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로 여당 군기 잡고, ‘禹’로 야당 찔러본다
  • 이승욱·조해수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1.2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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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총리·우병우 민정수석 카드로 여권 내 권력 지각변동

‘13월의 세금 폭탄’ 논란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월21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장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작심한 듯 연말정산 환급금 축소 논란에 대해 정부의 책임론을 들고나온 것이다. 김 대표가 정부를 향해 비판을 쏟아내자,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이정현 최고위원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는 “부작용은 시정해야 하지만 왜 (정부가) 당시 세법에 손을 댔는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 최고위원이 말하는 부분에 대해 이해가 잘 안 된다”며 핀잔 조로 되받아쳤다.

이틀 뒤, 박 대통령이 집권 3년 차 개각과 청와대 개편을 단행했다. 이날 내각 및 청와대 인선의 주인공은 단연 이완구 총리 후보자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이 후보자의 총리 기용설은 지난 연말부터 꾸준히 정치권 안팎에서 거론돼왔다. 새해 들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 시기가 언제인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1월21일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청와대의 김무성 대표 견제 카드” 분석

박 대통령은 집권 3년 차를 맞으면서 국정 지지도 하락이라는 변곡점을 맞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책임총리제’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하지만 집권 초반부터 내각을 이끌어온 정홍원 총리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다른 총리 후보자들의 잇단 인사 난맥상 끝에 자의 반 타의 반 총리 자리를 이어온 그에게는 ‘대리’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국정 운영 스타일을 문제 삼기도 했지만, 존재감 없는 총리의 최대 피해자는 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당·정·청’ 3각 구도에서 김무성 당 대표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상대하기엔 버거워 보였다. 오히려 최경환 부총리가 정부를 대표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왕실장’으로 버티던 김 실장마저 최근의 ‘항명 파동’으로 흠집이 나면서 사퇴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 대표의 수첩 공개 파문으로 당·청 관계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예상치 못했던 총리 교체와 이완구 후보자의 기용은 청와대의 여당 견제용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 후보자는 원내대표로서 김 대표와 더불어 새누리당을 이끌어왔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갈등설이 계속 불거지는 가운데 여권의 권력 축이 ‘박-김 구도’로 가는 데 대한 청와대의 못마땅함도 이번 인사에 내포돼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상 자신이 직접 여당 대표와 상대하기보다는 총리나 비서실장을 내세울 것이란 점에서 ‘이완구 카드’는 김 대표 견제용으로 유용하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갈등설이 계속 불거지는 가운데 여권의 권력 축이 ‘박근혜-김무성 구도’로 가는 데 대한 청와대의 못마땅함도 이번 인사에 내포돼 있다는 분석이다.


‘친노’ 반발 빤히 예상…문재인 움직임 주목

이 후보자는 당·정을 넘나들면서 국정 전반에 폭넓은 이해와 경험을 갖췄다. 원내대표(과거 원내총무 포함)를 여러 차례 지내면서 여야를 아우를 수 있는 친화력을 가졌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 후보자는 행정고시(15회)를 거쳐 공직에 몸담은 후 경제(경제기획원 사무관)와 치안(충남지방경찰청장)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충남도지사에 당선되기도 했다. 친박계 한 핵심 인사는 “청와대로서는 가장 엑셀런트(exellent)한 카드를 꺼내들었다”며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과거 총리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장 김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당의 대권 주자로 부각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하나의 관심거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유임이다. 하지만 ‘잠정적’ 유임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이 “(비서실장 교체는) 당면 현안 해결 후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내각과 청와대 비서관 등의 후속 인사가 마무리되면, 김 실장도 청와대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이번 인사의 핵심은 우병우 신임 민정수석비서관 임명에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우 수석은 지난해 5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다 1월9일 김 실장의 국회 출석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사퇴한 김영한 전 수석의 후임으로 8개월여 만에 전격 승진했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우 수석에 대해 “대검 수사기획관 등을 역임한 수사 분야 전문가로서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해) 공직 기강, 비리 척결 등 현안에 밝고 업무 추진력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우 수석은 야당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다. 우 수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된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우 수석은 당시 대검 중수1과장으로 검찰에 출두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고, 노 전 대통령은 조사 직후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우 수석은 이 일과 관련해 참여연대가 선정한 ‘2013년 검찰권을 오·남용하거나 검찰 수사를 정치화해 불명예를 안긴 MB(이명박) 정치검사 41명’ 중 한 명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우병우 신임 민정수석비서관 ⓒ 연합뉴스

우 수석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큰 변화를 맞았다. 연수원 19기 가운데 선두 주자였던 그는 이후 검사장 승진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시자 지청장을 끝으로 미련 없이 옷을 벗었다. 그런 그가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공직에 복귀한 것이 지난해 5월로 그 시점도 논란을 불러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민정수석 승진 시점 또한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를 선출하는 2·8 전당대회를 2주 앞둔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친노(무현)’ 세력의 좌장으로 불리는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를 모를 청와대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우병우 민정수석과 문재인 야당 대표의 갈등으로 정국이 험악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국회 법사위원회 소속 한 야당 의원은 “우 수석 임명은 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미 (그가) 민정비서관으로 임명될 당시에도 반대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우 수석 임명은 청와대가 야당을 무시한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 계파 청산을 공약한 문 후보 측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지금 우 수석 임명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당  대표 선거가 끝나면 (문 후보가) 이기든 지든 친노가 (우 수석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노와의 악연이 아니라도 우 수석이 야권의 표적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우 수석은 정윤회 문건 파동 처리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특별감찰팀을 움직여 ‘조응천 7인회’를 지목한 것에도, 정윤회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경찰관을 회유하려고 했다는 의혹에도 우 수석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왕실장’으로 불리는 검찰 대선배인 김기춘 실장이 교체되면, 결국 김 실장이 했던 역할을 우 수석이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비서관 3인방’도 우 수석과 교감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어떤 인물이 새 비서실장으로 올지 모르지만, 청와대에 ‘왕수석’이 등장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명재 깜짝 카드 ‘신의 한 수’ 될까

“글쎄, 모처럼 훌륭한 분을 영입하긴 했지만 특보라는 게 애매모호한 자리라 무슨 일을 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것도 결국 ‘왕(王)실장’ 작품 아니겠나.” 지난 10년 진보 정권(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청와대 민정특보로 내정된 것을 놓고 이렇게 평했다. “놀랍긴 하지만 역할을 기대하긴 힘들다”는 반응이다.
이번 1·23 개각 및 청와대 개편 인사에서 가장 의외로 여겨지는 부분은 이 전 총장이 민정특보로 내정된 점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검찰총장을 지낸 그는 역대 정권마다 주요 영입 인사 후보로 거론돼왔지만, 좀처럼 나서지 않을 정도로 관직 자체에 욕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도 철저히 사양해왔다. 그런 그가 민정특보를 받아들인 배경을 놓고 서초동 및 여의도 인사들은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정치권 및 검찰 내부에서는 이 전 총장 기용을 우병우 민정수석 내정과 연결 지어 바라보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검사였던 우 비서관을 민정수석으로 내정한 것에 대한 야권의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전시 효과를 내기 위해 명망 있는 이 전 총장을 영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 총장은 검찰 내에서 역대 검찰총장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임기가 1년 남은 시점에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검찰 내에서 조사받던 피의자가 구타로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퇴했다. 한 전직 검찰 간부 출신은 “내가 여러 총장을 모셔봤지만, 총장으로 들어오실 때 달랑 가방 하나 들고 들어오셨다가 물러나실 때도 가방 하나 들고 나가신 분은 이명재 전 총장 한 명뿐이었다”며 그의 담백한 인품을 치켜세웠다. ‘이명재 특보’ 카드가 과연 박근혜정부에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까. 여권보다 야권에서 더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엄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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