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반성’하는 이 역설을 어찌하나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5.02.0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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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년 차 대통령에 닥칠 ‘조기 레임덕’ 조짐

‘국민 반성운동’ 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라는 얘기가 50·60대 연령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나라꼴이 엉망인데 대통령은 나 몰라라 하니 주인인 국민이 반성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역설(paradox)이다. 즉 박근혜 대통령 선출과 국정 혼선에 대한 감시 소홀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민 스스로 ‘자책’해야 한다는 일종의 반어(反語)다. 여기에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대한 강한 불만과 불신, 원성이 물씬 배어 있다. 김영삼(YS) 정부 말기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됐을 때 나돈 ‘부산 앞바다에 손가락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를 떠올리게 한다. ‘YS를 대통령으로 뽑은 스스로가 미워 단지(斷指)했다’는 끔찍한 말인데, 요즘의 ‘반성’이란 역설도 궤를 같이한다.   

‘콘크리트 지지층’ 자만이 오만과 불통 불러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1월 말 현재 20%대까지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마지노선이라는 40% 벽이 무너진 지 불과 1개월 만이다. 임기 2년 차 기준으로는 노태우 대통령 이래 역대 6명의 대통령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다. 한국갤럽 등의 자료가 증명하듯이 역대 대통령 지지율 추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임기 초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다가 하향 곡선을 그린다는 점이다. 노태우·김대중(DJ)·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다.  YS와 이명박(MB) 대통령 때만 약간 달랐다. 역대 대통령 중 임기 초반 수치로는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한 YS는 3년 차에 60%포인트 이상의 낙폭을 보이다 임기 4년 차에 잠시 반등했다. 그러나 결국 막판엔 임기 초보다 80%포인트 가까이나 떨어진 7%라는 참담한 결과를 기록했다. 500만표라는 역대 최고 표차로 당선된 MB는 임기 첫해에 20% 초반으로 출발해 3년 차에 50%까지 상승세를 보이다 역시 20%대로 마감했다.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역대 대통령(왼쪽부터 제14대 김영삼·15대 김대중·16대 노무현·17대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비서관들의 암투와 국정 농단 소동까지도 ‘사과’ 대신 ‘남의 일’처럼 치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처는 지지층 이탈을 초래했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 청와대사진기자단 ⓒ 청와대사진기자단
YS나 MB처럼 반짝 상승을 기록한 일부 예외가 없지 않으나 전반적으로는 거듭된 지지율 하락이라는 운명을 맞았고, 임기 말년엔 바닥을 헤맨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처럼 딱한 누적은 단지 5년 단임 대통령의 ‘숙명’으로 치부할 게 아니다. 전임자들의 험한 말로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실제로 증명되고, (각기 이유는 다르나) 왜 그렇게 불행한 사태가 도래했는지가 빤함에도 실정의 전철을 밟았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의 임기 첫해 지지율은 역대 2위인 DJ(62%)에 버금간다. 그런데 불과 1년여 만에 30%포인트 이상을 까먹었다. 청와대는 국회선진화법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른 야당의 비협조·방해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본질이 그게 아님을 많은 이가 직시한다. 연이은 총리·장관 후보자의 낙마 사태를 필두로 한 인사 난맥과 대통령의 오만·불소통, 비선의 국정 농단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별로 없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대선 득표율을 10%포인트 이상 웃도는 지지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에도 국정 지지율이 50%대에서 안정을 찾자 청와대는 ‘콘크리트 지지층’이니 어쩌니 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이 ‘콘크리트 지지층’에 대한 (빗나간) 확신과 지도자의 유아독존식 아집·독선이 결합되면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국민 반성운동’이라는 역설적 이름을 단 대통령을 향한 분노는 ‘정윤회 문건 사태’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비선 시비가 표출되면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문고리 3인방’ 운운하지만 사태 와중에도 뒷전에서 숨죽이고 있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포함됨은 당연하다. 무조건적 팬으로 여겼던 50~60대 연령층과 PK(부산·경남), TK(대구·경북)의 민심 이반에 놀랐던 박 대통령은 그러나 나라를 뒤흔든 국정 농단 사태가 ‘땅콩 회항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등 다른 이슈에 가려 잠시 주춤하는 듯하자 이내 사태의 위중함을 간과한 듯싶다. 박 대통령의 1월12일 신년기자회견은 청와대의 불감증을 방증한다.

정책 추진 위한 ‘수족’도 의지도 꺾인 게 현실

박근혜정부의 미래는 더 ‘어려울’ 전망이다. 공무원과 여당 국회의원들도 더 이상 청와대에 고분고분하지 않을 터이고, 따라서 정책 과제 추진도 힘들게 되는 탓이다. 악순환은 상승 작용을 일으켜 지지율은 더욱 떨어지게 마련이다. 눈치가 ‘빠른’ 공무원들이다. 과거엔 ‘○○○ 정부 사람’이라는 때가 묻는 것을 꺼려 청와대 차출을 기피하는 고위직의 행태가 대략 임기 4년 차에 나타났으나, 벌써 그런 기운이 감지된다. 상당수 하위직들은 공무원연금법 개정 추진으로 토라진 지 오래다. 여의도 정치권의 표변은 일종의 정석이다. 특히 ‘차기’를 노리는 주자들은 아예 본격적인 도전 양상을 띨 게 분명하다. 그래야 대중적 이미지를 높인다는 사실을 꿰고 있어서다. 박 대통령 자신이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을 터다.

DJ 정부 시절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소장파’ 리더였던 정동영 의원이 ‘2인자’ 권노갑 최고위원을 공격하는 것으로 몸을 일으켜 훗날 여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쟁취한 사례 등은 새삼 상기할 필요조차 없다. 당시 당 총재 자격으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던 DJ는 권 최고위원에게 “정 의원의 공격이 결국은 나를 겨냥한 것인데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원망한 바 있는데, 어쨌거나 DJ는 ‘타의로’ 국정 쇄신을 약속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민심을 떠난 최고 권력자와의 ‘맞짱’은 위상 급상승의 기본이니 다소의 위험 부담을 감내할 후계 지망생이 널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연말정산에 화들짝 놀랐던 청와대는 건강보험 개선 계획도 지레 철회했다. 앞으로 이런저런 대형 국책 과제는 물 건너갔다고 봐도 될 성싶은 상징적 사건이다. 정부·여당이 총력을 기울여도 간단치 않은 마당에 일단 약세를 보인 청와대의 조치에 따르려 하지도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혁·개선은 고사하고 점수를 따려고 국민에게 ‘당근’이나 더 주겠다고 나서는 개악으로 이어질 게 우려된다. 정책 의지와 소신이 꺾인 데다 상황 대처 능력마저 부족한 게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YS는 집권 4년 차에, MB는 3년 차에 일시적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다. YS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과 광주항쟁 격상 등으로 축적한 국면 전환을 통해서, MB는 금융위기 탈출과 북한의 서해 도발에 대한 원칙 대응 등으로 반짝 호기를 누리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청와대는 부인할지 몰라도 정책 추진을 위한 ‘수족’도 의지도 꺾인 게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무리수를 뒀다가는 다른 사달이나 낼 게 빤하다는 지적이다. 자칫 이렇다 할 치적 없이 나라를 파탄 낸 무능·무정견 정부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는 엄중한 상황 인식 아래 일대 쇄신을 꾀해야 한다는 고언도 이어진다. 소통한다며 커피잔 들고 억지 미소나 짓는 이벤트성 대처로는 이뤄질 게 하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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