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투르크 제국 부활 꿈꾸는 위험한 세력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2.0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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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극단주의 단체들과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되어온 한국과 일본에서 IS가 순식간에 국가적 이슈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동북아시아로 공격 대상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단순 무장 조직으로만 봤던 IS는 어느새 지구 반대편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훌쩍 커버렸다.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2005년 미군에 체포돼 이라크 남부에 있던 부카(Bucca) 기지에 수감됐다가 2009년 석방됐다. 기지를 나오면서 그는 뉴욕 출신 미군을 향해 “뉴욕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기지 안의 모든 미국인은 이 말을 농담으로 들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알 바그다디는 이슬람국가(IS)의 최고 지도자가 됐고 IS는 점점 국가와 가까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어쩌면 IS는 정식 국가가 될 수도 있고 알 바그다디가 국가수반의 자격으로 뉴욕을 방문하는 것도 전혀 망상이 아닐 수 있다.  

ⓒ AP연합
미국 정부는 국가를 상징하는 IS(Islamic State) 대신 ISIL(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을 사용한다. 국가가 아닌 무장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일개 무장 조직을 상대로 국제 동맹군이 조직돼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미국 주도의 공습은 효과가 크지 않다. 미국 국방부 스스로가 “5개월 동안 공습했지만 이라크에서 IS로부터 탈환한 영토는 1% 정도다”고 밝혔다.

IS는 빠른 속도로 국가에 가까워지고 있다. 로이터가 시리아 접경지대에서 인터뷰한 반(反)IS 활동가마저도 “그들이 어떻게 이처럼 빨리 근대 국가와 같은 구조를 만들어냈는지 대단한 일이다”라고 평가할 정도다. 그들이 점령한 지역 25만㎢는 영국의 크기와 비슷하고, 이 땅에는 약 800만명이 살고 있다. IS는 독립적인 재정 기반을 가지고 결산서도 만들며 도시 인프라를 정비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인 알 바그다디를 정점으로 인재를 유치해 재정·징병·법무·홍보 등 각 분야에 장관까지 배치해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렇게 빨리 근대 국가 구조 만들 줄 몰랐다”

IS의 목적은 명확하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대리인’을 뜻하는 칼리프를 정점으로 하는 이슬람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1922년 오스만투르크 제국 붕괴 이후 사라진 칼리프의 지위를 부활하고 코란과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엄격하게 지키는 국가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슬람 과격파 선배 격인 알카에다처럼 미국에 타격을 가하는 일보다 국가의 기반이 되는 영토 확보에 더 열심이다. 이런 무장 집단은 과거에는 없었다.

IS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내전이 있다. 반정부 조직이 난무하는 혼잡한 상황을 틈타 내전으로 황폐해진 땅을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두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이렇게 획득한 ‘영토’는 원래 중앙정부가 행정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던 곳이다. IS는 복종하는 주민들에게 행정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선 통치 조직을 갖췄다. ‘칼리프’인 알 바그다디가 맨 위에 포진하고 그 아래에 12명의 집단지도체제를 뒀다. 알 바그다디의 옆에는 시리아와 이라크를 담당하는 부관이 한 명씩 포진했다. 최근에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담당하는 인물도 배치했다. 뉴욕타임스는 “집단지도체제 아래에는 재정, 무기 관리, 전투, 징병 등을 책임지는 장관이 있는데 알 바그다디가 직접 임명한다”고 전했다.

CNN에 따르면, 점령 지역은 24명의 지사가 나누어 맡는다. 배치된 지사들은 행정을 담당하는데 외국인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에서는 세금을 징수한다. 인두세인 ‘지즈야’를 비롯해 대중교통 이용료, 통행세, 보호세 등을 걷고 있다. 하지만 아사드 정부보다 세금이 적기 때문에 거리의 상인들 중에는 오히려 환영한다는 보도가 오래전부터 나왔다. 도로를 보수하고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식량 배급소를 설치했으며 전력 공급도 했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던 탈레반은 소아마비 백신이 아이를 불임으로 만들려는 서구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금지시켰지만 IS는 소아마비 백신 접종도 추진한다는 얘기가 있다.

‘반대파 수용’ ‘외국인 등용’ 통치 전략

의외로 IS는 현실적이다. 예컨대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IS는 시리아의 라카를 점령한 후 식량을 유통하는 책임자를 아사드파에서 임명했다. 전기와 물을 공급하는 현지 댐의 직원들은 아사드 정부의 녹을 먹고 있었지만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라카의 통신망은 튀니지 사람이 담당했다. 자신들의 적인 아사드파나 전문성을 띤 외국인을 배치하는 것은 IS의 통치 수단이 꽤나 현실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 중동연구센터의 호사카 슈지 이사는 “과거의 무장 집단은 점령 지역의 주민들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목적을 자신들끼리만 공유했는데 IS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IS는 이런 방법으로는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점령지의 여성과 IS 대원을 결혼시키는 등 목적을 공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게 호사카 이사의 설명이다.

물론 IS가 제공하는 사회적 서비스는 종교적 엄격성을 가져야만 누릴 수 있다. 수니파 중에서도 특히 엄격한 살라피즘(순수한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리주의)에 의한 국가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마치 탈레반 시대의 아프가니스탄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음주나 흡연은 엄격하게 금지되고 카메라도 사용할 수 없다. 여성은 피부를 보여서는 안 되며 남성 친족이 보호자 형태로 동행하지 않는 한 외출할 수 없다.

특히 보복과 처벌은 잔인하고 냉혹하다. 샤리아(이슬람법)에 충실한 형벌제도를 도입했고 이슬람 법정을 설치했다. ‘히스바’라는 이슬람 율법 경찰도 신설됐다. 처형은 통치의 강력한 수단이다. 처형은 광장에서 공개되며 IS에 거역하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가 된다. 더욱 무서운 것은 강력한 포교·개종 활동으로 종교적 정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령 지역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살라피즘으로의 개종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IS는 알카에다처럼 미국과 같이 멀리 있는 적을 상대하기보다 가까운 적을 설정했다. 알 바그다디의 꿈은 가까운 적과의 정복 전쟁에서 승리해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하는 칼리프 국가를 재건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까운 적이란 그동안 시리아와 이라크를 지배해온 소수의 부패한 엘리트, 즉 시아파를 뜻한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시아파에 시달렸던 수니파 무슬림들이 속속 IS를 지지하며 합류하고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연구소(RUSI)의 아론 스타인 연구원은 “칼리프 국가를 수니파들이 받아들이진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믿음직한 정치 주체가 나타났다는 점은 인정받았다. 브랜딩에 성공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지금껏 다른 조직에 없었던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만으로 전 세계에서 무슬림 군인과 인재들을 IS의 영토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원유 밀매에 위조품 판매…수입 다변화 시도

국가처럼 진화하고 있다는 IS지만 국가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증언도 최근 제기된다. 지난해 12월25일,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시리아 내 IS 점령 지역 주민과 기자들의 말을 빌려 점령지의 모습을 전했다. 이라크 제2 도시로 IS가 점령한 모술에서는 “물을 소독하지 못해 마실 수 없으며 간염이 유행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탄탄해 보였던 IS의 행정이 흔들리는 주된 이유는 재정 부족 때문이다. 시리아와 이라크 유전에서 생산되는 하루 5만 배럴의 원유는 그동안 배럴당 20~35달러라는 헐값에 팔렸다. 원유 밀매로 매일 100만 달러를 벌어들였던 IS지만 최근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수익이 반 토막 났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원유 이외의 재원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각종 위조품 판매가 그것인데 가짜 담배와 약품, 휴대전화, 여권 등을 공급하고 있다. 위조품은 시리아를 통해 터키로 나간다. 휴대전화 밀수가 최근 들어 5배나 늘었다는 증언이 있었고, 위조 여권은 터키에서 수천 달러에 판매 중이다. 이 같은 짝퉁 산업은 규제도 경쟁도 없으며 제재의 손길도 닿지 않기 때문에 무기나 마약보다 매력적인 자금원이 돼가고 있다. 


IS의 최고 지도자 알 바그다디는 누구? 


국제사회의 견제 속에서 지금의 국가와 유사한 형태를 만들어낸 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는 1971년 이라크의 고대 도시인 사마라에서 태어났다. 바그다드 대학에서 이슬람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90년대 말부터 알카에다계 그룹과 행동을 같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2010년 5월 명맥만 유지하던 이라크 이슬람국가(ISI, IS의 전신)의 수장이 되면서 조직을 추슬렀다. 지도자가 된 것은 불과 4년 전이지만 IS가 대두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알 바그다디는 지금도 IS의 통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모든 문제에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역시 다른 무장 단체 지도자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동영상을 공표하거나 성명을 발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지난해 7월 인터넷에 연설 영상을 공개한 이후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칼리프로 등장한 첫 연설에서 알 바그다디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의사·기술자·법률가 등 전문가들이 IS에 참가할 것을 호소했다. 연설은 번역팀에 의해 실시간으로 영어·프랑스어·독일어 등 여러 언어로 바뀌었고 웹사이트 이외에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 업로드됐다.

이처럼 치밀한 홍보 활동 역시 다른 조직과 다른 IS만의 특징이다. IS의 홍보 조직인 알 하야토는 웹진 ‘DABIQ’를 발간하고 고화질 홍보 동영상을 여러 언어로 제작한다. 세계 각지로 발신되는 홍보물은 대원을 획득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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