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되는 아동학대, “괜찮아, 넌 나쁜 아이가 아니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1.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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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가 대를 잇는 아동학대, 그사회적 병폐 심각

아동학대가 무서운 이유는 피해가 대를 잇는다는 점이다. 어릴 때 학대를 받은 사람은 충동·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져 성인이 된 후 자신 또는 타인의 아이를 학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또 아동학대를 경험한 사람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해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아동기 학대가 뇌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뇌의 크기가 감소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에 이상이 생긴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충동·감정 조절 장애는 내외부적인 방법(자존감 상실·자해 등 내면적 분출과 살인, 반사회적 행동 등 외면적 분출)으로 이어진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나 타인의 아이를 학대할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커져 결국 아동학대는 대물림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대를 받은 아이가 성인이 된 후 반드시 사회 부적응자가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연관성은 과학적으로 상당히 밝혀져 있다”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범죄자의 인생을 역추적해보면 아동기에 학대를 받은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1월18일 인천 송도 센트럴공원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아동학대 근절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학대 시기 어릴수록, 반복될수록 심각

아이는 자신의 생존을 부모에 의존하고 신뢰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면서 생애 처음으로 사회를 접할 때도 신뢰를 바탕으로 접근한다. 이런 시기에 아이가 학대를 경험하면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뿌리째 흔들린다. 자신을 돌봐줄 것이라고 믿었던 부모와 어린이집 및 유치원 보육교사 등으로부터 학대받으면 더욱 그렇다.

한 번 정도의 단순한 충격은 쉽게 회복된다. 그러나 학대가 반복되거나 그 기간이 길수록 아이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깊이 각인된다. 청소년기는 물론 성인기까지 이어져 인격 형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학대를 받는 시기가 빠를수록 악영향은 치명적이다. 권용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릴 때일수록 정신·신체 발달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며 “학대받은 아이는 성인보다 치료가 어렵고 그 기간도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정신의학연구소가 수십 건의 관련 연구를 종합·분석해보니 아동학대를 겪은 우울증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이 지속되고 반복될 가능성이 두 배가량 컸다. 2만3000여 명의 우울증 환자를 조사한 결과 아동학대를 경험한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물 치료나 정신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동학대로 인해 뇌와 면역체계 등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결론 내렸다.

트라우마가 심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회피 반응, 퇴행 현상, 해리 장애가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PTSD는 생명을 위협받은 경험을 했거나 목격한 후 절망과 공포를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데, 자칫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회피 반응은 특정 환경이나 공간을 피하려는 행동이다. 퇴행 현상은 정신적·신체적 성장이 나이보다 어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양말을 스스로 신고 벗던 아이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해리 장애는 한 사람 안에 두 가지 이상의 정체성과 인격 상태가 존재하는 질환이다.

학대를 받은 아이는 인지 기능과 집중력이 떨어져 청소년기를 넘기면서 학습 장애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에게 언어폭력을 가하기 일쑤다. 아이는 자신감이 위축된다. 깊은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회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기 쉬운 상태로 성장하기 십상이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자신이 맞을 짓을 해서 맞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인식하면서 자존감이 떨어진다”며 “청소년기에 우울증·불안감이 생겨 또래들과의 관계 형성이 원만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청소년기를 보내면 각종 정신적 질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존 제이 범죄대학 연구팀은 어릴 때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학대를 경험했거나 29세가 될 때까지 사회적 소외감을 느낀 678명과 그런 경험이 없는 520명을 비교·분석했다. 아동학대나 소외감을 받은 사람은 평생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가 일반인보다 59%나 높게 나타났다. 또 우울증에 걸리는 시기도 일반인보다 빠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성적 학대를 받은 경우에는 우울증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 적응도 어렵고 반사회적 행동이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권용실 교수는 “아동학대가 반드시 범죄와 직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아동기 학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피해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효원 교수는 “학대받은 아동은 먼저 안전한 환경으로 옮겨야 한다. 그다음엔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얘기해줘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펴줄 어른이 주변에 있을 때 회복이 빠르다”고 말했다.

평소와 다른 행동, 치료 필요하다는 신호

그럼에도 이상 증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병원을 찾아 놀이 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아이가 어떤 증상을 보일 때 병원을 찾아야 할까. 권용실 교수는 “대체로 며칠 만에 회복하지만 불안해하거나 자다가 갑자기 깨서 우는 등 아이에게서 평소와 다른 행동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으면 병원을 찾으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아동학대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 국가가 학대받은 아이와 부모에게 충격을 극복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아동학대와 관련된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최근 “아이는 특정인의 소유물이나 화풀이 대상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며 “정부는 보육교사 교육과 자격 관리, 처우 개선책을 마련하고, 국회는 아동학대와 보호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관련 입법에 앞장서야 한다. 보육교사 등 어린이를 상대하는 직업을 갖는 사람은 미래를 책임지는 자세로 사랑과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어린이집·유치원 아동학대 신고 부쩍 늘어 


1월16~18일 사흘 동안 112와 117(학교폭력 전용 신고 전화)로 신고한 아동학대 사례는 총 155건이다. 경찰은 접수된 사례들을 관할 경찰서로 내려보내 내사와 본격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155건 가운데 어린이집·유치원과 직접 관련된 사례는 141건(90.9%)이며 주로 서울·경기 등 수도권 거주 학부모들이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하루 평균 20여 건이던 아동학대 관련 신고 건수가 인천 어린이집 사건 이후 50여 건씩 들어오고 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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