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안 바뀌면 특보 100명이라도 소용없다”
  • 김현일│대기자 ()
  • 승인 2015.01.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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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손주환·이원종 등 전 청와대 고위직 출신들의 고언

박근혜 대통령은 ‘인적 쇄신’을 공언한 지 사흘 만인 1월23일 총리를 교체하고 특보단 신설, 비서실 기구 조정 등 청와대 직제 개편을 단행했다. 총리에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명됐고, 수석 3명과 함께 4명의 특보가 임명됐다. “당·정 관계와 국정 업무에 협업을 이루기 위해서”라며 각별하게 의미를 부여한 특보단의 민정특보는 이명재 전 검찰총장, 안보특보는 임종인 고려대 교수, 홍보특보는 신성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회문화특보는 김성우 SBS 기획본부장이다.

이번 인사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빠지기는 했지만 어차피 경질이 예고돼 있고, 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 인준 뒤 상당한 개각이 이어지는 만큼 1·23 개편은 규모나 내용 면에서 ‘대폭’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 대한 성난 민심을 자각한 흔적이 역력하다. 국가권력 농단의 표상처럼 비쳐졌던 문고리 ‘3인방’의 맏형 격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인사위원회에서 배제하고 2부속실장 안봉근을 뺀 것은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기용은 ‘끼리끼리’ 인사라는 저간의 비판을 다분히 의식한 대목.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인물이다. 전격 단행도 달라진 청와대를 말해준다. 늑장이 일쑤이던 그간의 인사 진행 속도에 비춰서다.

특보단 인사는 그런대로 후한 평가를 받는다. 면면이 ‘친박’ 울타리에 머무르던, 그렇고 그런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20일 청와대 국무회의에 앞서 국무위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찻잔을 든 모습은 이례적이다. 박 대통령은 사흘 뒤 총리 교체와 청와대 조직 개편·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 연합뉴스


대외 과시·장식용으로 전락할 소지 많아

이처럼 ‘부분’ 긍정론이 없지 않으나 전체적으로는 ‘유보적’이다. 좀 더 적확하게는 비관적 그림자가 드리운 전망이 주조다. 박 대통령의 기본 인식과 자세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한 탓이다. 곤두박질 치는 지지율에 놀라 ‘마지못해’한 것 아니냐는 불신이 아직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통령 스타일이 ‘진짜’ 바뀔 것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말이다. 국정 농단, 권력암투의 중심에 있던 ‘3인방’의 ‘돌려막기 조치’도 사례로 꼽힌다. 이재만·안봉근을 계속 ‘끼고 도는’ 모습은 변화의 한계를 웅변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엇갈리는 반응들은 대표적 친여 인사라고 할 박관용 전 국회의장, 손주환 전 공보처장관,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게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1·23 개편 직전 세 사람의 진단은 거의 일치했다. 강도만 약간 다를 뿐이었다.

“다 부질없다. 있는 장관·수석비서관들도 제대로 활용 못하면서….” “대통령 자신이 달라진다면 모를까….” 이게 특보단 신설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었다.

박 전 의장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앞장선 원로이고, 손 전 장관은 대선 당시 종북 세력의 집권이 걱정돼 난생처음 기표소에서 ‘기도’를 올린 뒤 투표했을 정도의 ‘친박(근혜)’ 인사다. 이런 정치 성향임에도 특보단 구성에 대한 견해는 “기대할 게 없다”다. “박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 한 아무짝에도 쓸데없다”는 것이다. ‘변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반문에 “박 대통령의 성격과 자세가 달라질 가능성이 거의 없을 듯싶다”라고 했다. 그 자신 김영삼(YS)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뒤 정치특보를 거치는 등의 다채로운 정·관계 경력을 갖고 있는 박 전 의장이나, 노태우 정부 때 정무수석으로 일해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손 전 장관 등의 질타이기에 보수 진영에는 더 무겁게 다가선다.

이랬던 손 전 장관은 1·23 발표 후 “집권 후 처음으로 잘한 인사다”라고 했다. “세종로 1번지(청와대)가 더 달라지는지는 지켜봐야겠으나…”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점수를 줬다. 박관용 전 의장도 “뭔가 소통하고 협력을 구하려는 노력은 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스타일 자체가 달라져야 하는데 그게…”라는 말로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원종 전 수석은 시종 단호했다. “사람을 썼으면 믿고 맡겨야 하는데 그러겠느냐”고 반문하며 “나만 옳다는 의식을 버려야 변화도 가능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역대 대통령 특보단은 전문성 혹은 명망 있는 외부 인사 영입이나 여권 내 인사 적체 해소, 인사 불만 회유를 위해 유용한 수단이었다. 핵심 국정 과제 추진을 위한 TF(태스크포스)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 1970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을 본떠 특보제를 도입한 이래 70명 가까운 특보가 나왔다. 훗날 외교담당 최규하는 대통령,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 국회의장과 총리 3명씩을 배출했고 감사원장, 부총리, 국정원장, 정당 대표, 장관은 부지기수다. 이는 특보제도가 인재 산실로서도 기능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철권으로 3선 개헌을 밀어붙인 박정희 대통령이 더욱 혹독한 유신 체제 도래에 앞서 각계 명망가를 끌어들인 전말이 말해주듯 포용 인사 과시와 위인설관(爲人設官) 측면이 더 강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만은 아니지만 친여 인사 상당수가  특보단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하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무엇보다 기왕의 최고 참모들인 수석비서관과 장관들이 대통령 얼굴을 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특보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옥상옥(屋上屋)에 불과할 게 빤하지 않으냐는 말이다. 되레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을 수 있고, 예산이나 낭비하는 장식용 겉치레라는 비난을 듣기에 딱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이 정치특보로 다양한 업무를 해냈다. 참신한 인물 발굴·천거, 잘못된 국회의원 후보 공천 번복, 소외된 민주계(YS계) 인사들 위무 등등 제도권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처리했다. 특보제 자체는 괜찮은 제도다. 그러나 대통령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이다.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세상사를 토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박 대통령은 어떤가. 핵심 수석비서관이 수개월이 지나도록 대면조차 못하고, 대통령이 자신을 도운 최고위 측근 원로들에게 전화 한 번 안 거는 판국에 무슨…. DNA는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의 DNA는 과연 무엇인가. 마음을 열고 상대를 배려해야 길을 찾을 수 있는데 얼마나 달라질지. 특보 100명을 둔들 무엇이 달라지나.  ‘특별한 성정’의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실장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데 그렇지 못했다. 앞으로는 어떨지….” 박 전 의장의 우려 섞인 목소리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원종 전 정무수석, 손주환 전 공보처장관



“최고’ 리더십이 그대로라면 무슨 소용 있나”

“특보는 장식용 측면이 강하다. 이런 인물도 우리와 함께한다는 식의 대외 과시 외에는 별로 기대할 게 없다. 그 바쁜 대통령이 별도 시간을 쪼개는 게 간단치 않다. 내가 정무수석으로 일할 당시 이홍구(훗날 총리)·최영철(훗날 통일부총리) 등 쟁쟁한 분들을 정치특보로 영입했지만, ‘시간’ 때문에라도 역할엔 한계가 있었다. 하물며 있는 수석들도 잘 안 만나면서 어떻게 특보단과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겠나. 나는 수석 재임 당시 현안이 생기면 하루 열 차례 이상 대통령과 머리를 맞댔다.” 손 전 장관의 체험담을 곁들인 개탄이다.

청와대 재직 시절 ‘곧은 말’ 잘하기로 소문난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좀 더 직설적이다. “사람 바꾼다고, 제도 좀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 ‘최고’ 리더십이 그대로인데 무슨 소용이 있나. 개혁을 하려면 대통령 자신부터 변해야 하는데 현실은 아니다. 대통령 혼자 나라를 끌어갈 수는 없다. 절대 체제도 아닌 지금 국민의 협조 없이는 될 일이 없다. 최고 권력 주변에 암투는 있게 마련이지만, 그간 청와대의 양상이나 과정은 차라리 비극적이다. ‘연말정산’ 파동은 아예 말을 잊게 만든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바닥을 기자 정신을 차린 모습이다. 하지만 총리 교체, 개각과 특보단 신설 등 청와대 개편은 본질이 아니다. 대통령 자신이 ‘진정’으로 달라져야 국민도 달라졌다고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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