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잘나가던 시절이 그립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2.0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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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사실상 투기등급…그룹 전체로 위기감 확산

“그룹 매출의 70% 이상을 GS칼텍스가 차지하고 있다. 상장사의 실적은 주력 계열사인 GS칼텍스가 배제돼 있는 만큼 의미가 없다.” 2013년 말 기자가 만난 GS그룹 간부의 말이다. 당시 GS 계열 상장사 8곳의 매출(2013년 3분기 기준)은 13조원에서 12조13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6.6%나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5400억원 흑자에서 260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시장에서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최대주주(11.80%)인 GS건설은 부도설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GS그룹 측은 “그룹의 상장사는 대부분 방계이고, 주력 계열사인 GS칼텍스가 건재한 만큼 재무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GS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GS칼텍스마저 실적 부진의 늪에 빠졌다. GS칼텍스는 2014년 3분기 기준으로 31조2501억원 매출에 4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불과 1년 전 34조2513억원 매출에 853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회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성적표다. 지난해 초에는 내수 점유율 2위 자리마저 경쟁사인 현대오일뱅크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GS그룹 핵심 계열사인 GS칼텍스의 실적 악화로 허창수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BBB-’  강등 9개월 만에 전망도 ‘부정적’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12월 GS칼텍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같은 해 3월 기업 신용등급을 ‘BBB-’로 한 단계 강등시킨 지 9개월 만이다.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고 기업 자체의 재무 건전성만 평가하는 독자 신용등급은 이미 투기등급인 ‘BB+’로 내려앉았다.

GS그룹 측은 “GS칼텍스가 최근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국제 유가 하락으로 정유업황이 악화된 것이 원인으로 경쟁사 역시 비슷한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S&P는 지난해 3월과 12월 GS칼텍스뿐 아니라 에스오일과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강등시켰다. 하지만 GS칼텍스는 에스오일이나 SK이노베이션과 상황이 다르다고 S&P 측은 지적한다. 한상윤 S&P 아태 지역 기업신용평가부문 이사는 “‘BBB-’는 사실상 투기등급 바로 직전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 이사는 “고도화 설비 투자도 생각만큼 수익이 나지 않고 있다”며 “저유가와 중국의 공급 과잉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대응을 하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전라남도 여수에 위치한 GS칼텍스 제2공장. ⓒ 연합뉴스
특히 GS그룹은 매년 1조원 이상의 회사채를 발행해왔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가 8000억원에 달한다. 2014년 3분기 현금성 자산이 5200억원 수준인 만큼 추가 차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업 신용평가가 떨어지면 자금 조달 금리가 상승하게 된다. 조달 금리 상승은 다시 실적 악화를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GS칼텍스의 수익 악화는 그룹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룹의 핵심 회사인 (주)GS와 GS에너지(GS칼텍스 최대주주)의 주 수입원이 GS칼텍스의 배당이기 때문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GS그룹 계열사의 신용평가 전망마저 줄줄이 내려잡았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말 GS그룹의 지주회사인 (주)GS와 GS건설의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비슷한 시기 나이스신용평가는 (주)GS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고, 한국신용평가는 (주)GS와 GS에너지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GS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GS칼텍스의 신인도가 떨어지고 있는 만큼 계열사의 신용등급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전경련 회장의 저주’ 재현되나  


GS칼텍스는 최근 실적 악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섰다. 사업본부 조직을 7개에서 5개로 줄였고, 임원 수도 15%가량 감축했다. 직원들은 3년째 연말 성과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허창수 회장은 2012년 말 둘째 동생인 허진수 부회장을 GS칼텍스의 대표이사에 앉혔다. ‘조직 운영의 효율성과 전문성 강화’ 차원이었다. 하지만 GS칼텍스의 실적은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 저가 수주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GS건설 역시 마찬가지다. 허창수 회장은 2012년 말 인사에서 임병용 (주)GS 사장을 GS건설 경영지원총괄(CFO)로 보냈다. 그동안 부사장급이 맡아오던 CFO를 사장급으로 격상시켰다. 외아들인 허윤홍 상무보 역시 사장 직할 경영혁신담당 상무로 승진시켰다. 최측근과 아들을 경영에 전진 배치할 정도로 경영 개선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GS건설은 여전히 실적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GS건설은 2013년 827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2014년 3분기 기준으로 24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최근 3년간 GS건설의 주가는 73.76%나 하락했다. 2011년 주당 12만원대였던 주가는 현재 2만원대로 10만원이나 빠졌다. ‘재계의 신사’로 통하는 허창수 회장의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는 비상 상황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전경련 회장의 저주’가 되살아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역대 전경련 회장들은 퇴임 후 적지 않은 수난을 당했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전경련 24~25대 회장)은 1999년 10월 대우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도 사퇴했다. 이후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를 피해 6년 가까이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했다. 손길승 SK 명예회장(28대)은 2003년 터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9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31대)도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허 회장은 2011년 2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32대 전경련 회장에 추대됐다. 2013년 한 차례 연임됐고, 현재 3연임을 앞두고 있다. 허 회장도 ‘전경련 회장의 저주’를 의식했던 것일까. 지난해 1월 준공한 서울 여의도 전경련 사옥의 회장실 위치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사무실을 바꿨다. 하지만 허 회장 역시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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