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보단 만든다고 불통이 뻥 뚫리나
  • 박명호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1.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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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인식 안 바뀌면 소용없어…특보단은 보조적 수단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청와대와 청와대 밖의 인식 차이만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대통령은 회견에서 논란의 대상이었던 ‘세 비서관’에 대한 자신의 신임을 재확인했다.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현안이 해결된 뒤 고민할 문제”라고 언급해 ‘시한부 유임’으로 시중에서 해석되었다. 중국 전국시대 후기의 제자백가 논문집 관자에서 “민심을 따르면 정치가 잘되고 민심을 거스르면 정치는 실패한다”고 했다는데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박 대통령이 모두발언 말미에 앞으로 소통 강화를 다짐하고 “청와대 조직을 개편하겠다”고 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박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에 국정 동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대통령 특보단 운영과 청와대 조직 개편을 하겠다”며 “그러면 자연히 인사 이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조직 개편과 특보단 설치 운영은 소통 부족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왔던 대통령이 내놓은 유일한 대안이다. 2월쯤 정무·언론·경제·사회 특보가 신설될 듯 보이고, 벌써 누가 적임자라는 등의 소리까지 나돈다고 한다. 특히 대통령이 “국회나 당·청 간에도 좀 더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정책도 협의해나가는 그런 구도를 만들어”라고 언급해 정무특보의 역할과 기능에 관심이 쏠린다. 또한 “청와대에서 여러 가지로 뭘 알리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조직 개편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여 홍보특보도 중요해 보인다. 소통과 관련해 보면 정무와 홍보가 핵심이니 대통령의 인식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특보단, 또 하나의 비선 논란 증폭 우려도

청와대 특보단의 원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 특보단의 전형이며 모범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10인 내외의 특보단을 운영했다. 박정희 특보단은 당시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고 권위 있는 철학자와 국제정치학자 등으로 구성됐다. 이분들은 물론 청와대 특보 제의에 당장 응하지 않았고 비서실장이 삼고초려를 했다고 한다. 당시 특보단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이 운용했던 비공식 자문교수단에도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다수 참여했다. 왜 박정희 특보단이 성공할 수 있었고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대통령이 스스로 듣기 거북한 말을 하는 사람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권의 특보단은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한다. 특보단의 대부분은 여당과 청와대의 고위직 출신들이 차지했다. 위인설관(爲人設官)이었던 것이다.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을 이미 역임한 사람들로 특보단이 구성돼 당시 의사결정 집행 조직과의 마찰이 불가피했다. 청와대 특보단은 대통령 직속의 비공식 조직이다. 이렇다 보니 특보단 활동은 비공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선 논란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특보단은 옥상옥(屋上屋)의 조직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 특보단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 과거 사례를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최근의 특보단은 정권 위기 또는 권력 누수 등에 대처하기 위해 설치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특보단의 설치 운영이 계획적이었다기보다는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설치되었음을 의미한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도 촛불시위가 취임 4개월 만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민심 수습 차원에서 국민통합특보와 언론문화특보를 설치했다. 이러한 특보단 설치는 정부와 청와대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 말대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연습하는 자리가 아니듯 대통령도 연습하는 자리가 아닌데, 그만큼 준비가 덜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부분이다.

일부에서는 “특보단 구성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특보단이 대통령의 소통 강화 노력에 도움이 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1월12일 청와대에서 신년 구상 발표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악마의 대변자’ 역할 해야

첫째, 특보단의 성공은 그 구성과 운용에 달려 있다. 특보단을 구성하는 것은 여론 청취와 민심 파악이 주 목적이다. 기존의 공식 시스템으로는 대통령이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여권 내 야당, 또는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 역할이다. 따라서 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다윈은 “과학에서의 공적(功績)은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설득한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처칠은 자신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아내가 나와 결혼하도록 설득한 능력”이라고 했다. 대통령 특보는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정도의 전문성과 품위 그리고 권위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이를 위해 특보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레드팀(red team)을 운용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때 특보팀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물론 반대의 입장에서까지 볼 수 있고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의 직언과 조언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야지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셋째, 특보단의 성공은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인식 전환에 달려 있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정치를 몰라도 당선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를 운영하려면 대통령은 정치를 알아야 한다.” 이때 정부는 작은 의미의 행정부를 의미하는 정부가 아니다. 정당과 국회 그리고 사법부까지 포함한 넓은 의미의 정부다. 따라서 정치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전환과 정치력 발휘가 중요하다. 나아가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생각에 대해 관대해야 좀 더 넓은 지평을 볼 수 있다. “주변의 너무 많은 동의는 대화를 죽이기” 때문이다.

넷째, 대통령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과 만나야 하고 비공개 식사 정치도 해야 한다. 기자회견도 더 자주해야 한다. “웅변은 남자가 여자보다 잘하지만 설득력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강하다”고도 한다.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대통령의 진정성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진정성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이게 문제다. 내용이 좋아도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다. 진정성을 국민들이 공감하도록 하려면 대통령이 그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의 말을 듣고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공감(共感)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그게 대통령의 역할이다. 따라서 앞으로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다. 특보단은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다. 집권 3년 차 대통령의 변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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