심사소위 때부터였다. 회의록에 따르면, 처음엔 정무위 소속 의원들도 당시 정부 측 안에 사립학교 및 언론사가 포함된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해했다. 당시 회의 때 국민권익위원회가 들고나온 정부 안에는 그 대상 기관으로 KBS·EBS 등 공영방송사가 포함됐다. 이에 대해 참석한 의원들이 “특정 언론사들을 굳이 포함시킨 문제의식은 무엇이냐”며 이유를 묻자 “공직 유관 단체 범위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당시 참석한 권익위 측 인사가 답변했다.

당시 참석한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포함되지 않은 언론사에 대해 “MBC라든지 SBS 같은 언론사라든지 사립학교 같은 문제는 공적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의원들이) 논의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발언했고, 이에 야당 소속 ㄱ의원은 “지금 권익위가 굉장히 위험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ㄱ의원은 이어 “이런 식으로 하면 권익위가 그냥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일관된 원칙을 갖고 답변하지 않으면 입법 문제와는 다른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권익위 측은 “이번 검토 과정에서 이야기가 나와서 말한 것일 뿐, 당장 넣겠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325회 법안심사소위가 열렸다. 다음은 당시 회의에서 오갔던 내용 일부를 그대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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