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를 쉬게 하라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5.02.0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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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트럭 운전수가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였다. 판사는 법조문에 있는 그대로 실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그 운전수에게는 10여 명의 가족이 딸려 있었다. 가장이 감옥에 가는 바람에 그 가족은 거리로 나앉았다. 판사는 이 판결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인권변호사로 유명했던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어느 글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한 인간으로서 법관의 번뇌가 고스란히 읽혀지는 대목입니다.

법을 다루는 일은 어느 시대건 고뇌를 요구하는 작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법관의 판결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 더 나아가 한 가정이나 집단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이 소속된 정당마저 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법원이 못하는 일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이처럼 엄중한 사법부의 권력이 양심과 소신이 아닌 상황 논리에 흔들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사법부 스스로에게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재판일 것입니다. 1981년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시절 법원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해 군사재판이 내린 판결을 그대로 적용해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2004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판결을 번복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헌정질서 파괴자로 낙인찍혔던 김 전 대통령은 똑같은 나라의 법원에 의해 23년 만에 헌정질서 수호자로 탈바꿈했습니다.

이렇듯 사법부의 판단력이 흐려지면 국민에게는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어집니다. 반대로 다른 분야가 다 엉망이 되어도 사법부만 제 역할을 충실히 하면 솟아날 구멍은 보입니다. 이른바 ‘사채왕’에게 수억 원의 금품을 받은 판사나 성추행을 하는 판사가 나오는 작금의 현실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사법부의 능력을 시험이라도 하듯 사회 곳곳의 불만과 고충이 줄줄이 법정으로 몰려드는 상황입니다. 사법부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실현할 창구쯤으로 여기고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흐름이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범죄 혐의가 농후한 사람들조차 고소를 당하면 ‘너도 당해봐라’라는 식으로 맞고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렇게 숱한 기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는데도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가 나오면 고소부터 하고 보는 권력층 인사도 여전히 많습니다.

아무리 힘든 경쟁을 뚫고 등용문에 오른 최고 엘리트일지라도 엄연히 한 사람의 자연인입니다. 그들에게도 적정한 근로 여건을 확보할 권리가 있습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방법원 판사 1명이 하루에 처리해야 할 사건이 평균 4~5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분명히 과다한 업무량입니다. 사법부가 양심을 지키고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우려면 그들을 과로로부터 해방시켜야 합니다. 정치력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정치력으로 풀고, 행정력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행정력으로 푸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법원이라고 결코 만능일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원을 능력자 혹은 해결사로 키워버린 정치인·권력자들이 우선 반성해야 합니다. 법원이 할 일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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