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 역발상 투자 기회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5.01.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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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파생결합증권(DLS) 등에 젊은 직장인 가입 늘어

지난해 여름만 해도 기름값에 주목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었다. 국제 원유가격은 3년 넘게 배럴당 10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상황이 바뀐 건 그 이후부터다. 중동산 두바이유,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북해산 브렌트유 가리지 않고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지금은 배럴당 40달러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3~4월 이후 최저 가격이다.

저유가 시기를 투자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기름값이 더는 하락하기 어려운 만큼 원유 파생결합증권(DLS) 등 관련 상품이 저금리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거액 자산가보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려는 직장인들이 이 같은 ‘역발상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 일러스트 최길수
“지금이 바닥” vs “더 떨어진다”

요즘처럼 원유 값이 가파르게 떨어진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미국이 종전 대비 두 배 정도 원유 생산량을 늘린 데다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증산에 나선 게 결정적인 원인이다. 1985~86년 약 5개월 만에 원유 가격이 60% 넘게 하락한 적이 있지만 30년 전의 얘기다.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브렌트유의 올해 평균 가격 전망치를 종전 배럴당 80달러에서 42달러로 대폭 낮췄다. 미국 원유 재고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과 함께 달러화 강세가 점쳐진다는 이유에서다.

유가는 세계 경제 및 정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자재다. 1978년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세계 경제가 빈사 상태에 빠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반대로 1980년대 들어 기름값이 바닥을 기자 국가 수익의 약 70%를 원유에 의존했던 소련은 연방이 해체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원유 DLS 투자자들은 울상이다. 줄줄이 손실을 기록하고 있어서다. 올 들어 손실이 발생한 원유 DLS의 발행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원유 DLS가 집중 발행된 건 2012년께다. 유가가 배럴당 90~110달러를 오르내릴 때다. 만기 때 기름값이 발행 당시에 비해 50% 이상 떨어지면 그만큼 손실이 확정되는 구조다. 중도 해지하더라도 손실을 피할 수 없다. 만기 전까지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반등하면 원금을 지킬 수 있지만 상당수 원유 DLS의 만기는 올 2월부터 속속 돌아올 예정이다.

기름값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관련 업계에서도 논쟁이 한창이다. 지금은 좀 더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어 유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탈(脫)석유화 쪽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만큼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 역시 “수요가 회복돼 유가가 바닥을 다지고 오르더라도 배럴당 100달러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반면 김종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WTI 등의 거래 가격은 사우디아라비아·미국·캐나다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 이미 생산 원가 이하로 진입했다”며 “향후 완만하게 상승하면서 연중 배럴당 70달러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름값이 단기간에 가파르게 하락하자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충분히 떨어진 만큼 오를 일만 남았다는 판단이다.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거액 자산가보다 젊은 직장인들 위주로 원유 관련 상품 가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역발상 원유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

대표적인 상품은 원유 분할 매수 랩(wrap)이다. 원유 값이 떨어질 때마다 증권사 전문가들이 일정액씩 분할해 매수해주는 게 특징이다. 해외의 원유 선물을 직접 매수하기보다 국내외에 상장된 원유 선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이는 방식이다. 예컨대 원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45~50달러 이상이면 전체 자산의 절반을 원유 선물 ETF에 투자하고, 이후 배럴당 2.5~5달러 떨어질 때마다 일정 비율로 추가 매수하는 것이다. 수수료는 위탁 금액의 연 1~2%다. 6개월만 투자하면 수수료를 절반만 낸다. 별도 중도 해지 수수료는 없다. 최저 가입액이 1000만원 정도다.

일부 분할 매수 랩은 안전장치도 갖췄다. 5~10%의 수익을 달성하면 자동으로 ETF를 매도해 수익을 지킬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만 해외 원유 선물 ETF에 투자하는 상품의 경우 외환 노출형이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원자재와 달러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원유 가격이 오르면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수익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원유 선물 ETF에 직접 투자하는 사람도 급증세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일평균 1만주 안팎이던 ‘타이거 원유 선물 ETF’ 거래량은 1월 들어 150만주가량으로 폭증했다. 원유 선물 ETF를 직접 분할 매수하면 분할 매수 랩을 살 때에 비해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ETF 수수료는 0.7% 정도다.

해외 원유 관련 종목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레버리지 원유 상장지수증권(ETN)은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거래하는 ‘톱10’ 종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예컨대 S&P원유지수의 등락을 3배만큼 추종하는 ‘벨로시티셰어스 3X 롱 원유ETN’엔 저가 매수자가 크게 늘어났다. 이 주식의 지난 3개월 수익률이 마이너스 90%에 달하는 만큼 추가 하락하지 않을 것이란 쪽에 ‘베팅’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지난해 하반기 뚝 끊기다시피 했던 원유 DLS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쿠폰 수익률은 연 6~8%로, 시중은행 예금보다 3~4배 높다. 원금이 보장되는 원유 DLB(파생결합사채)도 인기다. 만기 때 유가 상승률이 50% 이하이면 최고 연 25%까지 수익을 준다. 김희주 KDB대우증권 이사는 “유가가 단기 급락한 만큼 지금 시점에서 반등을 노리고 일부 자금을 투자할 만하다”면서도 “원유는 가격 변동성이 큰 고위험 상품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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