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후폭풍 “2월 월급 0원인 사람도”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2.05 19: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납세자연맹, 시뮬레이션 결과 ‘10명 중 7명’ 추가 부담

연봉 7000만원인 회사원 정 아무개 부장은 오는 2월 연말정산 때 월급에서 80만원의 세금을 토해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와 연봉이 같고 배우자와 아들 2명(대학생, 고등학생), 부모를 부양하고 있는 조건에 변함이 없지만 세금이 오른 것이다. 지난해에 80만원을 환급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160만원이 증세되는 셈이다.

연봉 5000만원인 이 아무개 차장은 3인 가족을 이루고 있다. 한 해 동안 신용카드(2000만원), 주택청약저축(360만원), 보장성 보험(100만원), 의료비(200만원), 어린이집(144만원) 등에 들어간 돈은 지난해와 같다. 그러나 올해는 세금 부담이 늘어났다. 연말정산 후 추가 납부한 세금이 지난해 약 14만원에서 올해 약 54만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계산됐다.

한 직장인이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올해 연말정산 후 환급액이 줄어들거나 오히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세법을 뜯어고친 결과다. 매월 원천징수를 많이 해두고 연말정산 후 많이 되돌려주던 것에서 적게 떼고 적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바꿨다. 또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었다. 소득공제는 전체 소득에서 일정 부분을 미리 떼어낸 소득에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매긴다. 세액공제는 소득에 세율(12~15%)을 매기고 항목마다 세금을 빼주는 방식이다. 세법을 고친 이유는 돈을 많이 벌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전문가들도 소득공제는 고소득층에 유리하고 세액공제는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세금 500만원 추가 부담 사례 속출

총 급여에서 각종 소득공제 항목을 제외한 것을 과세표준이라고 하는데, 현행 소득세법은 이것에 따라 각기 다른 세율을 적용한다. 과세표준이 1200만원 이하인 경우 6%, 1200만~4600만원 구간은 15%, 1억5000만원 초과는 최고 세율인 38%를 적용한다. 만일 교육비 300만원을 썼을 때 최고 세율 38%를 적용받는 고소득자는 114만원(300만원×38%)이 줄어들지만 최저세율(6%)을 적용받는 사람은 300만원을 소득공제 받아도 절감되는 세금은 18만원(300만원×6%)에 그친다.

그런데 세액공제(공제율 15%)로 전환하면 소득에 관계없이 모두 45만원(300만원×15%)을 공제받는다. 저소득자보다 고소득자의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연봉 7000만원이 넘는 근로자 160만명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대신 근로 장려와 자녀 장려 목적으로 저소득층에 약 1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연봉 5500만~7000만원 구간은 세금이 늘어나더라도 2만~3만원에 그치며, 8000만원 이상은 33만원, 9000만원 이상은 98만원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 같은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특히 5500만원 이하 중산층의 세 부담은 없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은 거짓말”이라며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연봉 7000만원인 직장인의 경우 2월 월급분에 해당하는 약 500만원이 세금으로 부과되는 사례가 속출했고 그 내용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연맹 회원 1만682명을 대상으로 연말정산 시뮬레이션을 시행한 결과는 정부의 발표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또 4000만원 연봉자는 5만4000원을 추가로 부담하지만 연봉 5000만원 소득자는 2만2000원을 환급받는 결과도 나왔다.

연 5500만원 소득자 가운데 자녀가 2명 이상이거나, 2014년에 아이를 출산한 경우 추가 부담이 늘어났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세금을 환급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연봉 3000만원 미만 직장인도 세금 부담이 늘어나기는 마찬가지다. 미혼 직장인 마 아무개 대리는 2013년과 2014년 연봉이 3000만원으로 같지만 연말정산 이후 세금 부담은 지난해 73만원에서 올해 90만원으로 증가했다. 이런 식으로 연봉 3000만원인 싱글 직장인은 17만원, 연봉 4000만원이면서 지난해 아이를 출산한 직장인은 약 20만원, 연봉 5000만원이고 자녀 1명인 가정은 30만원을 추가로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가 최근 직장인 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14명은 세금을 환급받고, 34명은 추가로 납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회장은 “10명 중 7명 이상은 이번에 세금을 추가로 부담하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10명 중 2~3명만 세 부담이 생길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와 정반대 현상”이라며 “월급쟁이 호주머니를 털 게 아니라 부동산 임대업자, 전문직 종사자 등 소득이 투명하지 않은 사업자와 기업의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 호주머니 짜내는 정부

부양가족 공제, 교육비·의료비 공제, 출생 공제, 6세 이하 자녀에 대한 공제, 다자녀 공제, 기부금 공제, 연금보험 공제 등이 없어진 것이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대부분 소비자의 부담이 크고 생계에 필요한 비용이라는 점에서 돈 없고 아이 많은 ‘흥부’가 부자인 ‘놀부’보다 세금 부담이 커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총 급여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서 세금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사실상 증세라는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부는 연말정산 이후 약 8000억원의 세수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세금 결손은 10조원에 육박했고 올해는 19조원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국민에 대한 증세는 없을 것이라는 게 대통령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2013년 정부는 연봉 3450만원 이상 소득자 434만명을 중산층으로 보고 연 16만원 정도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당시 서민의 소득세 규모가 2조원 늘어났고 기업체의 법인세는 2조원 감소해 4조원의 차이가 났다. 법인세는 낮은데 서민의 호주머니만 쥐어짜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청와대 경제수석은 “한 달에 1만원 조금 넘는 정도라서 감내할 수준”이라고 말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지난해 초엔 연말정산 결과 월급쟁이들의 소득세가 처음으로 200만원을 돌파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월급쟁이 1630만명 중 소득세를 낸 1100만명은 22조3000억원의 소득세를 납부했는데 1인당 평균 201만원에 해당한다. 이는 한 해 전보다 12만1000원 늘어난 액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