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6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60)이 일본 롯데상사 대표이사직과 롯데상사·롯데아이스 이사직에서 해임됐다. 1월8일엔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에서도 신 전 부회장을 전격 해임하면서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 내에서 맡고 있던 모든 임원직을 잃었다. ‘자진 사퇴’가 아닌 ‘해임’은 사실상 일본 롯데 경영에서 완전히 퇴출된 것을 의미한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그룹 경영진에서 추방됐다”며 “향후 경영 체제 위상이 불투명해졌다는 견해가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신동주, 한국=신동빈’이라는 롯데가의 암묵적 규칙이 깨졌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2)의 두 아들 중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59)은 각각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그룹을 맡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국내에서 생존해 있는 몇 안 되는 창업 1세대 중 한 명이다. 그가 첫 번째 부인 노순화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72)이다. 노씨의 요절 이후 결혼한 두 번째 부인 다케모리 하쓰코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이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집안에서는 ‘히로유키’와 ‘아키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1988년 합류했고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거쳐 1997년 2월 한국 롯데그룹 부회장이 됐다. 한국·일본 이중 국적을 갖고 있던 신 회장은 한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본 국적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재계에서 ‘순수하고 학자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아오야마가쿠인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78년 미쓰비시상사에 입사했다. 1987년 롯데상사에 입사했고 2001년 롯데상사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일본 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 나면서 만난 조은주씨(50)와 1992년 결혼했고, 2009년 롯데홀딩스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1년 일본 롯데의 핵심 회사인 롯데상사 대표이사 겸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일본 롯데의 후계자’로 인정받았다.
“신 전 부회장, 신임 잃은 계기 있을 것”
이번 해임을 둘러싸고 추측이 난무했다. 크게 ‘대립설’과 ‘실적설’로 나뉘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신동주 전 부회장과 일본 전문경영인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간에 대립이 있었고, 신 총괄회장이 그쪽 (전문경영인) 손을 들어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은 1943년생으로 와세다 대학 상학부를 졸업했다. 일본 롯데의 주거래 은행인 스미토모 은행(현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에 입사한 후 스미토모 은행 전무, 로열호텔 사장과 회장을 거쳐 2009년 롯데홀딩스 사장으로 취임했다. 최근 3~4년간 경영 방식 등을 두고 신 전 부회장과 대립 구도를 계속 보여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그룹 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룹 측에서는 이번 해임 배경이 ‘실적’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일본 롯데의 매출액이 5조7000억원 정도로 한국 롯데의 실적(83조원)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 신 전 부회장의 ‘문책 인사’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기업 분석 업체 재벌닷컴이 1월13일 공개한 바에 따르면, 일본 롯데홀딩스는 2013 회계연도(3월 결산 기준)에 전년(4조2872억원) 대비 34.3% 증가한 5조757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 롯데그룹 성장률(11%)의 3배다. 지주회사의 주요 수입원이 계열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인 것을 볼 때 일본 롯데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 수치는 일본 회사의 한국 지분까지 합산해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순수한 일본 롯데의 성장률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에서는 “신씨 일가와 관련된 얘기는 재계에서 듣기 어렵다”면서도 “실적을 떠나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신임을 잃은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일시적 문책 인사가 아니라 (신 전 부회장이 롯데 경영에서) 완전히 아웃된 것으로 안다”며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이나 지분 소유 부분에서 신 총괄회장과 대립이 생겼고, 신 총괄회장이 둘째 아들(신동빈 회장)에게 ‘밀어주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경영인과의 대립설이 주로 보도됐던 일본에서도 불화설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3년부터 두 형제가 경쟁적으로 벌인 한국 롯데 계열사 지분 매입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은 2013년 5월 롯데케미칼 주식 6만2200주를 매입해 보유 지분을 0.3% 늘렸고, 이후 6월에 롯데제과와 롯데칠성, 9월에는 롯데손해보험 주식을 사들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도 지분 경쟁에 나섰다. 2013년 8월 롯데제과 지분을 취득한 후 지난해 9월까지 롯데푸드를 비롯한 계열사 주식을 계속 매입했다. 일본의 재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이 2013년 후반부터 한국 롯데 계열사 주식을 사들인 것을 신 총괄회장이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두 형제의 균형 경영이 이뤄지던 상황에서 형인 신 전 부회장이 욕심을 부렸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롯데쇼핑 지분은 신 전 부회장이 13.45%, 신 회장이 13.46%다. 롯데제과 지분 차이도 1.38%포인트에 불과하고, 롯데푸드 지분율은 1.96%로 같다. 롯데상사·롯데칠성 등 롯데 계열사 지분 차가 미미한 상황에서 신 전 부회장의 해임 자체를 ‘후계 구도에서 밀린 것’이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견해도 있다. 해임 이후인 1월11일에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신 총괄회장이 두 아들을 포함한 가족들과 신년 모임을 갖는 등 만남을 문제 없이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후계 구도와 관련 없는 단순한 인사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큰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 롯데 대신 매출 실적이 좋은 국내 롯데 계열사로 활동 무대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